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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매그놀리아,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6. 02:18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aka PTA)이 연출하고

톰 크루즈, 줄리안 무어, 필립 시모어 호프먼 등이 연기한다.

 

나의 첫 PTA 영화다. 필름 끈이 나보다 열 배는 긴 영화 대선배 친구가 PTA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한다며 격렬히 추천해준 영화다. 사실 처음엔 손이 가지 않았다. 99년에 개봉한 영화에다 러닝 타임은 무려 3시간이 넘고 개인적으로 톰 크루즈에게 큰 관심이 없었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친구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또, 잘 두어야 한다. 친구를 잘 두니 [매그놀리아] 같은 영화도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영화는 나의 단편적인 생각을 모두 잠재울 만큼 황홀하고 파란만장하다. 또한 심층적 사유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단연코 모든 부분에서 5점을 줄 수 있는 영화다. 러닝 타임 3시간? 오래된 영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 정도의 영화적 경험을 시켜주는 영화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추천해 준 누군가에게, 영화를 튼 나에게, 영화를 만들어준 감독에게 감사하다는 마음밖에 생기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관객을 장악한다. 도시괴담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그리고 장장 2시간 30분 동안 9명의 인물이 겪는 개개인의 일을 군상극의 형태로 보여준다. 시간축은 꼬아놓지 않았지만 장면의 전환이 잦아 스토리를 따라가려면 상당한 집중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 그 긴 시간의 장면들의 연출과 OST와 연기가 완벽하다는 점 등이 전혀 지루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매혹된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계속 바꿔가며 보여줘도 그들의 이야기는 정상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게 만들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에 앞서 언급한 완벽한 연출과 OST, 연기는 이에 몰입할 수 있는 훌륭한 근거가 된다. 정말 OST는 속된 말로 미쳤다.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의 OST는 나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무자비하게 밀고 들어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재미없을 수가 없게 만들어 놓은 영화다. PTA 감독이 29살에 만든 영화라고 하는데,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싶다. 또, 기존의 액션 영화(내가 별로 관심 없는)에서 얼굴을 많이 비췄던 탓인지 톰 크루즈라는 배우는 나에게 그다지 임팩트가 없었던 것이 사실인데, 이 [매그놀리아]에서 보여준 연기를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는 마치 그 안에서 사는 사람 같았다. 정말로 신선하고 생명력이 넘쳤으며 폭발하는 연기가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줬다. 

 

 

영화는 어려워 보이지만 쉬운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영화가 후반으로 치닫으며 관객들이 따라온 9명의 처절한 이야기는 나름의 결론으로 바뀌려고 하는 타이밍이 있다. 그 때 알 수 없는 개구리 비가 내리고 오프닝 시퀀스에서 보여줬던 이유 모를 도시괴담이 다시 등장하여 그 결론을 마무리짓게 도와준다. 비록 영화의 결론부 전까지는 어렵고 힘든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며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결론만큼은 확실하게, 또 친절하게 전달해 주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그러니 이런 일도 일어 난다." 이것이 영화가 말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다. 영화에 나오는 9명의 인물은 모두 석연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 누구는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도망쳤고, 누구는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누구는 돈을 보고 늙은 부자에게 접근했고, 누구는 어릴 적 유명세를 놓지 못하고, 누구는 남들에게 깊은 자격지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들은 타인의 선택에 의해 안 좋은 일을 겪었고, 겪고 있으며, 앞으로 겪을 예정이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뒤틀려 있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처절하고 처참한 이야기를 때로는 덤덤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보여줄 뿐이다. 영화는 갈등이 해결되기 전까지 캐릭터들에게 감정 이입할 순간을 순순히 내주지 않는다. 이입할만 하면 장면이 바뀌고 이입할만하면 나중으로 미뤄진다. 철저히 영화 속 캐릭터들에게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고뇌하고 좌절하며 심한 경우 목숨을 끊으려고도 한다. 어째서 감독은 그들을 이토록 엄하게 대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이 세상도 별반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우리를 도와주는 상상을 한다.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를 바라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게 도와주기를 바라며, 누군가가 처절한 죽음을 맞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어쩌다가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저 '일어나는 일'이지 누군가가 '해결해준 일'이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감독은 현실 세계의 가장 잔인한 면을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도 동일하게 부여한 것이다. 영화 속엔 드라마틱한, 즉 영화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운명처럼 누군가가 찾아오지도 않고, 정신병이 갑자기 낫지도 않으며, 예정된 죽음을 피할 수도 없다. 그게 현실이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게 현실이라면 분명 그들도 할 수 있는 게 있다. 현실은 각박하지만 희망이 아예 없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무차별적인 우주의 사이클 속에서 영화 속 그들이, 크게 보면 현실 속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많지 않지만 명백히 존재한다. 그중 긍정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후회'와 '용서'다.

 

 

일은 일어난다. 사람은 태어나고 나라는 탄생하며 문화는 발현된다. 또, 사람은 죽고 나라는 멸망하며 문화는 사장된다. 물론 이런 것들은 인간으로부터 초래된 일이겠지만 딱히 인간이 컨트롤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아주 극소수의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종할 수 있다고 쳐도 남은 99.9%의 인간은 그저 일어나는 일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내 사연이 불쌍하다고 봐주거나 측은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에겐 분명 후회할 수 있는 양심이 있고 용서할 수 있는 관용이 있다. 이 두개의 마음은 최악의 상황을 막아주는 방파제이자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연료다. [매그놀리아] 속 캐릭터들도 몇은 후회하고 몇은 용서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몇은 후회하지 않고 몇은 용서하지 않는다. 또 당연하게도 [매그놀리아] 바깥의 우리들도 그들과 동일하다. 결국 우리는 무차별적으로 발생되는 사건과 일을 변경하거나 무시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두 개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인류의 존재를 유일하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요소일 것이고 인간성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최후의 보루일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살아가야 한다. 좋든 싫든. 쉽든 어렵든. 힘들든 힘들지 않든.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그 대명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뒤에야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무엇을 후회할 것인지, 혹은 무엇을 용서할 것인지. 

 

영화는 내가 평가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정상을 보여줬다. 서사, 연출, 대사, 연기. 더할 나위 없었다. 너무도 세련됐고 너무도 치밀했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폐부를 찌르는 고통이 느껴지는 영화다. 위대한 감독과 위대한 영화, 눈부신 연출과 깊은 메시지, 완벽한 서사와 빼어난 연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추천해준 친구와 나누는 대화. 무엇이 더 필요한가.

 

 

 

[Magnolia]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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