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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버즈 오브 프레이, 캐시 얀]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4. 00:15

 

 

캐시 얀 감독이 연출하고

마고 로비, 이완 맥그리거 등이 연기한다.

 

도대체 왜 DC 확장 유니버스 영화들은 다 이모양일까. 내일(2021.08.04 수) 개봉하는 제임스 건 감독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기 전 예습을 위해 데이비드 에이어의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이 [버즈 오브 프레이]를 시청했는데, 결과는 둘 다 처참하기 그지없다. 굳이 우열을 따지자면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낫다. 거기엔 적어도 멋진 캐릭터가 분명히 존재하니까 말이다.

 

[버즈 오브 프레이]에는 단연코 매력적인 캐릭터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마고 로비의 할리퀸까지 이전작에서 보여줬던 잔망스럽고 재치 있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미친 X이 아니다. 조커와의 결별 후 상처가 깊었는지 행동은 애매모호하고 그리 강하지도, 영악하지도 않으며 이제 더는 미쳐 보이지 않는 평범한 성격으로 바뀌었고 매력이 급감했다. 다른 캐릭터는 어떤가. GCPD의 형사인 르네 몬토야(로지 페레즈)는 등장하지 않았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없고, 음파를 쏘는 블랙 카나리(저니 스몰렛벨)는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면서 괜한 일침만 날리는 비호감 캐릭터고, 헌트리스(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는 온갖 기믹으로 무장한 어색한 연기와 웃기지도 않은 유머로 점철되어 있으며, 대망의 카산드라 케인(엘라 제이 바스코)은 어리다는 이유로 봐줄 수 없을 만큼 처참한 연기력과 무의미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의 색채는 분명 화려하고 눈에 띄나 그것으로 덮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문드러진 과일 같은 느낌이랄까.

 

