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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트레인스포팅, 대니 보일]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29. 23:43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하고

이완 맥그리거, 이완 브렘너 등이 연기한다.

 

Trainspotting. 트레인스포팅. 참으로 낯선 영어 단어다. 분명 한 단어는 아니고 뭔가 합쳐졌으니 뜯어보자. 트레인은 우리가 아는 대로 기차일 테고 스포팅은 자리를 잡는, 뭔가의 위치를 선점하는 느낌이 든다. 기차의 위치를 잡는다? 기차 위치 잡아주기? 기차 위치 파악하기? 여러 영문 사전을 들여다보니 이는 기차 플랫폼에 서서 기차의 숫자, 그러니까 빠르게 지나가는 열차가 가진 일련번호(?)를 기록하는 취미를 일컫는다고 한다. 또 다르게는 헤로인 중독자들이 자신의 팔에 주사기를 꽂아 투약할 때 남는 흉터 자국을 의미한다. 또 다르게는 그다지 할 일이 없어 별로 도움되지 않는 하나의 주제에 심도 있게 몰입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종합해 보면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일삼는 마약중독자들의 별 볼일 없는 인생'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중적인 단어의 뜻을 이용해 영화 자체를 꿰뚫고 있다. 그렇다. 이 영화는 심각한 헤로인 중독자들의 -그렇다고 헤로인만 하는게 아니라 아편, 코카인, 대마초 등의 여러 마약도 등장하지만- 인생이 어떻게 망가져가고 어떻게 끝을 맺으며 어떻게 해쳐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룬다. 

 

영화를 보다 보면 뭔가가 얼핏 얼핏 지나간다. 영국 -물론 배경은 스코틀랜드다-, 철없는 인간들, 마약, 중독, 법원의 판결, 보호소, 상실, 정신이상, 섹스, 클럽, 죽음, 탈출. 이 모든 키워드가 뭉칠 수 있는 작품은 당연하게도 [스킨스]다. 이 영화를 보며 [스킨스]의 주요 시즌을 모두 본 나로선 도저히 연계성을 떨칠 수 없었다. 물론 [트레인스포팅]은 1996년에 개봉했기 때문에 [스킨스]가 [트레인스포팅]을 레퍼런스로 삼았겠지만 말이다. 정말 비슷한 부분이 많다. 철 없이 마약에 찌드는 모습이나 술집을 개판으로 만드는 모습, 무분별한 섹스를 즐기는 모습이나 누군가를 잃는 모습 등. [스킨스 시즌1,2]의 크리스처럼 부동산 중개인이 되기도 하고, [스킨스 시즌3,4]의 에피처럼 마약 중독이 되어 일상생활이 불가하기도 하며, 동시즌의 쿡처럼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스킨스]는 사랑과 우정을, [트레인스포팅]은 추락과 배신을 다룬다는 것이고, [스킨스]는 미성년자에서 성인이 되는 철없는 단계라면 [트레인스포팅]은 이미 20대 초반으로서 법적인 책임을 다해야 하는 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스킨스]가 불닭볶음면이라면 [트레인스포팅]은 핵불닭볶음면쯤 된다는 것이다.

 

 

