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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초록물고기, 이창동]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18. 13:25

 

 

이창동 감독이 연출하고

한석규, 심혜진, 문성근, 송강호 등이 연기한다.

 

초록물고기.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제목이다. 이창동 감독은 데뷔작부터 모호한 작명을 즐겨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 [박하사탕], [밀양] 등. 제목만 봤을 때 도무지 무슨 내용일지 예측이 불가한. 드라마 장르에 아주 적합한 그런 작명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 [초록물고기]는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말만 듣고 틀기엔 다소 옛 분위기가 나서 접근하기 쉬운 영화는 아니다. 우선 저 괴랄한 포스터를 봐라. 세기말을 향해 달려가는 그 모습을 구현한 듯 다중으로 중첩된 포스트모던 타이포그래피는 기존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가 부딪히며 일어나는 개념의 해체성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또,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처럼 썬글라스를 쓴 인물들의 모습은 분명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을 나타내는 것이겠지만 그 이상의 힌트는 없어 어떤 영화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 영화의 매력은 여기서 온다. 분명 사람 사는 이야기겠지만 뭔가 예측할 수가 없는. 뭔가 영화속 숨겨진 함의가 내 목을 조를것 같은 그런.

 

물론 제목과 시놉시스로는 예상하기 쉽지 않은 영화임에도 '충격의 누아르'라는 워딩 덕에 우리는 이 영화가 현대 누아르에 모체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록물고기]에는 정말 많은 누아르적 요소가 흔재되어 있다. 깡다구 빼면 아무것도 없는 젊은 청년, 그리고 그걸 알아보는 의식 있는(척하는) 보스, 보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주인공의 라이벌, 보스의 여자지만 주인공을 유혹하는 팜므파탈, 주인공의 어려운 상황(아픈 형, 다방 레지인 동생, 늙은 어머니, 가난한 집, 아버지의 부재) 등의 설정과 팜므파탈이 어두운 무대에서 노래하는 장면, 바닥부터 올라온 보스의 이야기, 믿었던 동료의 배신 등의 연출같이 '누아르' 하면 떠오르는 정형적인 이미지가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정형적이라는 것이 나쁘게 말하면 판에 박힌 뻔한 소재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시작된, 그 정형성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하나의 유행을 만들고 유일무이했으며 지금껏 보지 못했던 혁신적인 콘텐츠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초록물고기]는 한국 누아르의 정형성을 만든 영화다. 한국 누아르의 시초가 되는 영화다. 이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유하 감독의 [강남 1970],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같은 굵직한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물론 감독의 초기작이라 덜 다듬어진 것은 사실이다. 중간중간 개연성이 부족하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은 연출이 껴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 장르의 모체가 되어 새로운 영화 세상을 개척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후 새로운 SF영화 세상이 만들어진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막동이를 연기한 한석규 배우는 사실 내 세대에서 그리 유명한 배우가 아니다. 그는 분명 1990년대 한국 영화판을 휩쓸었던 장본인이지만 당시 나는 갓난아기였고 어느정도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는 그의 침체기였다. 이후에 그가 출연한 작품도 [이층의 악당]이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프리즌] 같이 딱히 작품성도 높지 않고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기도 힘든 영화여서 내 마음속 영화배우 순위의 상위권에는 절대 들지 못했다. 아마 내 세대의 누구도 그렇게 말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초록물고기]에서 한석규 배우는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힘을 뿜고 있다. 젊음에서 오는 치기, 열정이 담긴 표정, 철없음이 드러나는 행동 등 격변하는 사회 속의 젊은 소시민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만 보고 걷는 청년의 상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보스의 라이벌을 손수 제거했음에도 보스에게 배신당한 후 차 유리창에 쓰러진 그의 짓눌린 얼굴은 아주 괴이한 페이소스를 뿜어낸다. 믿었던 보스와 사랑했던 여인의 배신이 부른 증오심과 지금껏 지켜온 인간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회한의 감정이 한 번에 드러난 완벽한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간혹 한석규 배우는 거품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만 한 시대를 풍미한다는 것은 그저 운으로만 이뤄낼 수 있는 업적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겠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를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막동이를 배신한 보스는 우연히 막동이의 가족이 운영하는 토종 삼계탕집에 가게 되는데 그들은 서로 마주친 적이 없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막동의 가족이 보스에게 내올 요리를 손질하기 직전, 탈출한 닭을 잡으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게 된다. 막동의 가족은 막동을 직접 칼로 쑤신 보스가 눈앞에 있음에도 한 마리 닭이 가져온 익살스러운 상황에 깔깔 웃고 있다. 삶은 그런 것이다. 정작 내 앞에 가족의 원수가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고 함께 웃는, 밥을 내어주고 돈을 받는,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하는, 이토록 잔인한 아이러니가 삶인 것이다. 이게 리얼리즘의 무서움이다. 삶을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거나 포장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영화의 최종 시퀀스에서는 보스와 보스의 애인이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떠남과 동시에 멀리 있는 신도시와 막동의 가족이 운영하는 삼계탕집을 함께 비춘다. 그리고 그 차이는 건물의 높이로 보나 외관으로 보나 너무도 확연해서 어떤 소외감이 들 정도이다. 높고 차가운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서는 신도시 속에서 격렬히 헤엄치던 순진한 한 마리의 초록물고기(이상적인 목표)의 비극적 말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본격적인 서구 문명이 유입되던 1990년대 말, 급변하는 사회 속 일어나는 아이러니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리얼리즘적 표현이 더해져 막동의 가족이 겪은 비극-결국 가족이 모두 뭉쳤으니 혹은 희극-을 극대화시키며 더 처절한 세상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빠른 템포를 가지지도 그다지 흥미로운 플롯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국만의 독특한 누아르적 요소와 한석규 배우의 훌륭한 연기, 가슴이 먹먹해지는 서사는 이 영화만이 가진 독특한 입지를 확고하게 다져주고 있다. 물론 옛 영화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진입장벽이 그리 낮지 않지만 무엇보다 6편밖에 되지 않는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이고 한국 누아르의 모체가 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초록물고기]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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