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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바쿠라우, 클레버 멘돈사 필로, 줄리아노 도르넬레스]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9. 1. 01:04

 

 

클레버 멘돈사 필로, 줄리아노 도르넬레스 감독이 연출하고

우도 키어, 토마스 아퀴노 등이 연기한다.

 

[바쿠라우]는 매거진 FILO에서 개최한 시사회 이벤트를 통해 개봉 전에 관람한 영화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의 슈퍼 G관에서 시청했는데 같이 갔던 친구는 "이 극장에서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를 봤으면 어땠을까"라고 했을 정도로 큰 화면과 훌륭한 화질, 선명한 색감과 음질까지 갖춘 훌륭한 극장이었다. 그러나 그 훌륭한 극장에서 본다 한들 내용물이 훌륭하지 않으면 치킨을 먹을 때 냄새만 맡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바쿠라우]는 우리가 쉽게 느낄 수 없는 감성을 전달하는 영화다. [바쿠라우]는 브라질의 한 조촐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 한 사건을 다루는 영화다. 그런데 나는 이 설명만으로도 벌써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다. '브라질'. 솔직히 브라질의 식민사나 현대사에 대해 아는 사람, 아니 애초에 궁금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미국이나 다른 유럽 나라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나 관심이 많지 저 멀리 어떠한 접점도 없는 브라질이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모든 콘텐츠를 대상으로 하면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으니 당장 '영화'로만 따져보자. 브라질 영화를 공부하는 게 아니고서야 내가 살면서 브라질 영화를 몇 편이나 보겠는가. 영화의 본 고장인 프랑스, 이탈리아 영화도 그리 진입하기 쉽지 않은데 브라질 영화라니.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심지어 현재 브라질이 겪고 있는 문제, 그러니까 지금 당장의 브라질이 마주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가상의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로 무심히 은유하고 있다. 인종차별적인 문제, 식민사에 대한 문제, 유럽에 대한 문제, 그리고 브라질 내부의 갈등에 대한 문제. 그러니까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브라질 현대사 다큐멘터리인 것이다. 브라질 영화에 브라질 내부사정과 브라질 배우들, 그리고 브라질 식민사까지. 살면서 가보기도 힘든 나라의 영화를 보고 100%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 것인가. 나에게 이 정도 장벽은 사실 높은 정도가 아니라 감히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이다. 감히 예상해보자면 나 같은 먼 나라 한국인은 절대 영화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영화의 만듦새에서 재미를 챙겨야 한다. 어떤 메시지가 숨어 있을지, 어떤 연출을 보여줄지, 어떤 충격을 안겨줄 것인지. 2시간을 꼼작 않고 집중해야 하는데 그 정도는 우리에게 줄 수 있지 않은가.

 

 

뻔히 영화인 콘텐츠보고 다큐멘터리라고 한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도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주민들의 모든 면, 남자 여자가 같이 아무렇지 않게 샤워하는 장면, 무분별한 섹스를 즐기는 장면, 매춘을 하는 장면, 사람을 죽이는 장면 등 모두를 정말 말 그대로 naked 하게, 적나라하게 담아낸다. 거기에 차가 흔들리면 나도 함께 무진장 흔들리는 -오래 보면 멀미가 나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되어 사실감은 극대화된다. 그냥 영화형 아마존, 아니 바쿠라우의 눈물이다. 물론 이는 오지 마을의 야생성을 표현하려다 보니, 그리고 그 야생성과 야만성이 영화의 주된 감성이니 이해는 할 수 있다. 앞선 요소 덕분에 몰입이 잘 되는 것은 이견이 없다. 문제는 촬영, 연출적인 부분에 심혈을 기울이다 보니 확실히 내용적인 장치를 해소해주는 경쾌함은 찾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복선이나 상징을 뚜렷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할까.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할까. 핍진성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라 스포할 순 없지만 나중에도 중요하게 작용되지 않는 상징과 복선이 이리저리 산개되는 모습은 영화가 마지막으로 향할수록 아쉬움이 더해질 뿐이었다. 

 

 

영화의 후반부는 -나의 사랑-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떠오르기도 한다. 총알이 난무하고 유혈이 낭자하다. 총과 피가 '호'인 사람은 그 결말이 카타르시스로 다가오지만, 총과 피가 '불호'인 사람은 그 결말이 거부감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불호'의 입장 따위는 신경쓰는것 같지 않아 보인다. 수위로만 따지면 타란티노의 두 배 정도 된다. 그렇게까지 잔혹한 장면을 통해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브라질이 겪고 있는 인종의 문제? 오지 마을이 가진 야만성의 폭로? 백인 우월주의의 전복? 피를 주워다 이리저리 흩뿌려 놓고 사람의 머리를 숭덩숭덩 잘랐으니 뭔가를 전달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만약 오락으로만 그렇게 했으면 B무비에 불과했을 것이니까 말이다.

 

물론 나도 감은 잡힌다. 미국에 관심이 많아 백인우월주의에 대해 -잘 모르겠으면 [아메리칸 히스토리 X]라는 영화를 추천한다- 알고 있고, 남미 식인역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덕에. 그러나 이 영화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고작 '감' 따위를 잡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감을 전달하려면 지금의 수위보다 반절, 그리고 지금의 러닝타임보다 반절을 줄였어도 가능했다. 잘은 몰라도 감독은 아마 이 모든 일을 '직시'하길 바랬던 것 같다. 무자비한 폭력, 좁혀지지 않는 인종의 간극, 해결되지 않는 빈부격차, 전통의 보존까지. 과거의, 아니 과거에서부터 지금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브라질의 문제를 모두가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기를 바라는 것이다. 감히 덧붙여 범지구적인 대상들에게 진실과 현실을 고발하고 어쩌면 작은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기생충]이 역대급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빈부격차와 계급을 소재로 삼고 영화적으로 훌륭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바쿠라우]는 분명 전 세계의 공감을 얻어낼 순 없다. 소재는 희소하고 편집은 투박하다. 그러나 어설픈 공감보다 현실적 직시를 바라는 영화라면 우리는 분명 새로운 시각으로 이 영화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BACURAU]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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