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

♥ [마이네임, 시즌1] 드라마리뷰

by jundoll 2021. 10. 21. 15:54



한소희 배우를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게 한 [마이네임]은 10월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다. [인간수업]으로 유의미한 성공을 거뒀던 김진민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으며 당시 음악감독이었던 황상준 음악감독과도 다시 호흡을 맞췄다. 총 8화이고 러닝타임을 합치면 387분이다. K-콘텐츠, K-드라마는 최근 국제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킹덤]에 이은 [D.P.]와 [오징어게임]의 삼단 콤보는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 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줬으며, 감독들은 지금껏 숨겨온 '자유'를 넷플릭스의 거대한 자본을 토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 그 '자유'를 한껏 활용한 드라마가 있다.

[마이네임]은 처참히 살해당한 아빠의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조직에 몸을 담그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체적인 맥락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디파티드]나 유덕화, 양조위가 출연하는 [무간도], 그리고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와 비슷하다. 스토리라인은 대개 조직원이 경찰로 위장하여, 또 반대로 경찰이 조직원으로 위장하여 서로의 정보를 빼내고 이득을 취하며 끝내 공멸하게 되는 구조다. 이런 영화는 보통 기존의 소속 집단과 새로운 소속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개인의 내적 갈등을 주로 다룬다. [디파티드]의 맷 데이먼과 디카프리오가 그랬고, [신세계]의 황정민과 이정재도 그랬다. 그러니 굳이 같은 스토리라인을 가진 드라마가 또 만들어지려면 차별점이 필요하다. 같은 구조 속에서 콘셉트가 다르거나, 캐릭터가 유별나거나,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야 한다. [마이네임]은 그런 관점에서 성공과 실패의 요인이 명확하다.

 


성공의 요인은 우선 배우의 활용이다. 지금껏 하드보일드 누아르 장르에서 여성의 역할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어떤 주연(보통 남성인)의 협박책으로 쓰이거나 끽해야 미인계를 쓰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이는 장르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라고 포장할 수 있긴 하다. 그리고 이제 그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성별을 장르에 국한하는 행위는 요즘 시대엔 구닥다리처럼 보인다. 그런 실정에 주인공을 여성으로 설정하여 하드보일드 누아르를 이끌어가는 도전은 유의미하다. 당연히 걱정은 된다. 소화하기 어렵고 통쾌한 액션은 생물학적 특성상 남성이 유리하다. 그래서 여성이 이런 장르에 어울리려면 정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어설프고 유치해 보이기 때문에. 그러나 주연 윤지우를 연기한 한소희 배우는 이런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1화부터 8화까지 모든 장면에서 한소희 배우의 액션은 개인적인 관점에서 지금껏 한국의 문화 창작물에서 나왔던 여성의 액션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 [악녀]의 김옥빈 배우나 [마녀]의 김다미 배우의 액션도 분명 좋았지만, 이는 사실 배우의 액션에 치중했다기 보단 카메라 워킹이나 편집기술에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번 [마이네임]에서 한소희 배우가 보여준 맨몸액션의 평가가치는 더욱 높다. 한소희 배우가 직접 인터뷰에서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하기 위해 엄청난 연습을 했다고 한다. 또한 김진민 연출가는 한소희 배우가 먼저 솔선수범 연습한 덕에 다른 배우들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도 한다. 신선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액션에만 치중해 연기에 소홀하지도 않았다. 소중한 사람을 모두 잃고 흔들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수립하기 위해 죽을 듯 애쓰는 캐릭터를 어색하지 않게 잘 소화했다. 장르 드라마의 특성상 자칫 잘못하면 표정연기나 대사가 유치해지기 십상인데, 적어도 주연인 한소희 배우의 연기는 몰입을 방해하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마이네임]을 통해 한소희 배우가 또 다른 국면으로 넘어갔다는 생각이 든다. 차가운 도시 여자의 이미지가 강해 큰 스펙트럼을 갖진 못할 거라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다. 한소희 배우는 이제 포지션이 넓어졌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예전엔 손예진이나 고소영의 느낌이 다였는데, 이젠 전지현, 김옥빈, 김혜수가 추가됐다. 이는 여성 서사 문화 창작물이 점점 더 많아지는 태동의 시기에 적합한 발전이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고, 그녀의 부단한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드라마에서 액션을 직접 경험해보길 바란다.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배우의 모습, 액션의 양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의 요인에 대해 줄기차게 읊었다. 그러나 사실 이 드라마는 성공과 실패의 비율이 4:6이다. 단점이 장점보다 부각되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내가 느낀 단점은 세개다. 첫 번째 단점은 명확하다. 여성 서사인 점을 제외하면 지금껏 나온 문화 창작물과의 차별점이 전무하다는 점. 우선 모든 클리셰를 답습한다. 특히 박희순 배우가 연기한 최무진이라는 캐릭터는 국내 최대 마약 조직인 동천파의 보스인데 내뱉는 대사, 짓는 표정, 하는 행동 모두가 클리셰다. 특히 박희순 배우는 그런 진중한 연기 전문 배우인지라 신선 함마 저도 없는 나머지 다소 뻔하게 보인다. 그리고 이학주 배우가 연기한 최무진의 오른팔인 정태주 캐릭터도 클리셰 그 자체다. 대사가 예상이 될 정도고 그나마 배우라도 어울렸던 박희순의 경우와는 달리 배역의 싱크도 잘 맞지 않아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다. 이에 더해 극 중 한소희 배우가 연기한 윤지우가 가명을 써 위장 취업하는 인창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의 모든 배역도 뻔하다. 어느 누아르, 범죄, 수사물을 봐도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 똑같은 쇼를 다시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한소희 배우가 다 커버할 수 있는 정도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수준이 낮지 않고 스토리라인도 예상이 가지만 편집과 음악으로 버틸 수 있는 정도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가장 큰 문제, 두 번째 단점은 극의 절반 가량인 5화까지 극을 주름잡는 빌런, 도강재의 존재다.

