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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싱크홀, 김지훈]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13. 23:52

 

 

김지훈 감독이 연출하고

차승원, 이광수, 김성균, 김혜준 등이 연기한다.

 

영화 [싱크홀]은 '갑자기' 무너져버린 싱크홀 속에서 겪는 사람들의 위기와 가족애를 다룬 재난영화다. 왜 갑자기를 강조했냐면, 싱크홀이란 것은 본디 그리 큰 이유가 동반되지 않는 재난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인물들도 정말 갑자기, 그렇게 큰 이유 없이 500m나 되는 땅 밑으로 추락한다. 이는 아마 실제로 겪으면 감당도 할 수 없는 공포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내가 사는 집이 별 징조도 없이 지하로 곤두박질치는 그 모습을. 거기에 이만한 돌과 엄청난 양의 흙, 심지어 옆 빌라까지 내 머리 위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끔찍한 일은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재난적 공포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았다. 언제나 문제는 본분에 충실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법이거늘, [싱크홀] 역시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와 억지 블랙코미디에 한 눈을 팔았다. 말 그대로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되어 버렸다.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휘청이는 극장가에 영화 제목처럼 큰 구멍을 내버린 이 영화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문제는 앞서 말했듯 쓸모없는 장치의 남발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서울의 집값 폭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회사 동료들이 서울에 자가를 구했다는 과장을 보며 박수를 쏟는 장면이나, 강 너머에 있는 높은 아파트를 보며 '존재를 알지만 오를 수 없는 에베레스트' 같다며 조소하는 장면,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는 장면 등을 보여주면서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비판? 좋다. 블랙코미디? 좋다. 근데 이렇게 유치하게 표현해야 했을까? 표현엔 은유와 비유가 있는 법인데 이렇게 편의적인 대사 몇 줄로 때우는 건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고 싶지만 표현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영화의 말미에도 집값 폭등을 피해 영화 [노매드랜드]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캠핑카에서 거주하는 김대리(이광수)와 은주(김혜준)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는 서울에 사는 청년들의 미래를 예측하며 현재의 세태를 비판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초반부의 메시지와 억지로 대치시켜 그럴싸한 블랙코미디를 선보이려는 뻔한 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재난이면 제발 재난에 집중하고 탈출이면 제발 탈출에 집중해라. 우리에겐 [엑시트]라는 훌륭한 선례가 있지 않은가. 영화를 이렇게 만들면 그저 감독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어떻게 12년 전에 만든 [해운대] 보다 못할 수가 있는가.

 

 

영화의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도대체 디렉팅을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못 볼 꼴이다. 이광수 배우나 차승원 배우는 애초에 모델 출신이고 요즘엔 예능에서 더 큰 활약을 하느라 폼이 죽었다고 치자, 김성균 배우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범죄와의 전쟁]에서 보여줬던 그 카리스마와 [응답하라 1988]에서 보여줬던 그 능글맞음, [이웃사람]에서 보여줬던 그 섬뜩함은 전부 어디에 버려두고 왔는가? 또, [킹덤]에서 비록 약간은 어수룩해도 뚝심 있는 연기를 선보였던 김혜준 배우는 왜 이리 붕 떠 있는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 한 5분 정도 나오는 고창석 배우나 김재화 배우, 이학주 배우의 연기가 -이전에 보여줬던 모습과 같이-뻔했음에도 너무 훌륭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광수, 차승원 배우는 사실 큰 걱정이 안 된다. 다시 예능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김성균 배우는 아니지 않은가. 연극에서 시작해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모두 사로잡은 훌륭한 배우이지 않은가. 디렉팅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배우가 아까운 영화다. 김성균 배우가 다음 작품에서는 부디 진가를 보여주길 바란다.

 

모든 게 흠이지만 영화의 몰입을 가장 해치는 것은 무슨 생각으로 넣었는지 모르겠는 유치한 대사들이다. 500m 밑으로 떨어진 모두가 당황해하는 그때, 만수(차승원)의 어린 아들 승태(남다름)는 갑자기 어디서 자신감이 솟았는지 생필품과 식량을 챙기라며 나이에 맞지 않는 침착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놀란 어른들은 그런 것들을 다 어디서 배웠냐고 묻는데, 여기서 승태의 대사가 압권이다. "유튜브에서 그릴스형 한테 배웠어요!". 이게 다가 아니다. 모든 인물이 내뱉는 대사가 차라리 무성영화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유치했고, 어떤 감정이나 위기감, 절박함 따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고로 대사란, 캐릭터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고 배우가 가진 연기력을 뽐낼 수 있는 무기이면서 각본가의 실력을 입중 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되지도 않는 대사를 넣어두면 도대체 무엇을 입증하고 뽐내고 보여주겠는가? 관객을 허투루 본 게 틀림이 없다. 이제 우리나라 관객은 예전처럼 무한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팝콘무비'라며 넘어가 주지도 않는다. 시대는 바뀌었고 사람들은 변했다. 그러니 제발 당신들도 바뀌길 바란다.

 

서사, 연출, 대사, 연기 전부 다 0점인 영화다.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 같은 영화다. 우리나라가 [기생충] 보유국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어주는 수면제 같은 영화다. 그러나 반대로 이 영화엔 아주 훌륭한 장점도 있다. 다음에 볼 영화가 -그것이 원래 가진 재미보다- 더 재밌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평작을 수작으로, 수작을 명작으로 만들어 줄 희생양 같은 영화다. 내 한 몸 불사 질러 남들을 구하는 누구보다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영화다. 진심으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싱크홀]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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