영화의 연출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대니 보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임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연출이나 가감없는 묘사, 훌륭한 OST의 사용은 이미 걸출한 감독들의 연출과 충분히 비견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헤로인을 맞은 뒤 겪는 끔찍한 환상의 묘사는 내가 다 무섭고 기괴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충격적이다. 비주얼적으로만 충격을 주는 연출이었다면 굳이 코멘트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화를 이끌어가는 화법이나 내레이션 같은 내러티브적 연출이나, 인물들의 시점을 대변하는 카메라와 배경의 구도 같은 편집적 연출도 지금껏 다른 영화에서는 보지 못한 raw 한, 그러니까 생 날것의 야생적인 느낌이 영화의 주제와 맞아떨어지며 [트레인스포팅]만의 독특한 감성을 만들어냈다. 약간 미쳐있지만 아직은 차분한, 무슨 일을 저질러도 그렇게 놀라지 않을 듯한(?) 느낌이랄까. 이런 분위기는 말로 형용이 어렵다. 아무래도 직접 보는 게 제일 빠를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는 마약중독자들의 파멸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누구는 마약으로 인해 감옥에 가고, 누구는 마약으로 인해 갓난아기를 죽게 만들며, 누구는 마약 딜러로 전락하고, 누구는 마약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이쯤 되면 궁금하다. 헤로인이라는 게 도대체 어떻길래, 아니 마약류가 도대체 어떻길래 섹스보다 좋다거나 이만한 것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할까? 다행히도(?) 헤로인의 ㅎ도 찾아볼 수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영상자료로만 접해야 하는 그들의 파멸은 사실 크게 와닿지 않는다. [브레이킹 배드]에서 메탐페타민에 의해 장아찌마냥 절여지는 중독자들의 모습이나 [설국열차]에서 크로놀에 중독된 남궁민수, [스킨스]에서 코카인에 중독된 에피를 봐도 아마 대한민국 사람들은 큰 공감을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끌리는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청춘이라는 이름의 헛발질' 코드가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영화의 제목은 트레인스포팅, 즉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에 몰두하는 행동'을 의미하고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헛발질이다. 누가 가만히 열차 플랫폼에 서서 열차 숫자를 세고 있겠는가? 엄청난 시간 낭비이자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소위 '뻘짓'이다. 그러나 그 뻘짓은 뭔가와 닮아 있다. 우리는 언제나 뻘짓을 해왔다. 철 없이 사랑도 해 봤고 뭔가에 중독되어 본 적도 있으며 부모님 속을 무지하게 썩이기도 했다. 당연히 하면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해 봤고, 내 기준이 맞다며 누군가에게 주입한 적도 있다. 맘에 안 들면 때려도 봤고 뺏어도 봤으며 심할 경우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언젠가 그 행동은 뚝 끊긴다. 재미가 없어진다. 내 기준을 들이대도 그리 탐탁지 않고, 아무리 때리고 뺏어도 통쾌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런 행동을 했었을까. 왜 그렇게 의미 없이 열차의 숫자를 세었을까. 그리고 이제는 왜 그것에 질린 듯 질색하며 멀리하는 것일까. 답은 아주아주 간단하다. "해 봤으니까"다. 해 봤으니까 이제는 하지 않는 것이다. 가만히 플랫폼에 서서 열차를 세 봤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차피 정해져 있는 통과되는 열차의 수는 내가 아무리 센들 늘거나 줄지 않는다. 변화도 없는 일을 매일같이 관찰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생존과 주변의 변화에 발맞추려는 나의 바람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동 후에 변화가 식별되지 않았으니 자연스럽게도 그 행동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오히려 삶의 질이 떨어지면 떨어졌지 늘어나지는 않았으니 뭔가 잘못됨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멈췄다. 그 오만하고 철없던 질주를 멈췄고 근거 없는 생각과 근본 없는 행동을 멈췄다. 이제는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않아야 할지 안 것이다. 해 봤으니까, 경험했으니까 안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그 과정의 난이도와는 맞지 않게 아주 멋진 이름- '청춘'이라는 개념으로 인생의 한 분기점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청춘의 헛발질'을 '마약중독'이라는 코드와 엮어 성장의 맥락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자신을 갉아먹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싫은- 친구들을 배신하고 승리자가 된 렌튼(이완 맥그리거)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아주 조금이나마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청춘이 뭐였길래 이랬는지, 청춘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뭐였는지, 내 청춘에 누가 있었고 이제는 누가 없는지, 내 청춘은 아직 오지 않았는지, 혹은 지금은 과연 청춘이 끝난 건지.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개의 세상이 있듯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개의 청춘이 있겠다. 각자의 청춘을 상기시켜주고 청춘에 대한 나만의 텍스트를 생성하게 해주는 이 영화를, 괴랄한 표현과 섬뜩하리만치 영상의 윤리성을 어긋 내는 이 영화를,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스코티쉬 억양을 마음껏 남발하는 이 영화를 나는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보면 스스로 묻게 된다. 내가 아직도 기차 플랫폼에 서 있는지 아니면 확실히 떠나 왔는지를 말이다.

 

 

 

 

 

[Trainspotting]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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