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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미드소마, 아리 애스터]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9. 4. 01:19

 

 

아리 애스터 감독이 연출하고

플로렌스 퓨, 잭 레이너 등이 연기한다.

 

이런 영화는 참 쉽지 않다. 나는 원래 집 안에 틀어박혀 누구의 방해도 없는 상태로 -아주 소량의 빛이 끼치는 방해도 싫어서 작은 불이 들어오는 마우스 위에 검은색 마스크를 덮어 둘 만큼- 큰 헤드셋을 끼고 영화를 본다. 한 마디로 극한의 집중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만 영화를 본다는 것인데, 이런 영화는 예외다. 이건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 [미드소마]나 동감독의 [유전] 같은 오컬트 호러, [링]이나 [주온] 같은 일본 호러, [곤지암]이나 [알포인트] 같은 한국 정통 호러 등 대부분의 공포 영화는 애초에 도전도 하지 않을뿐더러 보게 된다고 해도 혼자 보기에는 쉽지 않다. 일전에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을 뭣도 모르고 봤다가 아주 혼쭐난 기억이 있어서 그 뒤로는 잘 도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드소마]도 친구네 집에서 13인치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맥북 화면으로 가까이 붙어서 봤다. 아직 영화를 시청하지 않았음에도 그만큼 우리가 가진 영화에 대한 이미지는 '기괴'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 두려움을 함께 타파하기 위해 뭉친 것이었다. 

 

 

사실 영화는 내가 기대한 것 만큼 '호러틱'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예의 [곤지암]이나 [주온] 같은 영화들은 정말 스산하게 무섭다. 음악도 기괴하고 귀신의 비주얼도 언제나 예상을 벗어난다. 긴장감이 극에 달하고 굉음과 함께 튀어나오는 귀신은 이상하게 예상이 가면서도 놀라기 마련이다. [미드소마]는 그런 공포가 아니다. [미드소마]의 공포는 '밝은 색채'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표정'에서 나온다. 기존의 공포 영화는 어둡다. 예의 영화들 중 배경이 어둡지 않은 것은 없다. 보통 밤이거나 지하 거나 어두운 숲 속이다. 그도 그럴 것이-공포영화의 꽃인- 귀신의 등장 쇼트를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임팩트를 주려면 강한 하이라이트로 보여줘야 하는데 애초에 배경이 밝으면 그 효과가 줄어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드소마]에서 어두운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호르가 마을은 전화도 잘 터지지 않을 정도로 낙후된 지역인 데다 심지어 작중은 백야 기간이기 때문에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다. 2시간 30분 가량 되는 시간 동안 어두운 씬은 20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밝음'만 있다면 사실 무서울 건 없다. 그러나 이 '밝음' 속에서 머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면 색다른 공포로 다가온다. 삶의 사이클이 다해 절벽에서 떨어지는 노인을 봐도, 자신의 음모를 다른 이의 음료에 넣어서 먹게 해도, 근친혼으로 태어난 신묘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딱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제사 의식 일러스트를 보여줄 때도 호르가 마을 사람들은 전혀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즐긴다. 낯선 이들의 경계심을 즐기고 혼란을 즐기며 문화의 차이에 대한 거부감을 즐긴다. 그러니 척 보아도 이상한 일을 벌건 대낮에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런 무드, 이런 분위기, 이런 색채,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느낌(기괴함)과 시각적 표현(화창함)의 비연계성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공포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영화에 쓰이는 소품이나 미술이 너무도 훌륭하다. 호르가 마을의 -마치 IKEA를 연상시키는- 목조 건축, 대니(플로렌스 퓨)가 쓰게 되는 화환과 꽃으로 장식된 옷, 앞서 언급한 제사 의식 일러스트, 호르가 마을 사람들이 입고 있는 의복과 평상복의 디자인 등 얼핏 보아도 '북유럽 오지 마을'이라는 콘셉트에 충실한 디자인과 소품이 정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미술적 정교함, 마치 실제로 이런 마을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요소와 촬영적 기법, 롱테이크를 이용한 미장센 기법과 카메라 패닝, 수직 180도 촬영 등의 요소들은 영화 곳곳에 많은 상징을 부여하면서 오컬트 영화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리얼리티'를 수준 높게 만들어준다. 정말 사실적이다. 이 영화가 무서운 점은 특유의 기괴한 비주얼과 제정신으로 볼 수 없을 잔인한 묘사 때문도 있지만 심적으로 가장 큰 거부감을 주는 요소는 바로 이 사실성이다. 어딘가에 진짜 있을 것 같은 느낌. 누군가 또 72세를 맞아 절벽에서 떨어질 것 같은 느낌. 내 주변의 -물론 북유럽 출신은 없다만- 사람이 자신의 마을로 데려가기 위해 위장 취업, 혹은 위장 우정을 행세하고 있을 듯한 느낌. 

