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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택시운전사, 장훈]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9. 5. 14:46

 

 

장훈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 토마스 크레쉬만, 유해진, 류준열 등이 연기한다.

 

[화려한 휴가]를 봤던 때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2007년 개봉 당시 극장에 가서 봤으니 내 나이 11살쯤 됐으려나. 광주 민주화운동이 뭔지도 몰랐고 그 사건이 우리나라 현대사에 얼마나 큰 중요한 사건인지도 몰랐다. 그냥 엄마가 우니까 울었고 화면 속 김상경이 우니까 울었다. 이제는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끝났는지 겪은 적은 없어도 그 비참함과 비통함만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시간은 무심히 흘러 군 복무 당시에 개봉한 [택시운전사]는 그래서 꼭 보고 싶은 영화였다. 이런 영화는 접근하기 쉽지 않다. 역사적 사실, 심지어 각색한 부분이 많지도 않은 실화기반 영화, 게다가 그 당시의 참상을 가까이서 바라본 이런 영화는 접근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1987] 리뷰에서도 말했듯 "오늘 똥을 쌌음"이라고 적혀 있는 고대 이집트 문서가 그 내용의 수준을 넘어 이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유물이기 때문에 신성시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런 영화, 그러니까 그 당시를 겪어본 적 없는 관객에게 실제적 경험을 시켜줄 수 있는 영화는 내가 감히 판단해도 되는 걸까. 참 어렵다.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를 잘 못만들었기 때문에. [1987]이 내가 선정한 최고의 한국영화 3편 중 한 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리에 내가 있는 듯한 실제적 경험을 시켜줌과 동시에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을 잘 엮어내면서 풀어내는 어려운 연출을 잘 소화했고 감히 '신파'라는 단어를 붙일 수도 없는 자연스러운 감동을 훌륭히 전달했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는 이런 부분이 미흡했다. 불필요한 장면이 많았고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장면이 허다했으며 끝내야 할 부분에서 끝내지 못했다. 특히 모두가 언급한 카체이싱 장면.. 은 '검문소' 씬, 이 장면 직전의 모든 군인은 자생력이 없고 그저 명령체계에 의해 무고한 시민을 폭행 및 총살하는 극악무도한 집단으로만 묘사되었으나 검문소에 있던 단 한 명의 깨어있는 군인으로 인해 일촉즉발의 상황을 벗어나는 이 훌륭한 서스펜스를 굳이 길게 늘여 그렇게 큰 의미 없는 액션을 추가한 것이 사족이 되었다. 물론 지금껏 동고동락한 택시기사들이 막판에 큰 역할을 해주는 취지는 좋으나 그로 인해 영화의 결말부 자체가 억지적이어 보이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진정한 사족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어렵다.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면 나는 혼란스럽다. 소재도 좋고 고증도 좋고 배우의 연기도 좋고 기획의도도 좋다. 그러나 소재가 지닌 역풍을 이겨내진 못했다. 민감한 소재이니 만큼 영화의 만듬새가 월등히 좋아야만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괜한 트집이 잡힌다. 카체이싱이 어쨌네 사투리가 저쨌네. 역사의 비극을 다루는 영화가 이제는 당연하리만치 평범한 소재를 다룬 영화보다 더 높은 기준이 적용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소재부터 사람을 끌어당기기 때문에. 영화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전부터 교육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시각적으로 훌륭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1000만 관객 영화가 27편이다. 그중에 8편이 외국 영화다. 그리고 19편의 한국 영화 중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는 무려 10편에 달한다. 심지어 [명량]은 전체 1위이고 [국제시장은] 4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미 우리는 '민족적 알레고리'에 혹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영화는 사실상 치트키를 쓰는 것과 다름없다. 이왕 치트키 쓴 거 어중간한 것보단 아예 멋지게 만드는 게 더 멋지지 않겠는가.

 

 

영화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그 당시의 사건을 잘 몰라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다. 심지어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잘 모르는 두 명의 시선, 외신 기자와 서울 택시기사가 감춰진 진실을 마주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몰입할 수 있다. 사실 우리도 잘 모르니까 말이다. 택시기사 만섭(송강호)은 자기 잇속 챙기기 바쁜 사람이다. 셋방에 살고 홀로 딸을 키우며 돈벌이가 좋지도 않으며 유일한 돈벌이 수단인 택시도 매번 덜덜거리고 말썽부리기 일수다. 그리고 밀린 월세값 10만 원을 부르는 외신기자를 낚아채 광주로 향하게 된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남을 위해 살아본 적은 없다. 1순위는 딸이었고 2순위는 본인이었다. 그래서 본인이 실제로 겪은 광주의 참사를 자꾸 외면하려고 한다. 학생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둥, 시키는 데로 하라는 둥, 쓸데없이 나서지 말라는 둥 자꾸 누구나 흔히 할 수 있는 행동, 그래 봤자 뭐가 달라지냐고 핀잔을 주곤 한다. 끝내 생존에 대한 갈망과 하나뿐인 딸을 위해 모든 걸 외면한 채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그는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이타적 감정, 남을 위해 행동하는 정의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매번 덜덜거리던 그의 택시가 가장 강한 속력과 파워를 냈던 순간도 바로 이때, 처음으로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움직일 때였다. 이건 마치 택시의 기본적인 소양, 타인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역할과도 같지 않은가. 만섭의 도움으로 광주의 참상을 담은 영상은 지옥에서 벗어나 모두가 알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누구도 전복시킬 수 없을 것 같이 완강했던 정권은 그렇게 무너져갔으며 지금 현대의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준 세상에서 살고 있다.

 

 

영화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참혹한 그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비춘다. 군인의 총격에 쓰러져나가는 시민, 무자비하게 폭행당하는 시민, 폐사한 가축마냥 논두렁에 버려지는 한 구의 시신, 보안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행하는 무고한 살해 등 현대의 눈으로 보면 전혀 믿기지 않는 그런 장면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1987]을 보고 어머니 아버지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던 때가 기억이 난다. 정말 그랬느냐고 묻는 내 질문에 부모님은 한껏 분개하는 나에 비해 오히려 무덤덤하게 맞다고 대답하셨었다. 그냥 그땐 그게 맞았던 것이다. 그땐 그게 실제로 문제가 있을지언정 누군가 문제 삼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를 삼지 않았으면 그렇게 살아갔을 삶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삶이,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저질렀던 그런 삶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 이토록 비극적일 수가 없다. 죽으면 사라질 그 우매한 권력을 위해 도대체 몇 명이 다치고 몇 명이 죽었는가. 도대체 왜 가해자는 잘 살고 피해자는 영영 볼 수도 없는가.

 

그러니 이런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영화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이제는 직접 찾아보거나 공부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의 인생을 바꿔준 사건들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 그리고 그때 매일같이 피와 눈물을 흘렸던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존재 가치는 분명히 있다. 그러니 누군가 돈을 벌기 위해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 한들 그 당시를 겪어보지도 않은 내가 작품을 욕할 자격이나 있는가. 아직 잘 모르겠다. 

 

 

 

[택시운전사]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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