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헤이트풀 8,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3. 18:45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하고

사무엘 L. 잭슨, 커트 러셀, 월튼 고긴스 등이 연기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만의 분명한 장기가 몇 개 있다. 유혈이 낭자한 폭력성, 확실한 쾌감을 위한 소재, 배우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능력, 빼어난 음악의 차용 등. 셀 수 없는 장기들 중 아무도 따라갈 수, 따라 할 수 없는 고유한 아이덴티티는 단연코 '대화의 사용'일 것이다.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에서 정장을 쫙 빼입은 캐릭터들이 마돈나의 싱글 레이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라든가, [펄프 픽션]에서 빈센트와 줄스의 유럽 맥도날드에 대한 대화라던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한스 란다 대령이 프랑스 농부를 심문하는 장면이라든가,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식사 도중 캘빈 캔디와 닥터 킹 슐츠가 나누는 싸늘한 장면같이 타란티노의 영화에는 '대화'라는 매개가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그저 대화를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거나 서사를 진행시키는 것 따위의 일차원적인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가 사용하는 '대화'는 관객을 영화에 깊이 몰입시키고 배우가 가진 최고의 연기력을 뽐낼 수 있게 하며 보는 이에게 언어적 쾌감을 선사하는 고차원적인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헤이트풀 8]에서 타란티노 감독은 그 스킬의 정점을 찍는다.

 

영화는 2016년에 개봉했고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차기작이며 타란티노 감독의 8번째 장편 영화다. 장편 영화를 8편째 제작했다는 것은 자기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과 같지 않을까. 분명 무엇이 성공하고 무엇이 실패하는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자신의 장기를 모두 파악하고 있고 숱한 성공을 거둔 타란티노 감독은 아마 [헤이트풀 8]을 통해 그 장기의 한계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마치 박찬욱 감독이 [공동경비구역 JSA]의 대박 이후에 [복수는 나의것]을 만든 것처럼 말이다. 우선 소재는 미국과 미국 역사, 미국 인종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남북전쟁, 남부군과 북부군, 영어의 억양, 멕시코인, 흑인, 현상금 시스템, 에이브러헴 링컨 등 당시 미국의 시대상과 인간상을 보여주는 소재가 90%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는 타란티노의 역사물들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나는 경향이지만 [헤이트풀 8]은 다른 영화들과 달리 친절한 내러티브나 확실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미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캐치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캐스팅은 어떤가. [펄프 픽션], [재키 브라운], [장고: 분노의 추적자] 등 많은 작품에서 연기한 사무엘 L. 잭슨은 말할 것도 없고, 커트 러셀이나 제니퍼 제이슨 리 같은 훌륭한 배우는 물론이거니와 [저수지의 개들]에서 주연을 맡았던 팀 로스와 마이클 매드슨도 등장하며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찰떡같은 남부 억양을 소화한 월튼 고긴스도 이 영화에서 주역을 맡고 있다. 한마디로 타란티노 사단(물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레드 피트는 빠진)의 총출동이다. 만약 지금까지의 타란티노 영화들을 많이 챙겨본 씨네필이라면 당연히 시청할 수밖에 없는 캐스팅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표현적인 면도 다분히 타란티노 적인데, 이는 앞서 언급한 '대화'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헤이트풀 8]은 다른 모든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대사가 나온다. 주연급 캐릭터는 최소 5명인 데다가 영화의 설정 자체가 폭풍에 갇힌 한 잡화점에서 일어나는 살벌한 심리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물리적으로 계속 마주쳐야 하고, 이들은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같이 마시며 서로를 협박하기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면서 정말 많은 대사를 주고받는다. 아마 타란티노의 팬이라면 둘도 없는 값진 영화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딱히 그의 팬이 아니거나 만약 팬이어도 타란티노 감독의 다른 면, 예를 들면 피가 튀는 폭력성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쓸데없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한정된 장소 안에서 대화로만 진행되는 서사 방식은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영화의 설정상 어쩔 수 없이 방대한 양의 대화 속에서 가끔씩 사건이 일어나며 그 흐름을 정리해주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대사량은 많고 러닝타임은 길기 때문에 몰입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당연히 빼놓을 수 없다. 타란티노 감독의 장기 중 하나인 빼어난 음악의 차용([펄프 픽션]에서 트위스트 추는 장면, [킬 빌]의 잠입 액션 장면, [저수지의 개들]의 오프닝 시퀀스 등)은 이탈리아의 영화 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 감독을 맡으면서 더욱 훤칠한 모양새를 가지게 됐다. 영화의 처음부터 펼쳐지는 설원을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영화가 모두 끝난 뒤에 흐르는 구슬픈 음악, 중간중간 긴장감을 유발하여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음악까지 사용된 모든 OST는 관객의 성향에 따라 살짝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에 지속적인 심폐소생술을 해주어 모두가 집중할 수 있게끔 도움의 손길을 내밀곤 했다. 

 

이 영화는 딱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류는 아니다. 분명 캐릭터들간의 대화나 심리적인 연출, 진짜 범인(이라고 쓰고 더 나쁜놈)을 찾으며 서로 의심하는 모습을 긴장감 있게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정수다. 물론 대부분의 타란티노 영화가 그렇지만 오락적인 부분에서 바라보면 이만한 설정이 없다. 따분하고 고지식한 메시지는 빼버린 채 대사와 연기, 훌륭한 서사만으로도 관객을 홀릴 수 있다는 것은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하나의 짓궂은 장난이 아닐까.

 

 

 

[The Hateful Eight]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