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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어색한 만남 더 어색한 헤어짐]

by jundoll 2021. 2. 21. 15:14

 

최근 함께 일하고 부딪히며 같은 일터에서 동고동락했던 친구 둘(과 동생 한 명)이 퇴직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신의 힘을 남몰래 스멀스멀 펼치고 있었을 20년 2월부터 일주일에 5일씩 꼬박꼬박 보던 친구들과 정확히 1년이 지나 작별인사를 한다. 그 시절, 우리 꼭 같이 2년 만기를 채우고 나가자! 라며 다짐을 나눴던 친구들과 이제 실없는 농담을 나눌 수 없다.

 

20대가 꺾여 후반이라는 길목으로 서서히 들어서는 이 시점이면 만남과 헤어짐이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아마 평생을 살아도 이런 감정은 낯설기만 할 것 같다. 만남은 언제나 설레고, 헤어짐은 언제나 애석하다. 

 

처음에 쑥스러워하며 서로를 알아가던 엉뚱한 질문들이,

취미와 성격이 비슷하다며 잘 지내보자며 떨던 방정들이,

밤이 깊어지도록 셀 수 없이 나눴던 진중한 대화들이,

눈만 마주치면 아무 의미 없이 할 수 있던 농담들이,

퇴근하고 역을 향해 함께 걸었던 순간들이 좋았다.

 

우리는 서로를 신랄하게 깎아내리기도 했고,

언제나 든든한 편이 되어주기도 했으며

느낀 감정이 서로 달라 꽤 서먹하기도 했고,

똘똘 뭉쳐 어려운 일들을 해 나가기도 했다.

 

1년의 시간은 길고 긴 인생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아직 확실한 직업이나 안정된 삶이 없고 무언가를 준비하며 태동하는 시간이었다면 더욱 비중이 적다. 하지만 그 당시를 살아가는 순간에는 이 1년이 얼마나 값졌는지, 얼마나 헛되게 보냈는지 꼭 따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친구들과 함께 보낸 1년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언젠가부터 친구들의 마음도, 친구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종종 깨달을 때가 있다. (아마 전역을 한 뒤 부터인 것 같다.) 이제는 친구가 내가 모르는 길, 내가 없는 길, 나랑 멀어질 것 같은 길을 간다고 해도 말릴 수 없다. 이전 같으면 떼를 쓰고 구슬리고 회유하며 어떻게든 같이 있고 싶어 했을 텐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내 인생은 나밖에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친구가 결정하는 모든 길은 친구가 책임지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옆에서 묵묵히 응원하거나 지켜보는 일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기 발자국은 자기가 남기는 것이지 발 사이즈도, 신발의 모양도 다른 옆에 가던 친구가 대신 찍어줄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친구의, 지인의 결정에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이유도, 근거도, 힘도 없다.

이유를 대기엔 유치하고, 근거를 대기엔 부실하며, 강요를 하기엔 힘이 없다.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가 삭막해졌다는 것은 아니다.

친구의 역할은 '듣는 것' 이상이 될 수도, 될 필요도 없다.

 

때문에 나는 섭섭한 마음을 접어두고 진심 어린 응원과 사랑을 보내고 싶다.

가는 길에 굳이 섭섭함이라는 점을 찍어두면 뭐 하겠나.

불편한 마음에 뒤는 한 번 돌아볼 수 있게 만들지언정

친구가 가는 길에 표지판도 하나 놔주지 못할텐데.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사람을 만나든, 한 줄로 명료하게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동갑내기 친구들과 함께한 이 1년의 시간은,

아둥바둥 미래를 위해 계속 고민하며 끊임없이 웃었던 시간이다.

 

이 길이 맞는지, 저 길이 맞는지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았다.

고민과 걱정이 끝나는 시점은 꼭 선택하여 나아갈 때더라.

이제 친구들은 선택하여 나아가니, 고민과 걱정이 조금이나마 덜길 바랄 뿐이다.

 

하루 종일 웃어서 머리가 아프고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웃길 줄 알고, 웃을 줄 아는 사람은 어딜 가도 사랑받는 것 같다.

친구들이 어딜 가서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웃긴 사람들만 만났으면 좋겠다.

 

잘 됐으면,

그 길이 맞았으면,

혹 맞지 않더라도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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