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T2 트레인스포팅, 대니 보일]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30. 02:59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하고

이완 맥그리거, 이완 브렘너 등이 연기한다.

 

대니 보일이 선보였던 에든버러 청년들의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마약 탐험기를 그린 [트레인스포팅]의 후속작 [T2 트레인스포팅] 되시겠다. 왜 T2일까? [트레인스포팅 2]도 아니고 [트레인스포팅 ver2]도 아니고 [T2 트레인스포팅]이라니 만약 T2의 T가 Trainspotting이라면 굳이 두 번 쓸 필요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리 영문으로 검색해도 T2에 대한 뜻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혹 누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꼭 댓글로 나의 무식을 지적해주기 바란다. 

 

영화 [T2 트레인스포팅]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전작의 시퀄이다. 그래서 전작을 반드시 봐야 한다. [아이언맨 1]을 시청하지 않고 [아이언맨 2]를 보면 토니 스타크는 왜 저렇게 재수가 없는지 알 길이 없듯 [트레인스포팅]을 보지 않은 채 [T2 트레인스포팅]을 보면 전혀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나는 전작의 블로그 글을 쓰는 1시간 정도를 사이에 두고 연속으로 시청했다. 그러니 전작의 오마주를 모두 이해할 수 있었고 당연하게도 1996년과 2017년, 21년의 기간을 사이에 두고 시청한 사람들보다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전작에 비해 재미가 떨어진 것은 확실하다. 아니, 사실 재미가 떨어졌다기보다 중요하게 다루는 지점이 다르다. 1편에서 청년들의 마약중독과 파멸, 청춘의 헛발질에 대한 이야기, 즉 '방황'이 주된 내용이었다면 이번 2편은 1편에서 저질렀던 일, 배신했던 친구, 떠났던 고향에서의 '청산'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편에서 우리가 느꼈던 그 방탕함과 막가파 정신은 그리 짙게 묘사되지 않는다. 21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청춘'이라는 기차를 떠나보낸 그들은 아무래도 나이를 먹었는지 조금 더 교활해졌고 조금 더 계산적 이어졌으며 조금 더 생각이 많아진 모습을 보인다. 세월은 무시 못 하나 보다. 예전처럼 잘 달리긴 해도 속도가 느려졌고 예전처럼 클럽에 가서 놀아도 그리 재밌게 놀지 않는다. 1편 리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미 다 해 봤기 때문이다. 해 봤자 잠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 망나니들의 '청춘'이라는 반짝이는 기간이 끝나 40대 아저씨가 된 모습을 보면 처연하기도 하고 괜히 그리워지기도 한다. [스킨스]에서도 같은 기분을 느꼈는데 영국 애들 특징인가 보다. 

 

 

