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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롭 라이너]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5. 19:32

 

 

롭 라이너 감독이 연출하고

빌리 크리스털, 멕 라이언 등이 연기한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친구가 세 달 가량 보라고 끈질기게 추천한 고전 로코 영화이다. 영화는 순탄하다. 크게 거슬리지도 않고 무리하지도 않으며 소소하게 웃기고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겠지만 이 영화의 개봉 연도는 1989년이다. 사실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전형적인 스토리에 올라타 전형적인 결말로 향한다. 참으로 전형적인 영화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김길훈 저자가 집필한 [영화의 창 : 영화장르, 2013]의 7장 멜로드라마 파트에서는 이 영화를 '현대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이루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알고 보면 "전형적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조상님 같은 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니 많은 하위 장르와 결합되어 새로운 로코를 많이 접한 지금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되면 당연히 무난해 보일 수밖에 없다. 이 조상 격인 영화의 뒤를 이어 많은 로코 영화가 개봉되었고 그것은 곧 로코 장르의 전성기를 불러왔다고 한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면 분명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사적으로 강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남/여의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인 '남녀간에는 친구사이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명제로 진행된다. 까칠한 해리는 해맑은 샐리와 정 반대의 사람이다. 그들은 당연히 첫 만남부터 삐걱거렸고 쿨하게 각자의 목표를 위해 갈 길 갔다. 오랜 시간 후에 다시 만난 그들은 각자 사랑을 하고 있었고, 또다시 삐걱거리면서 쿨하게 헤어졌다. 또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난 그들은 둘 다 혼자였고,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기도 해서 절친한 친구가 된다. 그들은 자주 함께 밥을 먹고,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하고, 함께 연말 파티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친구다. 아니, 사실 겉만 친구일 수도 있다. 해리는 샐리의 남자 친구에 대해 흉을 보고 샐리는 해리의 여자 친구에 대해 흉을 본다. 은연중에 드러내는 귀여운 관심과 질투는 이미 그들이 친구 이상의 감정을 서로에게 갖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섣불리 다가가지 않는다. 그들은 전에 만나던 연인에게 큰 상처를 받았고 '친구'라는 명목 하에 서로를 바라보기로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리 없지 않은가. 그들은 결국 밤을 같이 보내고 혼란에 빠져든다. 서로가 선이라고 생각했던 행위를 하자마자 그들은 친구도 연인도 아닌 애매한 사이가 되어버리고 이내 얼굴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샐리와 멀어진 뒤 그녀에 대한 사랑을 확신한 해리는 미친 듯이 그녀를 찾아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샐리는 이를 받아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사실 스토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형적'이다. 그럼에도 배우의 연기와 크리스마스 시즌의 뉴욕 분위기, 우정과 사랑이라는 모호한 소재가 합쳐져 편하고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화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친구와, 혹은 어떤 집단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꼭 한번쯤 -높은 확률로 술자리에서-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이 열린다. 누구는 밤과 술이 있으면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 하고, 누구는 자기는 친구랑 빨가벗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아마 각자 살아온 삶, 가진 친구, 느낀 바에 따라 모두 다를 것이다. 난제가 괜히 난제가 아니다. 아마 인류의 멸종 전까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뭐 어찌 됐던 이 영화는 "남녀 사이에 우정은 없다"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해리와 샐리는 결국 친구라는 명목 하에 데이트를 하며 외로움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고 각자의 마음을 숨긴 채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은 방어벽을 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이 그 선을 넘어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해피 엔딩이지만 영화의 시원한 결말과는 달리 내 머릿속엔 사랑과 우정 사이의 애매함을 곱씹게 하는 궁금증이 남는다. 예컨대 해리와 샐리가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면, 선을 넘지 않았다면 그들은 끝까지 친구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인지, 혹은 둘 중에 한 명이라도 매력이 없었다면 그 둘은 성사될 수 있었을 것인지 등. 아무리 생각해도 뚜렷한 답은 없다. 

 

남의 관계에 답을 내리기는 정말 쉽다. 문제는 나다. 이 영화는 내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이성 친구의 존재에 대해, 이성 친구가 가진 생각에 대해, 이성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하게 하는 무한의 저주를 내리는 영화다. 잘 생각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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