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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모가디슈, 류승완]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7. 29. 13:19

 

 

류승완 감독이 연출하고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김소진 등이 연기한다.

 

영화 [모가디슈]는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남한과 북한의 대사관 외교관들이 목숨을 걸고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를 탈출했던 실제 사건을 토대로 제작되었다. 실화 기반 영화의 맹점은 고증이다. 얼마나 그 시대를 잘 구현했고 발생한 사건을 잘 다루는지, 또한 각색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용인 가능한 정도인지 등이 꽤 중요하게 작용한다. [모가디슈]는 그런 부분에서만큼은 편협하게 굴지 않았다. 비록 소말리아가 아닌 모로코 현지에서 촬영했다고 하지만 내전으로 인해 피폐해진 당시의 길거리라던지 총탄이 빗발치고 바주카포가 펑펑 터지는 효과음은 그 당시의 모습을 잘 구현해냈다. 특히 부서진 건물의 외관이나 널브러진 시체, 흑인 소년병의 모습 같은 현실적인 연출들은 [모가디슈]가 고증의 비주얼적인 면을 상당히 신경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고증만으로 보는 게 아니다. 관객은 눈도 즐겁고 메시지도 받으며 시간을 사라지게 해 줄 복합 예술을 원해서 극장에 오는 것이지 역사적 사실을 가르쳐줄 다큐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역사 영화에서 고증이 화두에 오르면 나름 타격이 크긴 하다. 하지만 '역사'이기 전에 '영화'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영화가 갖출 것을 모두 갖춘 뒤에 고증을 챙기는 게 맞다.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글래디에이터]는 완벽한 고증보다는 영화적인 재미에 더 초점을 맞췄고 이는 대박이 났으며 전 세계적으로 4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물론 당시에도 고증적 오류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있었다. 그러나 영화가 재미없다는 사람은 일절 나오지 않았다. 잘 만든 '영화'란 그런 것이다. 아쉽게도 [모가디슈]는 훌륭한 비주얼, 고증적 요소들을 갖추기 위해 다소 많은 영화적 요소를 희생했다고 판단된다. 

 

 

우선 영화의 코드가 아주 어색하다. 기본적인 배경은 소말리아 내전에서 탈출하는 외교관들의 고군분투다. 그렇다면 관객은 기본적으로 탈출, 첩보, 스릴, 등의 장르적 쾌감을 느낄수 있을 것이고 이에 더해 부가적으로 인류애, 의기투합, 희생 등의 감정적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모든 차원의 영화적 쾌감을 잠시 접어두고 오직 '휴머니즘'에 대해서만 다루려고 한다. 함께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끈끈한 동료애나 서로를 향한 이해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연출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동포'라는 아주 쉽고 간단한 정체성으로 그런 세심하게 다뤄야 할 감정을 뭉뚱그려버린다. 서로를 죽일 듯 미워했어도 느닷없이 차분히 앉아 밥을 먹는 장면이나,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먹기 쉽게 깻잎을 잡아준다거나, 남한으로 전향시키려는 의도를 파악했어도 잠깐 투닥거리기만 하고 그 얘기는 더 하지도 않는다거나, 탈출하는 과정에서 이제는 친하다는 듯이 농담을 던지며 잠시뿐인 우애를 과시한다거나, 성공적으로 탈출한 뒤 이제는 각자 갈 길 가야 할 때 눈물을 보이며 헤어지기 싫어한다거나.. 이 모든 것은 영화가 깔아놓은 바탕, 즉 '탈출'이라는 주제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다소 흥을 깨는 연출이다. 더 심한 문제는 이를 비유적인, 혹은 은유적인 표현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속이 훤히 보이는 대사 몇 줄로 때운다는 것이다. 각본을 누가 썼는지 정말 반성해야 한다. 자주 등장하는 중의적이고 모호한, 그러나 다소 노골적인 대사들은 아무리 배우가 멋진 연기를 통해 내뱉어도 그저 '동포'적인 인류애를 강조하기 위해 끼워둔 찐득한 억지 감성 코드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액션과 미술을 보여줘도 시도 때도 없이 이런 연출이 끼어드니 맥락이 끊기는 일은 당연지사다. 이렇게 되면 관객 입장에서 액션 영화를 보러 온 것인지, 정치 영화를 보러 온 것인지, 감동적인 영화를 보러 온 것인지, 역사 영화를 보러 온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때문에 영화를 온전히 즐길 수 없는 혼란한 상태에 놓인다. 여러모로 실망적인 연출과 각본이다.

 

감독의 전작은 [군함도]였다. 고증적인 문제와 다분히 신파(사실 신파라는 단어 보다는 '억지 감정'이 더 맞는 표현이다)적인 요소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는 고증 전문가와 함께 작업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감동 코드는 여전히 남겨두었는지 의문이다. 왜 썩은 이 하나만 뽑지 옆에 멀쩡한 이도 같이 뽑았는지 모르겠다. 눈물을 강요하는 것만이 신파가 아니다. 억지로 감정을 끌어내려고 하는 모든 것이 신파, 즉 '억지 감정'이다. 인물의 감정적인 면은 전혀 다루지 않았으면서 갑자기 서로에 대한 경계를 풀고 깻잎을 잡아주는 것은 다분히 억지성이 드러나는 신파적 연출이었으며 이는 곧 정치적인 의식이 연루되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꼭 정치적 중립을 표현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방식으로는 정치를 '이용'했다 라는 소리밖에 듣지 못할 것이다. 류승완 감독의 훌륭한 전작들, [부당거래]나 [베를린], [베테랑]에 비해 영화적 재미가 반틈 잘려나갔다.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분히 노골적이고,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방식은 꽤 촌스러웠다. 그런 상태에서 후반 카체이싱 장면을 기가 막히게 연출한들 재미를 느끼겠는가. 120분 말고 5분만 즐기라는 것인가.

 

국내 영화판은 호황했던 2003년을 이후로 많이 달라졌다. 거기에 2019년 [기생충]의 역사적 성공은 대중과 평단이 어떤 영화를 원하는지 정확히 짚어준 유일무이한 업적이었다. 관객들의 눈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제 영화를 이렇게 만들면 그냥 시간낭비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참 많이 아쉽다.

 

 

 

[모가디슈]

서사 ★
연출 ★★
대사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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