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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재키 브라운,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7. 03:34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하고

팸 그리어, 사무엘 L. 잭슨, 로버트 포스터 등이 연기한다.

 

[펄프 픽션]으로 할리우드의 이목을 집중시킨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차기작 [재키 브라운]이다. 제목 [재키 브라운]은 팸 그리어가 연기한 캐릭터의 이름이다. 타란티노 감독답지 않게 다소 직설적이고 친절한 제목을 사용했는데, 이는 영화가 가진 성질과도 일맥상통한다. 영화는 쉽다. 물론 타란티노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어렵지 않다. 여기서 어렵지 않다고 말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는 것이지 보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보기는 어렵다. 그의 영화는 항상 피가 이리저리 튀고 시끄러운 총성이 들리며 널브러진 시체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 표현이 다소 적나라하고 장난스러워서 작품을 꺼리는 대중의 수도 적지 않다. [재키 브라운]은 다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는 제목이 쉬운 만큼 보기도 쉽다. 무차별적인 폭행도 나오지 않고 피가 이리저리 튀지도 않으며 처참한 시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 영화의 주된 테마는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두뇌싸움이지 죽고 죽이는 살인극이 아니다. 이는 어떤 의미로 보면 '타란티노적'이지 않다고도 볼 수 있는데, 굳이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가릴게 아니라 이런 스타일로도 충분히 그의 자신감을 뽐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영화를 더하고 뺄 수 있다면 [재키 브라운]은 [펄프픽션]에서 [저수지의 개들]을 뺀 영화다. 또, 영화에 들어간 재료를 퍼센트화 시킬 수 있다면 [저수지의 개들]에 들어간 잔혹성이 90%고 [재키 브라운]에는 20% 정도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만큼 부드럽고 느리며 건강하다. 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타란티노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영화에는 괄목할만한 연출이나 심금을 울리는 대사 같은 것은 없다. 그 대신 이 영화를 움직이는 주된 동력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연기고 다른 하나는 음악이다. 오델 역을 맡은 사무엘 L. 잭슨은 [펄프픽션] 때보다 두 배는 늘어난 분량과 함께 상당히 늘어난 대사량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연기한다. 누가 그보다 더 흑인스럽게 연기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견이 없는 배우다. 거기에 재키 브라운 역을 맡은 팸 그리어는 다른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 인지도가 낮음에도 정확한 딕션과 능글맞은 표정연기로 확실한 인상을 심어줬다. 또, 재키 브라운의 조력자이면서 무기력하고 우울한 중년인 맥스를 완벽하게 소화한 로버트 포스터는 어떤가. 그의 연기는 톡톡 튀는 두 배우(사무엘 L. 잭슨, 팸 그리어)의 사이에서 잔잔하고 힘있게 중심을 잡아주며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마이클 키튼과 로버트 드 니로, 브리짓 폰다의 연기도 흠잡을 데가 없다. 물론 영화의 분위기가 격양되지 않고 일정하게 차분한 톤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배우들의 폭발적인 감정연기를 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폭발하는 연기가 언제나 좋은 연기인 것은 아니다. 감정을 터뜨리지 않아도 전달할 수 있는 여러 분위기, 긴장감, 차분함, 팽팽함, 느긋함, 여유로움 등을 매끄럽게 표현하는 것도 분명 예삿일이 아닐 것이다.

 

다음은 음악이다. 이 영화에서 타란티노 감독은 자신의 선곡 센스가 훌륭하다는 것을 재차 말해주는 듯하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의 모든 음악은 이 영화가 가진 유일한 단점, '스펙터클하지 않음'을 완벽하게 가려주고 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모든 관계와 사건을 청산하면서 도시를 떠나는 재키 브라운의 모습과 함께 나오는 OST, 바비 워맥의 [Across 110 St]는 영화의 줄거리와 재키의 심정을 정확하게 대변하는 이상적인 선곡이었다. 이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 내가 한 일이 괜찮았다는 게 아니야". 그녀는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사랑해준 남자를 이용하고 동료를 배신하며 법을 밥 먹듯 어긴 사람이다. 분명 선인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마음 한 켠에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에 보여줬던 그녀의 표정과 노래의 가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 유려한 엔딩 시퀀스는 관객에게 크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지만 어딘가 외롭고 씁쓸한 재키의 기분을 명확히 전달하고, 관객은 분명 그녀가 스페인에서 맞이할 새로운 삶을 진심 어린 마음으로 응원하게 될 것이다.

 

 

[재키 브라운] 이전의 작품, [펄프픽션]과 [저수지의 개들]은 '멀리서 보는 희극'같은 영화였다. 관객은 그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둔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기만 했었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누가 누굴 배신하고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어서 큰 감정의 이입 없이 '오락'으로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재키 브라운]은 이전의 두 작품은 물론이고 이후에 나온 여러 영화들과 비교해 봤을 때도 큰 차별점이 있다. 캐릭터의 감정을 대변하는 가사가 있는 음악을 많이 사용했다는 점, 차분한 톤으로 극의 전개가 급하지 않다는 점, 충격적이고 잔인한 연출을 아주 드물게 보여줬다는 점, 재키와 맥스의 로맨스적인 면을 강하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 등을 미루어보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지금껏 보여줬던 '멀리서 보는 오락'이 아닌 '가까이서 느끼는 감정'을 전달하려고 한 듯 싶다. 그리고 그 감정은 분명 '사랑'일 것이다. 끝내 두 캐릭터는 함께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느껴지는 어떤 감정과 진한 입맞춤은 지금껏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깊은 사랑의 이야기가 더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란티노 감독이 사랑을 표현한다면 이런 방식이 아닐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타란티노 감독은 [재키 브라운]을 마지막으로 '사랑'을 테마로 하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이후의 [킬 빌 1, 2]에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까지 이어지는 그의 필모그래피의 주된 정서는 '복수'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직 피와 복수 총과 살인밖에 모르는(줄 알았던) 괴짜가 서툴게 세상에 내놓은 사랑의 표현은 분명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작품일 것이다.

 

 

 

[Jackie Brown]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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