매력없고 무의미한 캐릭터는 이게 다가 아니다. 히어로 장르 영화는 주인공(히어로)이 50%의 지분을, 그의 조수가 10%의 지분을, 그리고 나머지 40%는 메인 빌런이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메인 빌런 블랙 마스크(이완 맥그리거)의 캐릭터성은 처참하다 못해 불쌍할 정도이다. 원작에서 어땠는지는 잘 모른다. 허나 영화에서 메인 빌런이라는 중대한 역을 맡고도 했던 행동은 고작 사람 얼굴 가죽 벗기는 컨셉과 여성을 학대하는 묘사, 괜히 미쳐버린 척하는 정신병 연기밖에 없다. 아무리 영화가 단편적이어도 메인 빌런이 이렇게 단편적일 수가 없다. 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의 초반에 등장하는 크라켄 따위의 의미 없는 괴수나 갖고 있을 법한 설정이다. 아마 감독은 메인 빌런을 매력적이고 입체적이게 묘사한다기보다는 그저 자신보다 약한 여성에게 폭력을 일삼는 단편적인 악인으로 설정하여 젠더적인 방향으로 서사를 쉽게 풀어가려고 했을 것이다. 블랙 마스크의 오른팔 빅터 재즈(크리스 메시나)의 캐릭터성, 여자를 하나 죽일 때마다 몸에 흉터를 하나씩 남기는.. 그런 억지 설정을 추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원작 코믹스에서 빅터는 '사람' 한 명을 죽일 때마다 몸에 흉터를 남기지 '여자'만 골라 죽이는 캐릭터가 아니라고 한다./ 메인 빌런과 그의 주변 인물을 이런 식으로 설정해버리면 히어로물은 사실상 그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입체적이고 매력적이면서 합당한 이유를 가진 메인 빌런 무리를 선한 의지의 캐릭터들이 힘을 합쳐서 서로를 믿으며 겨우 무너뜨려야 그 재미가 배가 되는 법이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고 합당한 서사다. 그런데 영화 속 캐릭터들은 메인 빌런 따위는 별로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힘을 합쳐 무너뜨리려고 한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젠더적인 안경을 벗고 보더라도 이는 메인 빌런의 존재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게으른 처사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젠더적인 시선을 도저히 거둘 수가 없는 영화다. 우선 주연급 캐릭터, 할리퀸, 블랙 카나리, 헌트리스, 르네 몬토야, 카산드라 케인은 모두 여성이다. 이 영화에서 비중이 높은 남성 캐릭터는 딱 두 명인데 이는 앞서 설명한 '억지 설정으로 편파적이게 각색된' 블랙 마스크와 빅터이다. 이 둘을 제외한 모든 남성 캐릭터는 여성에게 핍박을 가하거나 그들의 업적을 뺏고 해를 끼치거나 팔아 넘기기까지 한다. 물론 모든 남성의 행동들이 이유 없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할리퀸의 악행에 당한 이들은 당연히 합당한 이유로 그녀에게 해를 가하려고 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할리퀸이 믿었던 음식점 사장님이 친했던 그녀를 팔아넘긴다거나, GCPD의 형사 르네 몬토야의 동료 형사가 그녀의 업적을 가로챘다거나, 할리퀸이 클럽에서 만난 남자들이 취한 그녀를 납치하려고 했다던가 하는 행동들엔 전혀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그냥 그랬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내내 할리퀸 일당에게 적의를 가진 여성 캐릭터는 단 한 명, 그것도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다. 그녀는 할리퀸이 데리고 있었던 카산드라 케인에게 현상금이 걸리자 그녀들을 뒤쫓는 용병들 중 한 명이고, 정말 말 그대로 5초 만에 사라진다. 그녀를 제외하면 적개심을 가진 모든 인물, 할리퀸 일당에게 당하는 인물, 그리고 그녀들을 배신하거나 탄압하는 인물은 전부 남성이다. 그것도 거의 대부분이 그들의 행동에 합당한 이유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연출해 버리면 남성의 악행에는 이유가 없고 여성들은 무력하게 당한다는 주장을 논리 없이 설파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관객은 그 노골적인 연출과 대사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영화 전반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여성 서사 영화의 맹점은 여성만이 할 수 있는, 혹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멋지고 아름다운 일을 표현하는 것인데, 자꾸 남성 캐릭터를 철저히 사장시켜 제물로 삼아 여성의 우월함을 내세우려고 한다. 여성 캐릭터 4명이 50명가량의 남자를 멋진 액션으로 때려눕힌들 그런 생물학적 우월함은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오히려 남성이 가진 상징성을 빼앗아 억지로 장착한 듯한 어색함과 괴리감만 전달될 뿐이다. 전혀 현명하지 않은 처사다. 과연 여성들이 이 영화를 본다 한들 맘 편히 즐길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객은 바보가 아니다. 단 한 번의 표현, 단 한 번의 묘사에도 관객들은 그보다 더 깊은 함의를 알아챈다. 예민한 문제이니만큼 분명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흥미롭지 않은 억지 서사와 유치한 연출, 노골적인 대사나 몇 배우의 처참한 연기는 영화 [버즈 오브 프레이]의 작품성을 저하시키는 요소들이다. 중간중간 꼬아놓은 서술 방식은 괜한 겉멋만 들었고, 인물들의 행동에 그다지 큰 이유를 부여하지 못하는 모습은 아마추어적이었으며, 같은 성별끼리의 결속력을 강하게 권고하는 유치한 대사들은 영화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치명적인 결점으로서 작용했다. GCPD에서의 할리퀸이 보여준 방망이 전투씬은 나름 유니크한 면이 있지만 항상 말하듯이 120분을 즐기기 위해 영화관에 오지 5분을 즐기려고 오지는 않는다. 한계가 명확한 영화다.

 

 

불편한 이야기를 내내 했지만 도저히 짚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전에 예습한다고 본 영화가 이렇게 큰 시사점을 가지고 올지 누가 알았겠는가. 여성 서사 작품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특히 히어로 영화 장르에서는 그 비중이 더 낮았던 만큼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16년의 [원더우먼]을 기점으로 2021년의 [블랙 위도우]까지 생각보다 많은 영화가 개봉했다. 그러나 아직 괄목할 만한 작품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는 전체적인 여성 히어로 영화가 완성도가 낮다기보다는 이제 막 발돋움했기 때문에 당연히 생기는 성장통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물론 전체 장르로 보면 좋은 여성 서사 작품도 많다. 해외의 [델마와 루이스]나 [쓰리 빌보드]가 그렇고 국내의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밀양]이 그렇다. 그럼에도 그 수는 여전히 현저하게 적다. 당연히 여성 서사 작품은 지금보다 더욱 많아져야 한다. 그게 공평한 처사다. 세상엔 훌륭한 감독과 배우가 많고 세상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으니 앞으로 개봉할 무수한 여성 서사 작품들을 기대하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러니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발전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제임스 건 감독이 맘 편히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버즈 오브 프레이]를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DC의 세상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이번이 DC에게는 정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Birds of P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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