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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프라이멀 피어, 그레고리 호블릿]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7. 29. 16:17

 

그레고리 호블릿 감독이 연출하고

리처드 기어, 로라 리니, 에드워드 노튼 등이 연기한다.

스포일러가 있다. 조심!

 

나랑 동갑인 영화다. 90년대 중반에 개봉했으니 그만큼 꽤 시간이 지난 작품이다. 유명한 감독의 영화는 아니다. 그레고리 호블릿은 [프라이멀 피어]와 비슷한 심리 수사극을 자주 제작했는데 그렇게 작품 활동을 자주 하거나 엄청난 히트작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국내에 이 작품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이는 감독의 유명세와 굳이 관련짓지 않아도 작품의 제목이 주는 힘이 약해서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Primal Fear, 원초적 두려움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인간의 본능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고찰)를 생각해본다면 '근원이 가진 두려움'이 더 맞을 것이다. 그 인간의 본능을, 즉 근원을 직접 마주보고 고찰하는 일이, 혹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뒤바뀌는 일이 두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제목이 모호하고 중의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 데다 국내에선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고 원제로 개봉해 확실한 제목의 인상을 남기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럼에도 영화는 훌륭하다. 기본적으로 전개 속도도 빠르고 배우들의 연기는 출중하며 반전의 요소도 극적이게 표현했다. 또한 법정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데, 증인을 심문하거나 증거를 제출하고 검사와 변호사의 피튀기는 썰전을 볼 때는 상당한 각본적 파워를 갖추고 있어서 눈과 귀가 함께 즐겁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집중을 저해하는 서사적 구멍이다. 주인공인 베일(리처드 기어)과 베나블(로라 리니)의 애틋한 관계는 보여주지 않았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고, 검사장과 파이네로가 연루된 부동산 사건도 크게 다룰 필요가 없는 내용이었다. 아마 베일의 인간성을 내비치기 위해 넣은 장치들 같은데, 이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숨겨진 선한 얼굴을 부각한다기보다는 냉정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일로 흔들리는 아마추어적인 면모가 드러나 캐릭터성이 저해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다 필요 없다. 이 영화는 에드워드 노튼에 의해 시작되고 에드워드 노튼에 의해 끝난다. 

 

 

국내 대표적인 영화 잡지사인 씨네 21의 [프라이멀 피어] 관객 리뷰 중 이런 말이 있다. "사람들이 왜 에드워드 노튼이라고 하는지 알게 해준 영화". 백번 곱씹어도 맞는 말이다. 에드워드 노튼은 당시 27세의 나이로 2000:1의 경쟁률을 뚫고, 그 아이코닉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제치고 이 영화에 캐스팅됐다. 노튼의 어버버 거리는 연기가 그가 뽑힌 결정적인 역할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노튼의 데뷔작이다. 벌써 말문이 막힌다. 어떻게 연기력을 갈고닦아야 데뷔작에서 이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는 걸까. 노튼은 '애런 스템플러'를 연기하는데, 그는 이중인격자로서 애런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로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인격체를 불러낸다. '애런'은 극히 소심하고 모든 문장을 더듬으며, 자신에게 학대를 가한 주교마저 감싸는 모습을 보이지만 반면에 '로이'는 완전 딴판이다. 공격적이고 입이 험하며 폭력을 일삼는 무뢰한이다. 그 상반된 두 모습을 연기하는 노튼의 모습은 정말 같은 사람이 맞나 싶다. 보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더라. 일전에 시청한 [버드맨]에서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를 보고 감탄해서 찾아본 영화인데, [버드맨]에서도 정말 훌륭하지만 이 [프라이멀 피어]에서의 연기는 이 배역에 다른 어떤 배우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는 꽤 심오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한가 악한가에 대해서 묻는다. 주인공인 베일은 대중에게 악당들을 변호하고 돈과 유명세만을 좇는 속물적인 인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진실된 속마음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물론 돈과 명예도 좋지만 그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선한 존재라는 성선설을 기반으로 그들을 변호하고 있다. 그래서 누가봐도 명백한 범인인 애런을 감싸고 변호하며 그를 전적으로 보호한다. 차츰 애런이 이중인격자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베일은 더욱 그를 옹호하며 1급 살인을 벌인 범인이 아니라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라고 피력한다. 끝내 베일은 온갖 술수(?)와 변호를 통해 애런에게 무죄라는 결과를 안겨다준다. 여기까지만 보면 베일에게 있어서 해피 엔딩이다. 인간의 근원적 선함을 증명했고 무분별한 사형을 막았기 때문에 두 발 뻗고 잘 터였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은 그 모든 것을 뒤엎는다. 모든 이중인격적 행위는 로이가 연기였고 그는 살인을 즐겼으며 애초에 무자비하고 잔인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애런'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베일은 크나큰 충격에 휩싸인다. 대중의 욕지거리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성선설을 믿으며 온 힘을 다해 변호했던 인물이 그의 뿌리 깊은 사상을 통째로 엎어버린 것이다. 모든 것이 '로이'의 연기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베일은 이제 다른 국면을 맞닥뜨렸다. 과연 인간의 근원은 선한지 악한지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사상의 진의를,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에 대해 세상과 마주 보며 고찰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너무도 공포스러운 일일 것이며 쉽게 끝나지 않는 싸움일 것이다. 항상 진실은 두려운 법이다. 진실 그 자체가 두려운게 아니라 진실이 내가 예상하고 상상한 것과 전혀 다를까봐 두려운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진실을 원하지만 그걸 마주볼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의 제목인 Primal Fear는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봤다. 앞서 나열한 서사적 구멍도 그리 거슬리지 않을 정도고, 애초에 노튼의 연기가 나에게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한 배우의 기념비적인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Primal Fear]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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