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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영광의 길, 스탠리 큐브릭]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12. 02:57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연출하고

커크 더글라스, 조지 맥크리디 등이 연기한다.

 

영화 [영광의 길]은 1957년에 개봉한 반전戰영화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의 처참한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참호전, 통신, 포병, 가시철조망 등의 물리적인 요소와 부상당한 병사나 무능력한 장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같은 인간적인 요소를 굵직하게 표현한다. 또, 두려움에 떨다 못해 미쳐버린 일개 병사들의 모습이나 진급에 눈이 멀어 부하들의 목숨을 개미처럼 취급하는 장교들의 모습은 그 당시 전쟁이 가져온 인간성의 추락을 꼼꼼히 묘사하고 있다. 특히 자기 목숨보다 병사의 목숨을 더 위하는 덱스 대령(커크 더글라스)같은 이타적 인물이 단 한 명밖에 등장하지 않고, 그마저도 좋은 결말을 맞지 못하는 모습은 그때의 참혹함을 배로 높여주는 훌륭한 장치로 보인다. 

 

영화는 짧다. 1시간 24분. 그럼에도 보여줄건 다 보여준다. 아무리 옛날 영화라지만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이다. 연출의 마왕이며 상황의 마법사다. 이 영화도 만약 흑백이 아니었다면 1957년에 만들어졌을 거라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실감 나는 참호의 연출과 개미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덱스 대령과 병사들의 진격 연출, 군법 회의에 소환된 희생양 삼인방의 모습을 다루는 법정 연출 등 세련된 점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참호의 연출은 2019년에 개봉한 샘 멘데스가 연출한 [1917]의 그것과 정말 유사한데, 아마 멘데스 감독이 [영광의 길]을 레퍼런스로 삼지 않았을까 싶다. [1917]과 비교하며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장교들이 대화하는 장면이나 참호 넘어 정찰하러 가는 장면, 총살하기 전 총살대로 걸어 나오는 일병들의 처량한 장면 등 훌륭한 연출이 너무나도 많다. 물론 반전이라는 영화의 주제와 분위기가 너무도 뚜렷해서 서사의 짜임이나 가슴을 울리는 대사, 빙의한듯 한 연기는 다소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1시간 2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이 정도 볼륨의 스토리를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극적인 연출로 관객의 집중과 이해를 높인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큐브릭 감독의 최고 장기다. 큐브릭 감독의 가장 악랄(?)한 면은 아주 끔찍한 상황에 인물을 배치하여 그의 추악한 모습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영화의 중후반부에는 이런 연출이 나오는데, 우선 아무 죄가 없음에도 본보기 사형수로 지목된 세 명의 일병이 사형 집행 전 날 영창에서 맞이하는 처절한 상황을 보여준 다음에 전장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아리따운 여인들과 우아한 파티를 즐기고 있는 장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 일병들은 그 장교들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지만 그들은 그저 손님이 나를 기다린다며 사건의 진상을 피하려고 한다. 극과 극의 상황을 연속으로 연출하여 권력의 부패함이나 목숨의 경중을 드러내고,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일병들의 억울한 죽음을 더 억울하게 느끼게끔 하여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전쟁의 부조리함과 참혹함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메시지가 명확한 영화여서 딱히 해석을 하거나 숨겨진 의미를 찾아야 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특정한 감독이 가지고 있는 문법을 하나씩 발견하는 것도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흑백영화다. 물론 [씬 시티]같은 의도되고 강한 대비를 가진 흑백이 아니라 눈이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컬러영화가 당연해져 버린 시대에 태어나 컬러가 당연한 줄 아는 세대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기존의 영화를 볼 때와 달리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긴 했다. 색채가 빠져버린 화면은 신체나 물체의 분간이 힘들어 눈이 쉽게 피로해지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흑백영화의 지직거림이나 스타워즈를 방불케 하는 인조적인 음향이 주는 어떤 맛이 있는데, 이를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마치 해외에 나가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경험하는 것처럼 아직 기술이 많이 발전하지 않았던 그 시기로 돌아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새로운 경험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지금 세대에서는 그 시절에 대한 오마주나 향수가 아닌 이상 볼 수 없는 방식의 작품이기 때문에 이제 막 영화의 세계에 입문하고 있는 나에게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64년 전에 개봉한 영화다. 이는 우리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 것이며, 64년 뒤에 나는 90살을 넘길 것이다. 내가 본 영화중에 가장 오래된 영화지만 아마 큐브릭 감독의 작품이 아니었으면 시도하지 않았을게 분명하다. 그토록 나는 그의 획기적인 연출과 영화에 대한 태도, 작품을 그리는 문법을 좋아한다. 큐브릭 감독은 13편의 장편을 연출했는데, 이제 막 5편을 봤다. 또다시 갈 길이 멈에 설렌다.

 

 

 

[Path of Glory]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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