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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데쓰 프루프,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8. 03:14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하고

커트 러셀, 조이 벨, 트레이시 톰슨 등이 연기한다.

 

많은 타란티노 영화를 봤다. 지금까지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10편이다. 제작자로도 많은 이름을 올렸지만 그가 감독을 맡은 작품은 10편이다. 그리고 이제 전부 다 봤다. [데쓰 프루프]는 내가 남겨둔 마지막 타란티노 영화였다. 이제 [저수지의 개들]에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까지 그가 연출한 영화는 모두 봤다. 몇 개의 영화는 두세 번씩 봤다. 나는 그만큼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데쓰 프루프]를 마지막까지 남겨둔 이유는 명확하다. 타란티노 본인이 제일 못 만든 영화라고 언급했고 주변의 영화 선배들이 이 영화는 굳이 볼 필요 없다고까지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감독의 영화를 '다 본 것'과 '많이 본 것'은 전혀 다른 말이지 않은가. 나는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다 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가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의 팬으로서, 추종자로서 이 업적을 달성하고픈 강한 열망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창작자와 주변의 만류에도 끝내 [데쓰 프루프]를 시청했고, 결과는 충격적 이게도 '대만족'이다.

 

이 영화는 머슬 & 슬래셔 액션 장르다. 분명 당시에도 한물 간 장르지만 영화 덕후 타란티노 감독이 일부러 그 두 장르에 대한 헌정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또,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답게 파트가 나뉘어 있으며 1부는 슬래셔 액션을 주로 보여주고 2부는 머슬카 액션을 주로 보여준다. 1부, 2부에는 이후 [헤이트풀 8]에서 교수형 집행인 '존 루스'로 열연을 펼칠 커트 러셀의 '스턴트맨 마이크'가 악역으로 등장하는데, 이 놈은 스턴트맨용 차량으로 여자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다니는 사이코패스이다. 슬래셔 무비를 오마주한 1부의 줄거리는 [짱구는 못 말려]의 일개 에피소드와 비슷한 수준으로 단순하다. 마이크가 타깃을 잡고 머슬카를 이용해 그 타깃을 죽인다. 그게 끝이다. 그래서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가 아주 속이 비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스토리는 없다시피 하는데 타란티노의 장기인 그럴듯한 대사 놀이와 그 배경에 깔리는 훌륭한 OST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거기에 출중한 배우들의 미모와 걸걸한 대사, 지지직거리는 필름 연출은 한껏 B무비적인 감성을 증폭시켜 그저 장난스러운 영화라는 생각만을 하게 한다. 

 

 

그러나 2부의 전개는 180도 뒤바뀐다. 1부에서 자신이 정한 타깃을 완벽하게 '슬래시'한 스턴트맨 마이크는 2부에서 새로운 타겟을 선정한다. 그러나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속담이 떠오르듯 그는 그리 쉽지만은 않은 타겟을 골랐다. 2부에서 마이크의 타깃이 된 여자들은 앞의 1부에서 보여줬던 4명의 여자들과 숫자만 같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여전사다. 이 야생마들은 클래식 머슬카에 대해 빠삭하고 스턴트맨 일을 하며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 보닛 위에 매달리는 소위 '돛대 놀이'같은 정신 나간 장난을 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스턴트맨 마이크는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의 살인 욕을 해소할 타깃으로 그녀들을 고른다. 그러나 몇 번의 시도에도 쉽게 굴하지 않는 그녀들을 보며 마이크는 뭔가 아주 잘못됐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작전에 실패한 마이크는 그녀들 중 한 명에게 총을 맞고 도망친다. 그녀들의 화끈한 반격에 그가 지금껏 보여줬던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총상에 죽을 듯 아파하는 찌질하고 구차한 마이크만이 남는다. 끈질긴 추격 끝에 그녀들은 그에게 아주 통쾌한 복수를 당한다. 어느 누가 봐도 세상에서 가장 통쾌한 그런 복수.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1부의 여성들은 스턴트맨 마이크에게 무참히 살해당한다. 슬래셔 무비인 점을 감안하고 봐도 온전한 정신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잔인한 죽음을 맞는다. 어떤 저항이나 반격도 하나 없이 로드킬을 당하는 고라니처럼 힘 없이 변사체가 된다. 그래서 1부까지만 보면 도대체 이게 뭔 영화인지 싶다. 그러나 1부는 2부를 위한 제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2부에서 무자비한 학살자인 스턴트맨 마이크에게 끝내주는 복수를 한 인물들도 같은 여성들이다. 물론 마이크가 여성들만 골라 살해하는 사이코패스라서 그렇겠지만 이는 더 큰 쾌감을 위한 감독의 영리한 설정이다. 1부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이들과는 달리 2부의 여성들은 오히려 스턴트맨 마이크를 추적하고 압도하며 끝내 무지막지하고 시원시원한 폭력과 함께 싸늘한 주검으로 만들어 버린다. 여기서 느껴지는 역전된 상황의 쾌감은 비록 일차원적일지라도 대단한 효과를 보여준다. 도망치고 당하기만 했던 여성들이 변태 싸이코패스 남성을 같은 머슬카로 쫓으며 벌이는 추격씬은 지금껏 억눌려있던 어떤 젠더적인 기준에서의 해방마저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그녀들이 스턴트맨 마이크를 확정 사살해버리는 그 순간에 딱 올라오는 'THE END'와 엔딩 OST는 추격씬부터 계속 느끼고 있던 '합당한 쾌감'을 배로 증가시키는 마약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1부는 여성이 보기엔 불쾌한 영화가 맞다. 그러나 2부는 여성이 가장 좋아할 영화다. 그러니 그 극한의 해방감과 통쾌함을 느끼기 위해선 지루하고 끔찍한 1부를 견뎌야 한다. 아주 모순적인, 그러나 확실한 영화다. 

 

 

혹자는 영화가 너무 단순한 게 아니냐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이 영화는 극도로 단순하다. 그러나 단순을 좋게 말하면 '심플'이고, '심플'은 최고의 통쾌함을 선사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어떤 복선이나 뒤틀림이 없는 이런 전개 방식은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고,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기도 수월해서 그저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영화다. 뭘 찾을 필요도, 뭘 굳이 느끼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야생을 즐기면 된다.

 

사운드가 너무 훌륭한 영화다. 꼭 헤드폰을 끼고 높은 볼륨과 함께 시청하길 바란다. 

 

 

 

[Death Proof]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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