영화는 다시 애든버러로 돌아온 렌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청산하고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궁금하다. 굳이 돌아와야 했을까? 자신이 배신한 친구들과 말도 안 하고 떠난 가족, 자기만을 바라보던 어린 애인과 평생 살았던 동네를 뒤로 하고 떠났으면서. 심지어 어마어마한 돈을 가지고 떠났으면서. 아무리 돈을 다 쓰고 아내와의 관계가 틀어져 이혼했다고 해도 자기 목숨이 아까웠다면 암스테르담에서 그냥 사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식 보이의 여자 친구인 베로니카가 대신해준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뭐가 있냐는 렌튼의 질문에 베로니카는 "Emotional attatchment"라고 대답한다. 이른바 '향수'. 또 다른 단어로는 '안정감'이 될 수 있겠다. 그렇다. 죽을 각오를 하고 돌아온 렌튼도 분명 그 안정감을 위해서, 비록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친구들이 두 세명이 있음에도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 주는 분명한 힘에 이끌린 것이다. 심지어 거기에 마무리짓지 않은 과오까지 있으니, 이젠 오히려 돌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분명 '추억'이다. 나도 가끔 지금 살던 동네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동네에 가곤 한다. 10년, 15년 전에 살았던,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 동네를 가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추억이 있다. 매일같이 뛰던 거리와 들리던 슈퍼, 넘던 담과 차던 공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아도 분명하게 기억이, 혹은 냄새가 나곤 한다. 렌튼도 분명 21년 동안 거주했던 암스테르담에서 한시도 에든버러를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특히 영화에서 나왔던 것처럼 갓난 아기 때부터 20대 초반까지 함께했던 친구와의 추억이 모두 남아있는 고향은 절대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의 친구들은 본격적으로 새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적성을 찾기 위해, 피의 복수를 하기 위해 각자 움직이기 시작한다. 물론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여전히 막장 인생들을 달리고 있기는 하다. 돈 가지고 떠나 잘 살것만 같았던 렌튼은 이혼남이 되어 집에서도 쫓겨나고 친구도 가족도 뭣도 없는 상태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고, 스퍼드는 여전히 마약에 찌들어 살고 있으며, 식 보이는 여자 친구를 팔아 돈을 버는 쓰레기로 전락했고, 프랑코는 20년 동안 감옥에 썩어 있다가 이내 탈옥하는 미친 짓을 일삼고 자신을 배신한 렌튼을 추적하기에 이른다. 뭐 결과는 뻔하다. 모든 일은 다 어설프게 풀린다. 각자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이루는 사람은 이 넷 중에는 딱 하나 스퍼드밖에 없다. 그는 엄청난 기억력의 소유자였고 그걸 토대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물론 마약중독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뭔가에 몰두할 게 필요해서 우연치 않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뜻밖의 재능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자신과 친구들이 어릴 적 겪었던 모든 일에 대해서 미친 듯 적어 내려 가기 시작한다. 여차저차 사건은 -뻔하게,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마무리된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스퍼드는 자신이 집필한 내용을 출판하기 전에 헤어진 아내에게 보여주는데, 여기서 아내는 이 글에 제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무언가에 미쳐있었고 무언가에 열중해 있었던 그 시기. 그것이 좋은 일이었든 좋지 않은 일이었든 '청춘'이라는 이름 하에 많은 일들을 저질렀던 그 시기. 싸웠었고 헤어졌었고 사랑했었던 그 시기. 그 시기들을 모두 기록한 스퍼드의 '그 책'의 이름은 영화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당연하게도 그 책의 이름을 알고 있다. 플랫폼에 서서 아무 일도 아닌 일에 미치도록 빠져있었던, 그러니까 [Trainspotting] 했던 그 시절을 그저 옮겨놓은 책이니까 말이다. 

 

 

거의 완벽한 마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1편에서 끝냈어도 충분했지만 분명 렌튼에겐 어지른 채로 치우지 않은 마음속 방이 여실히 존재했다. 그 미완의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준 대니 보일에게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그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순간 우리가 그들과 공유했던 그들의, 혹은 우리의 청춘도 함께 제대로 닫혔으니까 말이다. 영화에서 나온 대사처럼 "우리가 변하지 않아도 세상은 변한다". 영화 속 그들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어도 클럽에서 춤 하나 따라 하지 못할 만큼 세상은 변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서야 서로의 응어리를 푼 그들은 이제는 정말 각오해야 한다. 앞으로 헤쳐나갈 삶과 관계에 대해 다시금 정립해야 한다.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나 영화는 현실의 거울이다. 이 같은 확장적 결말, 그러니까 시리즈의 연장을 통해 맺은 결말에는 분명 우리에게 보내는 작은 조언의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훌륭한 마무리였다. 

 

영화의 연출적인 요소, 편집적인 요소는 굳이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1편과 동감독이기 때문이다. 21년 동안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산 에든버러의 망나니들처럼 대니 보일 감독도 계속 영화를 찍어 왔다. 실력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을 테니 이 영화에서 연출적인 모든 요소, 편집, OST, 묘사, 기법은 전혀 거슬릴 게 없다. 21년 전 [트레인스포팅]과 다른 점이라곤 그때 와는 달리 마약을 그리 자주 하지는 않아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묘사가 현저히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적인 묘사와 폭력적인 수위는 현저히 더 낮아졌다. 핵불닭볶음면이었던 [트레인스포팅]의 소스를 반쯤 빼고 먹는 기분이랄까. 뭐 그렇다.

 

 

 

[T2 Trainspotting]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