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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결혼 이야기, 노아 바움백]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9. 7. 11:31

 

 

노아 바움백 감독이 연출하고

애덤 드라이버,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다.

 

[결혼 이야기]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개봉한 블랙 위도우, 카일로 렌의 본격 이혼소송 드라마를 다루는 영화이다. 행복한 결혼, 그리고 불행한 이혼, 심지어 이혼 소송과 양육권 다툼까지. 결혼을 다루는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게 아닐까. 이 영화에서 찰리 역을 맡은 애덤 드라이버와 니콜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은 정말 죽도록 싸운다. 집에서 싸우고 밖에서 싸우고 법정에서 싸운다. 아들인 헨리의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어디서 살 것인지에 대해, 누가 더 돈을 많이 벌고 누가 더 돈을 적게 버는지에 대해, 누구의 삶이 더 윤택한 지에 비교하기 위해, 그리고 누가 누구를 더 사랑했는지에 밝히기 위해 싸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감정을 소모하고 서로를 증오하며 싸우는 걸 전제로 하지만 원래 3대 구경중 하나 불 구경, 물 구경, 싸움 구경 중에서도 싸움 구경이 제일이라 하지 않는가. 이들의 싸움은 비록 답답하고 슬플지언정 분명 흥미롭다. 그들의 싸움에 나를 대입하기 때문일까? 누가 이기는지 궁금해서일까?

 

하나 확실한 것은 영화의 각본이 너무도 훌륭해서 이입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눈만 마주치면 불같이 싸우는 애들을 직접 두 눈으로 보던 그 생생함과는 당연하게 다르다. 그 야생성의 구경은 무엇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싸움이 아닌 싸우는 영화 [결혼 이야기]에는 어떻게 싸워야 더 제대로 잘, 상대에게 스크래치를 벅벅 남길 수 있는지 고민한 사람들이 짠 알찬 구성과 훌륭한 연기가 있다. 그러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트리트 파이트의 야생성과 달리, 미리 구성되고 계획된 가상의 싸움이 주는 즐거움은 분명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그러나 어색하지 않은 치밀한 생생함에서 기인할 것이다. 특히나 이 싸움엔 타격이나 총격 없는 순수한 말다툼이기 때문에 그 효과가 배가 되었다. 총을 쏘고 대포를 쏘고 막 불꽃이 터지면 이미 비주얼적으로 -그러니까 폭발광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처럼- 눈이 즐겁겠지만 그 이상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순수히 대사와 연기만으로 전달하는 싸움은, 그리고 그 싸움의 과정과 감정은 더 깊고 잔인하게 다가온다. 비슷한 예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 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 등이 있다. 

 

 

