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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버팔로66, 빈센트 갈로]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7. 30. 03:17

 

 

빈센트 갈로 감독이 연출하고

빈센트 갈로, 크리스티나 리치 등이 연기한다.

 

여러 종류의 영화가 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연출로 사람의 눈을 홀리는 영화, 사유 거리를 던져주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지닌 영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완벽히 구현해내는 영화 등. 그렇다면 [버펄로 66]은 어느 영화일까. 사실 이런 영화들은 구분 짓기 상당히 모호하다. 강력한 메시지를 지닌 것도 아니고 전위적인 촬영기법을 뽐내지도 않았으며 배우의 연기가 무척 뛰어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류의 영화는 보통 관객들이 무엇에 집중해서 봐야 할지 긴가민가하기 마련이고 그것은 대중의 호불호에 판별되어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굴지의 독립영화나 예술영화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은 오히려 감상하는 방법이 다른 영화들에 비해 더 쉽다. 독립, 예술 영화들은 보통 저예산으로 촬영되어 관객들에게 그렇게 많은 양의 감정이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어렵다. 유명하지 않은 배우에 그 수도 적으며 과도한 VFX는 예산이 받쳐주지 못하고 다양한 로케이션에서의 촬영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위와 같은 영화들의 어떤 부분에 집중해서 봐야 할까? 사실 아주 간단한 단계만 거치면 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영화의 집중을 유발하는 요소들 중에서 가장 뚜렷한 것들인 메시지, 연출, 캐릭터를 제외해보자.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분위기다.

 

[버펄로 66]은 분위기와 느낌으로 봐야 하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빌리 브라운(빈센트 갈로)은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인물이다. 부모님의 사랑도 못 받았고, 친구는 아둔하며, 바보같이 전과가 생겼고, 평생 짝사랑만 해왔다. 어디 그것뿐인가. 자격지심, 의지박약, 위선, 거짓, 폭력성, 예의 등 사회에서 정상적인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 소양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태어나 걸음을 뗀 순간부터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 자란 그는 시간이 지난 들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하고 모든 것은 천천히 무너져가기 시작한다. 출소 후 여러 일들을 겪으며 좌절하는, 그러나 아등바등 버티는 그의 모습은 처량하기 짝이 없다. 거기에 영화는 한 술 더 떠서 그의 서사를 더욱 비극적으로 연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 흔한 소변도 못 보게 하거나 고작 볼링장 주인에게 인정받는 하찮은 과거, 학창 시절 내내 짝사랑한 여인과의 부끄러운 조우 등을 적절한 타이밍에 띄엄띄엄 배치해두었고 이에 더해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통해 인물이 느끼는 무력감과 냉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는 관객에게 빌리 브라운의 삶을 불쌍하게 바라보게끔 유도하고 있는 것이며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도 정적인 시퀀스와 종종 시도되는 초현실적 연출이 합쳐져 어떤 모호한 분위기를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분위기'란 다소 추상적인 단어여서 어떤 감정을 표방하고 있는지 딱 잘라 설명할 수 없지만 이는 아마 측은함이나 애처로움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빌리는 자신의 삶을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린 주범은 아니다. 그런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분명 과거 스포츠팀의 영광만을 좇으며 자식의 알레르기 유무도 모르고 있는 그의 어머니일 것이며, 목욕할 때에도 1인치의 온수만 받게 하는 인색하고 편협한 아버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측은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의 인생이 더 나락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일까. 뭐 그렇게까지 무기력한 영화는 아니다. 우리는 이제 빌리에게 납치됐던 여자 라일라(크리스티나 리치)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라일라는 출소한 뒤 돈이나 차, 여자 친구 등 여러 가지가 필요했던 빌리가 납치한 한낱 탭댄스 수강생이다. 그러나 그녀는 별 불만 없이 강압적이고 무례한 그의 부탁을 모두 들어준다. 부모님과의 부담스러운 식사자리를 동행한다거나 손수 차를 운전해주기도 하고, 볼링장에 따라간다거나 부모님을 속일 사진을 같이 찍어주기도 한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천사다. 어느 누가 생판 모르는 남을 이렇게까지 돌봐주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녀의 존재에 의심을 품게 됐다. 그녀가 당연히 빌리의 상상 속 인물은 아니다. 분명 핫초코를 마시고 있고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빌리의 짝사랑과도 짧은 대화를 했으니. 그러나 그녀에 대한 설명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상태였으며,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라일라는 그저 빌리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어느 순간 그에게 사랑에 빠진 순종적이고 순수한 인물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영화가 내뿜고 있는 분위기에 대해 떠올려보자. 영화는 여러 장치를 통해 우리가 빌리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갖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영화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우리는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하다 못해 커피 한잔 마실 2달러도 건네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의 옆엔 늘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는 순종적인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은 그를 위해 그가 원하는 것은 전부 해주었다. 운전해달라고 하면 해줬고, 가달라고 하면 가줬으며, 함께 있어달라고 하면 함께 있어줬다. 마치 우리가 그를 위해 해주고 싶었던 마음을 대신 이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감정을 투영하여 가려운 곳을 대신 긁어주는 시원함과 해소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다른 의미로는 빌리를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주고 챙겨주는 사람은 그의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영화는 결국 빌리의 갱생으로 마무리된다. 5년 동안 이를 갈았던 복수는 상상에서 그쳤고 보잘것없던 자신의 옆을 묵묵히 지켜줬던 라일라에게 한 발자국 어렵게 다가간다. 라일라에게 가져다 줄 뜨거운 핫초코와 하트 모양 쿠키를 사는 그의 웃는 얼굴에서 우리는 어쩌면 당연한 편안함과 뿌듯함을 느낀다. 이것은 분명 감독이 의도한 분위기에 올라타 라일라를 통해 빌리의 진화를 진심으로 바란 관객들만이 누릴 수 있는 색다른 영화적 경험일 것이다. 

 

덤덤하고 차분한 영화다.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로 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영화의 전체적 메시지로 보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여러 요소들의 부재로 인해 이 영화는 아쉽게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수 있는 대작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가슴속에 깊숙이 자리 잡아 무한한 온기를 전달할 핫초코 같은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Buffalo'66]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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