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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샤이닝, 스탠리 큐브릭]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2. 22:45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연출하고

잭 니콜슨, 설리 듀발 등이 연기한다.

 

[시계태엽 오렌지]를 본 뒤 큐브릭 감독의 연출법에 빠져 시청하게 된 두 번째 영화 [샤이닝]이다. 먼저 포스터와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큐브릭 감독이 가장 사랑했던 폰트는 파울 레너가 1927년에 제작한 푸투라(Futura)였다. 푸투라는 원이나 삼각형, 사각형과 직선 등 기하학적인 모양을 토대로 제작되어 시대를 타지 않는 폰트다. 또한 차분하고 정갈하며 미래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폰트에 푹 빠진 큐브릭 감독은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 2001]에서 오직 푸투라만 사용했다. 또한 큐브릭 감독은 포스터와 영화에 사용되는 폰트에는 절대 합의점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애초에 극심한 완벽주의자이기도 하고 서재에 글자와 관련된 서적만 몇십권이 있었다고 하니 그의 폰트사랑은 디자인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눈여겨 볼 만 하다. 그리고 그 사랑을 넘은 집착은 그가 연출한 모든 영화의 포스터에 영향을 끼쳐 반 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 봐도 전혀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도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인 1980년에 개봉했다. 그럼에도 제목과 부제에 사용된 볼드(Bold)를 넘어 블랙(Black)에 가까운 산세리프 폰트와 많은 양의 그레인과 노이즈로 점칠되어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삽화, 간결하게 명시된 배우 및 제작사 정보 등은 이 영화가 어제 개봉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을 전하고 있다. 영화는 종합 예술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감독의 역량이 아닐까.

 

