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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프리가이, 숀 레비]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14. 01:42

 

 

숀 레비 감독이 연출하고

라이언 레이놀즈, 조디 코머, 조 키리 등이 연기한다.

 

[프리가이]는 게임 속 한낱 NPC에 불과한 가이(라이언 레이놀즈)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그저 배경이 아닌 하나의 주체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다루는 SF 코미디 영화다. 영화의 제목이 참 간단하면서도 모든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Free Guy. Free는 누구나 알다시피 해방된, 구속에서 자유로운 그런 느낌이지만 Guy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여기서 Guy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프리 시티 속 은행원 NPC 가이의 '이름'이면서 누군가를 부를 때 사용하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여느 NPC의 이름이 그렇듯 누군가가 대충 지어버린 그의 이름은 우리나라로 번역하면 '걔'가 될 것이다. "걔 있잖아 걔."의 걔. 사람의 이름이 '걔'인 것이다. 그러니 이는 한낱 NPC에다 이름마저 제대로 지어지지 않은 가이가 매일 같은 일상과 배경으로서의 장치에 불과한 삶을 전복시켜 진정한 자유를 찾아나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아주 함축적이고도 매끄러운 작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밝은 분위기를 유지한다. 물론 주연인 라이언 레이놀즈가 절대 어두워질 수 없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영화의 배경이 GTA를 힘껏 오마주한 오픈월드 게임 속이어서 내내 장난스럽고 유쾌한 색채를 띄고 있다. 거기에 NPC에게 주체성을 부여하는 발칙한 상상력과 게임 속을 표현해내는 정교한 VFX가 어우러져 획기적이면서도 허술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가이가 처음으로 게이머 전용 선글라스를 쓴 뒤 '버그'로 간주되어 프로그래머들에게 쫓기는 장면과 아직 미완성된 빌런 NPC 듀드(얼굴은 라이언 레이놀즈지만 몸은 보디빌더인 끔찍한 혼종)와 싸우는 장면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에 못지않은 화려한 비주얼을 뽐내 절로 오~ 소리가 나오게 한다. 올여름 극장가에 걸린 영화들 중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같은 강적이 있음에도 가장 눈이 호강하는 영화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도 당연히 허점은 있다. 우선 타이카 와이티티가 맡은 앤트완이라는 캐릭터가 아주 볼품없다. 굳이 왜 자꾸 연기를 하는지 모르겠는 와이티티 감독이 연기하는 앤트완은 인디 게임 개발자였던 밀리(조디 코머)와 키스(조 키리)의 게임을 독점하여 불공정한 수익을 올리는 메인 빌런이다. 돈, 돈, 돈을 외치며 다른 무엇보다 게임의 상업적 성공과 자신의 이미지만을 생각하는 흔하디 흔한 악당이다. 당연히 매력이 없는 서사를 가진 캐릭터인 것을 커버하기 위해 다소 오버스러운 톤으로 연기하는데,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아서 자꾸 몰입을 방해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서사에 사족이 많다는 것이다. 가이의 단일된 이야기가 아닌 가이와 프리월드, 가이와 버디, 가이와 밀리, 밀리와 키스, 밀리와 키스와 앤트완, 앤트완과 사원들 등 많은 갈래가 이어진 다중적인 이야기여서 자꾸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모두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이는 좋게 말하면 서사에 구멍을 내지 않은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다소 일차원적이고 설명적인 것이다. 게다가 영화의 분위기가 가벼워서 그렇게 길게 끌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무게가 있는 스토리도 아니었다. 미국식 개그와 훌륭한 VFX도 벌어진 시간의 허점을 메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러닝타임을 115분이 아닌 95분 정도였으면 딱 좋았을 법했다. 

 

 

영화는 순탄하게 진행되고 순탄하게 끝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꽤 무서운 이야기다. 내가 하는 게임의 NPC가 스스로의 존재를 깨닫고 주체성을 가지면서 게임에 영향을 준다는 게 그리 상상으로만 치부하고 웃어넘길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주 지배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해 왔다. 컴퓨터 전원을 킬 수 있을 때부터 게임을 했던 나도 NPC의 마음 따위는 단 한 번도 고려해본 적이 없다. 예전에 한 번 [스타크래프트 2]를 하면서 무참히 터져나가는 맹독충(데굴데굴 굴러 자신의 몸을 터트리며 상대에게 독을 뿌리는 가미카제 스타일의 저그 유닛)을 보며 쟤들도 분명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을 텐데.. 정도의 생각은 해봤지만 언제나 같은 말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는 NPC의 지루함에 대해서는 신경 써본 적이 없다. 만약 [메이플스토리]의 잡화상인들이 더 이상 못해먹겠다며 노조 파업을 일으키면 플레이어들은 속절없이 그들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는 상점에서 싼 값에 물약을 살 수 없고 가진 자들이 사재기를 할 것이며 결국 물약 하나에 막대한 돈을 들여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게임이 아니다. 스트레스도 풀고 사람도 만나고 자유를 누리는 디지털 세상이 아니라 생존과 실리를 따지는 무정한 현실 세상이 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불편하다.

 

그렇다면 이를 현실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영화 속 프리월드는 이 세상으로, 가이는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없는 한 명의 소시민으로, 앤트완은 자신의 이득만 챙기려고 하는 기득권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바꿔보면 과거의 모든 혁명과 현대의 모든 사회운동이 눈에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소시민들이 뭉쳐 부패한 정권을 전복시키는 게 혁명이고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인 힘없는 사람들이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는 게 사회운동이다. 실제로 많은 혁명과 운동은 비슷한 경로와 문법을 따르며 일어났고 거의 같은 결말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일련의 절차를 정확히 따라가고 있다. 가이는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게 밀리를 만나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며 행동한다. 한 명의 계몽적 시민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비리와 부패를 만천하에 까발리고 다음 국면을 맞이하는 것이다. 결국 악한 마음을 가진 앤트완은 몰락하고 대의를 위해 움직인 NPC와 몇몇의 플레이어들은 새로운 가치를 존중하며 뉴-월드에서의 삶을 보상받는다. 영화는 게임이라는 수단으로 현실 세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게임에서 무심코 하는 행동을 누군가는 현실에서 계획적으로 벌이고 있고, 게임 속 NPC 받는 무시와 차별이 쌓여 스테이지가 바뀌듯 현실 속 힘없는 자들의 움직임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중반엔 예상치 못한 반가운 얼굴도 나온다. [배틀 그라운드], [포탈], [심즈] 많은 게임들을 오마주 하기도 해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눈도 꽤 즐겁고 어느 정도 유의미한 메시지도 가진 괜찮은 작품이다. 이번 여름 극장가가 모두 실망스러운데, 그나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오늘 게임을 할 예정이라면 항상 무심코 지나갔던 그 NPC에게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어보는 것은 어떤가. 혹시 나중에 같은 편으로 껴줄지 누가 아는가?

 

 

 

[FREEGUY]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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