연기가 참 훌륭하다. 애덤 드라이버의 제대로 된 연기는 처음 봤는데 약간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생각나게 하는 톤과 이광수를 생각나게 하는 생김새, 콜린 패럴을 생각나게 하는 연기를 모두 합친 하이브리드형 배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비뚤어진 입과 정말 거대한 코, 예수님 머리와 수염이 곁들어지니 잘생긴 배우가 넘쳐나는 할리우드 시장에서 이토록 개성 있는 얼굴은 더욱 빛을 발하는 듯하다. 또 영원한 블랙 위도우,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도 -물론 아직도 블랙 위도우가 많이 생각나긴 하지만- 괄목할 만했다. 이토록 격정적인 감정을 내뱉을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상하게 할리우드 배우들은 다들 연기를 잘 한다. 문화권이 달라 제대로 캐치를 못 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한국 영화 시장에 이따금 등장하는 역대급 발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의 수에 비해 현저히 적게 느껴진다. 사대주의의 영향인가.. 또, 니콜 담당 이혼소송 전문 변호사인 노라를 연기한 로라 던의 연기는 어떤가. 훌륭하다 못해 소름이 돋는다. 두 주연에 비해 분량이 현저히 적으면서도 영화의 전체를 컨트롤하는 듯한 느낌, 이혼 소송에서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은 그 느낌, 자신의 커리어에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그 느낌을 정말 잘 표현한다. 그러니까 모든 캐릭터의 설정이 입체적이다. 그냥은 없다. 그냥인 캐릭터는 3분도 나오지 않는다. 3분 이상 나오는 캐릭터, 두 주인공과 하나뿐인 아들, 두 변호인, 니콜의 가족들은 캐릭터의 생명력이 뛰어나 영화에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의 내용은 아주 알차고 러닝타임도 2시간 20분을 넘어가지만 '이혼' 한 단어로 일축할 수 있을 정도로 일관적이다. 한 때 2초 만에 사랑에 빠졌던 그들의 영원할 것 같은 만남은 참고 살았던 누군가의 불만으로 인해 너무도 쉽게 깨져버렸다. 장점이었던 것들이 단점으로 바뀌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커리어에 대한 불안과 하락한 자존감의 문제가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한다. 참으면 병된다는 말을 입증하듯 지금껏 쌓아온 불만을 아무리 얘기해도 전혀 풀리지 않는 갈등은 그들을 결국 파경으로 이끌고, 처음엔 변호사 없이 우리끼리 원만하게 해결하자고 했던 그들은 끝내 이혼 소송 전문 변호사를 대동하여 전혀 원만하지 않은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한다. 변호사가 참전하면서 일은 점점 커지고 돈은 돈대로 들고 상처는 아물긴커녕 벌어지는 과정에서 이제는 우리끼리 '대화로' 해결하자는 그들. 당연하게도 그들은 대화하는 법을 잊은 지 오래다. 일 년간 섹스리스로 살았다는 이유로 외도까지 했던 남편을 아내는 믿을 수 없었고 갑작스레 이혼소송을 걸고 모든 대화를 차단하는 아내를 남편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파국이다 파국. 끝내 남편은 -거의- 패소했고 양육권을 잃었다. 일터인 뉴욕과 아들이 있는 L.A를 -거리상으로 3,957km- 지속적으로 옮겨 다녀야 하며 어느 정도의 비용과 위자료를 감당해야 한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거나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거나 서로의 감정을 포용하고 쓰다듬어주는 식의 결말은 없다. 오히려 아내는 이미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고 둘 다 -한때는 함께 쌓아 올렸던- 각자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글로만 쓸줄 알지 실제로 보지 못했던 서로의 장점, 니콜의 능력과 찰리의 다정함을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고 쳐도 그들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물론 영화지만, 현실을 최대한 비추고 있다. 기적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시 잘 되기엔 이미 엄청난 비용과 감정을 소모하면서 너무도 먼 길을 왔다. 그들이 행복할 지 행복하지 않을지는 잘 모른다. 예전처럼 친구로 다시 돌아갈지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남겨진 것은 그들의 결혼은 깨졌고 서로에게 잊히지 않을 상처를 줬다는 사실뿐이다. 이게 정말 현실이라면 인생은 참 예측 불가하다. 우리는 당연히 누군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살지만 사람은 계속 변한다. 나는 여전히 나여도 남이 받아들이는 나는 변했을지 모른다. 또 반대로 내가 항상 알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작스레 변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참 쉽지 않다. 그렇다고 남에 대한 기대를 접어라? 그건 무책임한 발언이면서 애초에 불가능하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기대한다. 말이 통할 것이라는 기대, 맘이 통할 것이라는 기대, 나와 잘 맞을 것이라는 기대, 상대도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기대. 그러니까 정말 어렵다. 기대를 하지 않을 순 없는데 변화를 감당할 재간도 없다. 그러니 아들러의 명언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이토록 와닿지 않을 수 없다. 아마 평생의 숙제겠지.

 

 

그들은 결혼을 해서 헤어진 걸까? 결혼을 하지 않고 계속 연애를 했다면 헤어지지 않았을까? 이혼 소송중에 다시 잘 될 가능성은 없었을까? 잘 모르겠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일까. 결혼을 한 사람은 이 영화를 보고 나와 다르게 느꼈을까. 혹시 이혼을 경험한 사람은 어땠을까. 심지어 소송까지 한 사람이라면.. 그런데 패소까지 했다면..?

 

 

 

[Marriage Story]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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