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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우아한 세계, 한재림]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12. 21:29

 

 

한재림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 박지영, 오달수 등이 연기한다.

 

[우아한 세계]는 [관상], [더킹] 같은 걸출한 영화들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다른 느와르 형식의 영화와 달리 조폭과 조폭 사이, 조직과 사랑 사이, 보스와 부하 사이가 아닌 아빠와 가족 사이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모두가 불경기인 시점에 피똥 싸면서 번 돈으로 아들은 유학까지 보내줬고 퇴근길엔 딸이 좋아하는 고기만두를 사 오기도 하며 딸을 잘 봐달라며 담임선생님에게 촌지를 찔러 넣는 모습은 그가 아무리 무식한 깡패일지언정 가정에 소홀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치 바퀴벌레가 아무리 귀여운 짓을 해도 귀여워할 수 없듯이 인구의 직업이 깡패인 이상 정상적인 삶을 꿈꾸는 건 그에겐 먼 이상향에 불과했을 것이다. 영화는 계속 나빠지기만 하는 인구의 직업적인 상황과 점점 불편해져 가는 가족 내에서의 가정적인 상황을 적절하게 혼합시켜 그가 겪는 불행한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한다.

 

물론 이따금씩 어색한 연기와 서툰 연출, 오글거리는 대사가 나오곤 하는데, 아마 이는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가 애초에 애매하기 때문에 일어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느와르면 느와르여야 하고, 드라마면 드라마여야 하고, 가족이면 가족이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세 개의 장르가 위태롭게 얽혀 있어서 어느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느와르 장르'라면 당연하게도 서로의 이익을 위해 차갑고 냉철하게 상대를 속이는 연출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인구의 형님(보스)인 노 회장(최일화)와 라이벌인 노 상무(윤제문), 고향 친구인 현수(오달수)까지 상대를 속인다기보단 그냥 무작정 뺏고 갑자기 죽이려고 하고 뜬금없이 도와주기도 한다. 분명 한국 영화를 이끌어가는 걸출한 배우들인데도 다분히 평면적이고 덜 다듬어진 캐릭터를 표현하고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또, 영화의 가장 큰 주제 중 하나인 가족애를 전달하기 위한 캐릭터들의 연기나 서사가 다소 억지스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구의 아내인 미령(박지영)은 사실 없어도 될 캐릭터였다고 본다. 사실상 인구에게 짜증만 내고 실망만 하는 일차원적 역할이기 때문에 차라리 미령의 비중을 인구의 딸인 희순(김소은)에게 몰아서 '아빠와 딸'의 관계에 집중했으면 더 확실한 가족애가 느껴지지 않았을까.

 

 

이런 연출적인 아쉬움이 분명히 존재하는 영화임에도 이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히 주연 배우 송강호의 힘일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거칠게 말하면 마지막 10분만 봐도 모든걸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가족을 위해 조직에서 일을 하지만 결국 못 버틴 가족은 떠나버린 그런 이야기. 텍스트로 써도 한 문장일 정도로 단출한데 마지막 10분 동안 보여준 송강호 배우의 연기는 마치 이것을 위해 앞의 엉성한 1시간 50분이 존재했다는듯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준다. 캐나다에서 밝게 웃는 가족의 모습을 보며 말라버린 라면을 먹는 인구의 처량한 모습은 대사 한 줄도 나오지 않지만 오히려 앞에서 보여준 시간이 너무도 설명적이게 느껴질 정도였고, 깨져버린 그릇과 이리저리 튄 라면 국물을 닦는 그의 모습과 티비 속에서 행복하게 웃는 가족의 모습이 대비되는 그 순간은 분명 뻔한데도 강한 울림이 있었다. 훌륭한 연출과 걸출한 연기였다. 마지막 10분만 떼어 단편영화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시간동안 엉성한 극을 멱살 잡고 끌어온 배우가 보여준 마지막 한 방은 이토록 강렬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다. 

 

비록 애매하고 서툰 영화임은 분명하나 반대로 그로 인해 송강호라는 배우가 가진 힘이 더 느껴진 영화다. 괜히 그가 한국영화의 20년을 이끌었고,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은 게 아니었다는 것을 정확히 알려준다. 영화 [기생충]에서 그의 연기는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길이 남을 연기였다. 이런 배우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울 정도다. 나는 그저 그의 작품 생활이 오래 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아한 세계]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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