 


도강재는 1화에서 윤지우에게 싸움에서 진 이후 열등감에 휩쓸려 못된 짓을 저지르려다 실패해 칼로 얼굴을 그이는 상처를 받고 조직에서 퇴출당했다. 이는 그가 심히 흑화하게 된 주 요인이었으며, 5년 뒤 새로운 마약을 시장에 유통하는 뉴페이스로 재등장한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어떻게 마약 시장의 거물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는 점. 또, 도강재가 재등장했을 때의 콘셉트가 너무도 작위적이라는 것.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목 부근과 얼굴에 타투가 있고 다소 양아치스러운(?) 헤어스타일과 외관을 하고 있다. 우선 비주얼부터 왜 갑자기 선한 동생 같은 이미지에서 서양 물 먹은 콘셉트 양아치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적어도 미국에 근거지를 둔 갱단에서 몇 년 동안 몸을 담갔다던지, 악마와 영혼을 거래해 인간성을 상실했다던지 하는 설명이라도 있어야 캐릭터의 재등장에 대한 이유가 생길 텐데, 그런 건 전혀 없다. 본인이 잘못을 해서 조직에서 퇴출당해놓고 보복을 하려고 하는 미친놈일 뿐이다. 비주얼은 마치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와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빌런 '도플라밍고'를 합친 듯 보인다. 비주얼보다 더 큰 문제는 연기인데, 전혀 [마이네임]스럽지가 않다. 분명 드라마의 맥락은 소속 집단에서 개인의 복수를 실행하기 위한 한 인간의 처절한 투쟁을 다루는데 저 도강재가 나오는 순간마다 단순한 마약 수사물이 되어버린다. 맥락에 맞지 않는 빌런의 비중이 다소 많고, 나올 때마다 극의 핍진성을 흐리니 집중은 당연히 깨진다. 집중이 깨지니 보이지 않던 스토리상의 단점도 부각된다. 악역의 존재가 드라마의 정체성을 흐려버린 것이다. 차라리 도강재라는 캐릭터를 빼고 윤시우와 최무진, 전필도와 차기호의 이야기를 더 깊게 다뤘어야 했다. 드라마의 절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도강재의 존재가 그저 더 거대한 악역의 존재를 잠시 숨겨두기 위한 차선책이었다고 하기에는 피해가 너무도 크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쓸 수 있겠다.