 

 

사실적인 기괴함에서 나오는 공포. 오케이. 좋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 '호러틱' 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존의 영화들이 가진 표현과 다르다는 점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지루하다. 그러니까 기괴하긴 한데 호흡이 너무 길다. 어떤 남자가 방에 들어와서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보는 아주 단순한 쇼트에도 슬로우 모션을 걸어 놨다. 또 춤을 추거나 어딘가로 이동하거나 밥을 먹거나 뭔가를 마실 때도 온갖 슬로우 모션이 들어가 있다. 영화 시작 후 30분까지는 초절정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절벽에서 사람이 떨어지고 그럼에도 죽지 않은 사람 머리통을 이따만한 해머로 부숴 버리니까 말이다. 백야라는 계절의 특이점과 호르가 마을 사람들의 호전적인 행동, 이를 뒷받침해주는 화창한 날씨까지. 거기에 떨쳐낼 수 없는 기괴함이 합쳐져 오컬트 앙상블을 만들어 내니 빠지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뒤로부터 영화의 후반부까지는 그냥저냥 호르가 마을에서 일어난 미스터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로 전락한다. 전개는 뻔해 보이고 온갖 상징만 넘쳐흐른다. 답은 정해져 있는 듯 보이는데 굳이 숨기면서 우리를 희롱하는 기분이랄까. 이와 같은 중반부의 늘어짐은 당연히 영화의 집중을 흐리고 주된 감정인 '공포' 마저 '짜증'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2시간 27분.. 잘 모르겠다. 1시간 40분이면 딱 좋았을 법하다.

 

 

그래도 영화는 시원(?)하게 끝난다. 안그래도 무너진 대니의 마음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무시와 무관심, 끝내 저지른 외도로 무참히 짓밟은 크리스티안은 호르가 마을에서 90년에 한 번 바쳐지는 9명의 -9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행동 또한 북유럽 스럽다- 제물 중 한 사람이 된다. 그것도 5월의 여왕이 된 queen 대니의 pick으로. 신성한 장소에서 불에 타 죽는 크리스티안을 보는 대니의 표정은 러닝타임 내내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미소를 보여주며 아주 활짝 웃고 있다. 마치 복수에 성공한 여인처럼 말이다. 사실 대니는 펠레에게 진즉 귀띔을 받은 게 아닐까. 펠레는 자꾸 대니에게 관심을 보였고 대니가 같이 스웨덴에 가겠다고 했을 때도 유일하게 반대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척한 것이다. 펠레는 부모와 동생, 모든 가족을 잃은 대니에게 자신도 부모를 잃은 경험이 있다며 그 아픔을 이해한다고 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 [더 랍스터]에 나오듯 공감은 아주 훌륭한 무기다. 직접적으로 펠레에게 마음을 열지는 않았으나 대니도 분명 자신의 생일 따윈 까먹고 조악한 케이크나 준비한 크리스티안보다는 펠레에게 마음이 갔을 것이다. 그리고 펠레의 계획은 모두 성공적으로 돌아갔다. 자신이 데려온 -그저 열심히 석사 논문을 준비하기만 했을 뿐인 불쌍한 대학원생- 제물들을 바쳤고 마을 내에서 더 높은 지위를 얻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이비 종교 집단이 무고한 시민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살해를 저지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영화의 엔딩 시퀀스 속 대니는 불타는 남자 친구를 보며 무섭도록 활짝 웃고 있다. 분명 호르가 마을 사람들과 가족이 된 것처럼 보이던 대니가 어떻게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는-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똑같이 느끼니까- 그 장면에서 혼자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을 수 있었을까. 간단하다. 그녀도 척한 것이다. 마을의 일원이 된 척. 진정한 5월의 여왕이 된 척. 호르가 마을의 교리에 압도당한 척. 그리고 펠레를 믿는 척. 물론 그녀가 호르가 마을에서 5월의 여왕이 되었으니 앞으로의 사정은 알 수 없다. 진정한 일원이 될 수도 있고 도망치다 잡혀 죽을 수도 있으며 평생 척을 하며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당장 눈앞에서 외도를 저지른 남자 친구를, 자기를 내팽개치고 클럽에 가서 놀려고 하는, 자기를 두고 스웨덴에 놀러 가려고 했던 이기적인 놈을 처단하기 바빴다. 앞으로의 미래 따윈 어떻게 돼도 좋았을 정도로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대니는 자신에게 아픔을 안겨준 한 인간을 벌하기 위해 눈 감고 봐도 미쳐 보이는 집단 속에 포함되어 버렸다. 이는 분명 자신의 미래까지 내다 버린 바보 같은 복수였을지는 몰라도 당장의 심리적 보상과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른 절벽 끝의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기괴한 분위기를 가진 호러 오컬트 영화이면서 최악을 제거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한다는 인간의 오묘한 심리를 다룬 영화인 것이다. 

 

여러 의미로 공포 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다음엔.. 이 정도 이야기를 또 할 거면 러닝타임을 좀 줄이는 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러니 영화를 만든 감독도, 열연한 플로렌스 퓨도 아닌 2시간 27분짜리 시각적 고통을 함께해 준 친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다음 기기괴괴 상영회는 동감독의 [유전]이다.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어야겠다.

 

/ 다른 친구는 이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같은 거 아니야?"라고 했다. 이토록 색감과 분위기가 가진 힘은 무시무시, 어마어마하다.

 

 

 

[Midsommar]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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