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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마스터,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25. 17:51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하고

호아킨 피닉스, 필립 시모어 호프만, 에이미 아담스 등이 연기한다.

 

PTA 세 번째 영화. 이름만으로 절대 짐작할 수 없었던 그 영화 [마스터]를 드디어 시청했다. 초기작인 [매그놀리아]와 [부기 나이트]에서 아주 큰 충격과 재미를 동시에 받았어서 당연하게도 많은 기대를 품고 봤다. 결과는 참 애매하다. 사실 영화가 좀 어렵다. 시퀀스와 시퀀스를 이어주는 설명이 불친절하고 인물의 행동과 대사가 추상적이다. 심지어 시퀀스마다 배우들의 연기가 무서울 정도로 몰입감이 높아서 자연스럽게 다음 장면과의 연계성을 기대하게 되고, 영화는 이를 친절히 풀어주지 않으니 인물과 인물 사이, 사건과 사건 사이가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맥락은 잡히는데 뭔가 하나가 딱 잡히지 않는다. 뭔가 있는데 그걸 보여주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마치 꿈을 꿀 때, 아무리 달려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과 같은 기분이 영화 내내 들었다. 심지어 영화는 한 사람의 전생을 되짚으며 마음을 치료하는 사이비 종교에 대해 다룬다.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심리 치료 같은 장면이나 몽환적인 장면, 알 수 없게 모호한 장면이 주를 이룬다. 이는 애매한 영화 소재와 PTA의 괴랄한 표현력, 이어지지 않는 연결성이 뭉쳐 높은 진입 장벽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나같이 영화의 'ㅇ'정도만 아는 사람이 봤을 땐 당연히 어렵고 난해한 것이다.

 

두 주연 배우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시모어 호프만. 억지로 '두 호씨'라고 부르겠다. 두 호씨는 아주 불꽃튀는 연기 대결, 정말 연기 대결이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을 듯한 미친 연기력을 보여준다. 특히 호아킨 피닉스는 온갖 기괴한 자세와 엽기적인 행동을 하는 정신이상자 프레디를 연기하는데, 이는 살짝 무서울 정도다. 너무도 야생적이고 너무도 이상하다. 대부분의 연기는 애드리브로 진행했다고 하는데.. 정말 희귀한 연기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너무 아쉽게도 지금은 세상을 떠난 필립 시모어 호프만의 언뜻 불안하고 비이성적인 연기로 뒤덮은 코즈 교의 교주 랭커스터 역은 지금까지 정말 방대했던 그의 배역들 중 최고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프레디가 코즈 교의 치료법인 '프로세싱', 그러니까 과거 체험을 처음으로 경험할 때, 두 배우가 짧은 대사들을 주고받는 씬은 놀라움의 극치다. 둘 중 대사를 읊는 사람을 오버 더 숄더 샷으로 바꿔가며 보여주고 강한 질문과 더 강한 대답이 이어지는 상황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서스펜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관객의 몰입도는 최상으로 올라가고 아직 미지수인 둘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여러모로 가장 중요한 장면이 아닐까. 

 

 

이 외에도 PTA의 장기라고 불릴만한 장면은 다수다. 전쟁이 끝난 뒤 백화점에서 사진기사로 일하는 프레디가 손님이랑 싸우는 장면이랄지, 프레디가 유치장에 갇혀 온갖 물건을 때려 부수는 장면이랄지, 혹은 프레디가 다시 교화되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훈련을 하며 미쳐가는 장면이랄지 등 배우가 걱정되는 한편 영화적 재미가 극대화되기도 하는 시퀀스가 정말 많다. 또 다른 그의 장기는 역시 캐릭터에 대한 설명인데, 그는 항상 별 대사없이 주변 소품이나 행동으로 인물의 성격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에만 보이나 아주 강력하고 확실하다. 한 순간에 인물의 합리적인 입체성을 관객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그 충격은 분명 보는 이의 뇌리에 박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화의 흐름에 멱살 잡혀 끌려가는 형국이 되기도 한다. 내가 PTA의 영화를 좋아하는 점도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영화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연출은 또 어떤가. 장면을 설명하는 부가적인 요소인 OST는 언제나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연속되는 카메라 워킹은 충분히 몰입되게 한다. 

 

그러나 역시 영화의 메시지는 어렵다. 정말 길고 꼬인 영화의 터널 끝에 표현되는 랭커스터의 장면, 프레디가 곁에 남아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의 모습에서 내가 느낀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는 결국 누구나 영원한 MASTER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이는 당연하게도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것이다. 프레디는 전쟁 후 피폐해진 마음을 랭커스터에게 치료 받기를 원했고, 랭커스터는 프레디의 존재로서 자신이 설 곳을 구획 짓기를 바랐다. 분명 언젠가 서로가 서로를 죽도록 미워했었지만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제목인 MASTER는 새삼스레 다가온다. 사실 전형적인 한국인 관점으로 보면 MASTER라는 단어는 영어권 나라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한국인들은 어떤 기술이나 직업을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 낼 때 MASTER 했다고 하지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을 일컫는 스승이나 귀인, 선배에게 MASTER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MASTER 보다는 멘토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하고 더 잘 와닿기도 한다. 그런데 이 영화 [마스터]에서 MASTER는 정말 말 그대로 나의 지배자, 나를 거둬준 사람, 나를 키워주는 사람, 나를 변하게 하고 종속하는 사람으로 사용된다. 그러니 이와 같은 표현과는 그리 상관없이 동일한 단어를 쓰는 한국사람, 특히 나 같은 사람은 언어적 괴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영화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나의 작은 반항이기도 하다. 나는 아마 조금 더 친절한 영화를 원하나 보다. [매그놀리아]처럼 모든 장면을 이어주고, [부기 나이트]처럼 강한 자극이 있어야 하나보다.

 

 

슬프거나 기죽을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모든 영화를 이해할 순 없으니까. 누군가 재밌다고 해서 나도 재밌을 필요는 없으니까. 이동진 평론가나 다른 평론가들의 글을 읽어봐야겠다. 어떤 내용을 알고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분명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아마 이 영화는 2회차 리뷰가 처음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The Master]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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