이 영화는 공포영화다. 사운드와 비주얼로 보는 이에게 두려움과 섬뜩함을 전달하는게 주 목표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공포 영화들이 공포에 코미디를 섞거나 멜로를 섞거나 드라마를 섞는다.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망각한 채 자꾸 영양가 없는 재료를 섞어 이도 저도 아닌 요리를 내놓는 모습도 많이 봐왔다. 대부분의 미국 공포영화가 뭘 자꾸 해결하려고 하고 원인을 찾으려고 하며 악령을 구해주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공포는 무력감이 더해질 때 증폭되는 법이라 자꾸 곁다리가 쳐지면 극에 몰입하기 점점 번거로워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공포영화에 서사가 추가되는 것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다. [샤이닝]도 단순히 악령에 귀의된 주인공이 자신의 가족을 무참히 도륙내려고 하는 내용이라는 것만 알고 봤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시청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이 영화는 우리가 자주 봐서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그 유명한 밈같이 그리 유쾌하거나 단순하지만은 않다. 영화 [샤이닝]은 철저히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선 [샤이닝]은 정말 잘 만든 영화다. 모든 시퀀스는 정밀하게 조정되어 몰입감을 유발하기 충분하고, 공포심을 극대화시키는 사운드는 소름끼치게 완벽하다. 또 배우의 연기는 어떤가. 위의 사진에서 격렬한 눈빛을 발사하고 있는 잭 니콜슨의 연기는 두말 하면 입아프고, 공포에 질려 미치기 일보 직전인 설리 듀발의 연기도 배우가 걱정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거기에 영화의 배경이 되는 호텔의 잘(무섭도록) 꾸며진 외관과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 길이 굽이치는 미로에서의 연출과 뚜렷한 색감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 여러 장소들은 영화의 섬뜩함과 기괴함을 한층 높여주는 훌륭한 미술을 보여준다. 완벽에 가까운 영화 내적인 요소들의 확실한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분명히 있다. 영화 [샤이닝]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는 점. 즉, 스티븐 킹이 1977년에 집필한 소설 [샤이닝]을 봐야만 영화를 100%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클라이막스 부근에서 아리송한 장면이 몇 개 등장하는데, 이는 복선도 없었고 부가적인 설명도 해주지 않아서 원작을 읽은 독자만이 알아챌 수 있다. 또한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인 인디언 학살과 흑인에 대한 탄압같은 역사적 요소도 뜨문뜨문 비추기만 할 뿐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분명 공포영화긴 한데 다른 어떤 의미나 배경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자꾸 들게 한다. 우리는 잭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계속 그가 미쳐버린 원인에 대해 찾아해야 하는 이중 고문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공포와 미스터리를 같이 얻고 싶은 사람에게는 최고의 공포영화가 될 수 도 있는 반면에 극한의 공포만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는 무섭지만 귀찮은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도 그럴것이, 영화의 메시지가 절대 쉽거나 단편적이지 않다. [샤이닝]은 한 호텔에서 당분간 일을 하게 된 어느 가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호텔의 저주에 미쳐버린 아빠를 피해 헌신적이지만 살짝 둔한 아내와 작은 초능력이 있는 아들(그 초능력의 이름이 '샤이닝'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큰 비중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은 내내 도망쳐다니는 스토리다. 크게 보면 아주 간단한 서사지만 자세히 보면 아빠가 왜 미쳤는지, 이 호텔의 비밀은 무엇인지, 아들이 가진 능력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큰 비중이 없는 아들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아빠와 호텔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영화가 가진 메시지의 윤곽이 보일 것이다. 나에게 영화 [샤이닝]은 "거대한 우주의 사이클에 개인이 관여되는 일은 무차별적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호텔은 과거 인디언의 탄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폭력의 산물이며, 백인들이 자신의 인종적 힘을 무자비하게 사용한 차별의 산물이다. 때문에 수도 없이 많은 억울한 영혼이 그 호텔의 밑에 차갑게 깔려 있으며 이는 과거 자신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던 무지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역사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저 '일어났던 일', 혹은 '나는 모르는 일', 혹은 어쩔수 없는 '우주의 사이클'로 보인다. 단란한-그러나 속사정은 알 수 없는- 그 가족은 그저 일을 따라, 남편을 따라, 부모를 따라 호텔로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온 무고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빠는 악한 호텔의 기운에 잡아먹혀 눈에 보이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고, 아내는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당해 내내 두려움에 떨으며, 아들은 자기가 가진 능력으로 인해 자꾸 괴기한 일을 겪게 된다. 아빠는 극한까지 미쳐가고 호텔은 무자비하며 눈보라 치는 날씨에 외부와 연락도 되지 않는다. 그들은 영문을 모른다. 왜 아빠가 미쳤고, 나는 도망쳤으며, 호텔에 악령이 있는지. 하지만 그들과 우리, 관객들도 사실 제대로 된 이유를 모른다. 호텔이 인디언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아빠를 이용해 그의 처자식을 제물로 바치기를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통해 한 명의 흑인이라도 더 죽이기 위함인지, 어떤 악령인지, 그 악령은 무슨 색의 피부를 가졌는지, 그리고 누구의 피를 원하는지. 숱한 위기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아들과 아내는 끝내 아빠를 멈추기 위해 미로속에 가두어 얼어 죽게 한다. 아들과 아내는 다행히 구출되지만 중간에 그들을 돕기 위해 호텔로 찾아왔던 '흑인' 직원과 다정했던 아빠는 또다른 호텔의 망령이 되었다. 결국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 영화를 보고 있는 지금의 나도 일련의 사건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모른채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러나 딱 하나 어렴풋이 아는 것은 있다. 그 사건의 진위가 무엇이든 그것은 결국 일어났던 일, 일어나는 일, 일어날 일의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한 하나의 행위였다는 것. 누가 그 호텔에 갔든, 누가 호텔에서 죽었든, 호텔이 무슨 마음을 먹었든, 그것은 그저 우주의 사이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허덕이는 한 개인은 아주 처량하고 절박한 꼴을 하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는, 혹은 있'었'다는 것이다.

 

공포 영화라고 하기엔 메시지가 강렬하고, 메시지가 강한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도 무섭다. 오히려 둘 다 강하니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할 지 분간이 가지 않는 영화랄까. 그래서 혼자 헤드폰을 끼고 시청하는 것을 추천한다. 아마 친구와 함께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 될 것이 분명하다.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고 철저히 고립된 느낌을 주는 사운드도 제대로 느껴야 한다. 아무리 아쉽다고는 해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감독이 만든 공포영화다. 이 덥고 습한 여름날에  어찌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The Sh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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