 


과유불급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단점은 수위의 조절이다. 넷플릭스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정말 멀리 선을 넘지만 않으면 웬만해서 받아준다. [킹덤]이나 [오징어게임]의 수위도 꽤 높다. 그러나 합당하게 높고, 강약 조절이 확실하다. [마이네임]은 이를 남용했다. 아무리 하드보일드 누아르라지만 매 회마다 칼로 사람을 쑤시는 장면을 보여줄 이유는 없다. 당연히 자극적인 건 몸에 안 좋은 만큼 흥미롭다. 그리고 요즘의 대중은 친절하고 착한 콘텐츠보다 자극적이고 나쁜 콘텐츠를 좋아한다. 넷플릭스 콘텐츠가 지상파 드라마보다 인기가 많고 더 많은 유행과 관심을 부르는 이유도 같다. 그러나 항상 적당히가 중요하다. [마이네임]은 통쾌한 액션이 분명히 있지만 과하게 잔혹한 면도 존재한다. 스토리를 완만하게 풀어가기보다는 자극적인 장면과 액션으로 때우는(?) 느낌이 들 정도니, 분명 필요보다 많다. 자극적인 건 분명 흥미가 간다. 그러나 라면도 매일 먹으면 질리고 배탈 난다. 칼로 사람을 쑤시고 총으로 쏘는 레퍼토리가 8회 정도 반복되니 극의 후반부엔 액션이 흥미롭지가 않았다. 훌륭한 액션을 뻔하게 만들어버렸으니, 과유불급은 역시 만고의 진리다.

도강재가 5화에서 허무하게 퇴장한 이후 드라마는 그제야 제대로 시작한다. 주인공들의 사연을 풀고 없던 로맨스가 생기며 갈등도 해결한다. 애초에 복잡하지 않은 서사를 가지고 있고, 예상이 가는 시나리오기 때문에 서사도 빠짐없이 마무리하긴 한다. 그러니 앞서 언급한 빌런의 존재가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금 더 다듬었다면 웰메이드가 될 수 있는 드라마였다. 한소희 배우의 액션은 빛을 발했고 음악과 편집도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마이네임]은 관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게 하는 힘이 부족하다. 빌런의 존재가 허술한데 비중이 크고, 클리셰가 범벅되어 스토리는 뻔하기 때문에. 뭐, 관점을 액션에 두고 킬링타임용으로 드라마를 대한다면 좋은 선택이 될 수는 있겠으나, K-콘텐츠가 왕성히 제작되는 요즘 이 정도의 완성도로는 큰 성공과 좋은 반응을 기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특정 배우의 스펙트럼을 넓혀준 것 만으로 좋은 드라마가 될 순 없다. 그러나 미래적인 관점에서 좋은 배우들이 다양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풀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오징어게임]의 비정상적일 정도의 성공은 한국 콘텐츠 시장의 판도를 바꿔놨다. 앞으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콘텐츠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서, 더 좋은 작품이 나오기를 바라는 건 문화를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당연한 바람일 것이다. 그리고 콘텐츠의 질을 떠나 강한 힘을 가진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은 대중의 관심이다. 좋은 작품이든 좋지 않은 작품이든 누군가가 정리한 요약본 대신 직접 보고 평가해야 한다. 다양한 평가는 다양한 양상을 만들고, 다양한 양상은 다양한 도전을 만들며, 다양한 도전은 다양한 결과를 낳는다. 문화강국이 되어가는 한국 사람임이 스스로 자랑스러워지는 시국이다. 우리에겐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평가할 시간이 충분히 있다. 그러니 느긋하게 기다리고 나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일이 이토록 즐거울 수가 없다.

 

 

 

[마이네임] 시즌1.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