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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부기 나이트,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10. 12:23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하고

마크 월버그, 버트 레이놀즈, 줄리안 무어 등이 연기한다.

 

나에겐 두 번째 PTA영화다. 처음으로 접했던 1999년작 [매그놀리아]보다 2년 전에 만들어진 PTA감독의 초기작 중 하나인데 그 수위와 묘사, 연출과 미술, 연기와 서사는 실로 어마 무시했다. 27살에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스킬풀 한 연출기법과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의 잠재성이 있는 영화다. 거기에 마크 월버그의 폭발적인 연기와 [매그놀리아]에서도 출연했던 줄리안 무어, 필립 시모어 호프먼, 리키 제이, 윌리엄 H. 머시, 멜로라 워터스, 존 C. 라일리, 루이스 구즈만, 필립 베이커 홀 등 출중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은 물론이고 버트 레이놀즈는 과거의 위용을 다시 떨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노래는 또 어떤가. 1970년의 미국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펑키 뮤직과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의 긴장감을 극도로 높이는 BGM은 이 영화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영화는 점잖아보이는 위의 포스터와 달리 1970년대의 포르노 산업에 얽힌 사람들의 파멸과 재기를 그린 작품으로서 당대의 포르노 산업의 흥망성쇠와 전체적인 분위기를 완벽히 녹여냈다는 평을 받는다. 또한 중산층 가정의 붕괴, 끊이지 않는 마약과 무분별한 매춘, 거기에 대한 대중의 시선 같은 시대상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연출적인, 미술적인 부분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친절한 배경적 설명과는 대조적 이게도 감독은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 어떤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를 규정하지도 않고 유치한 대사와 뻔한 연출로 캐릭터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감독은 그저 인물의 방 내부의 묘사나 몸짓, 손짓, 눈짓을 통해 그 인물의 성격과 사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관객은 캐릭터의 다음 행동을 쉬이 예측할 수가 없다. 게이인지 레즈비언인지 사이코인지 정상인지 죽을지 살지. 우리는 그저 영화가 마지막에 도달할 때쯤에나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뿐이다. 이와 같은 은근하고 꾸준한 인물 묘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를 더 관찰하게 하고 캐릭터에게 더 집중하게 한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의 사정에 더 몰입하게 되고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 

 

 

[부기 나이트]에는 여러 캐릭터가 나온다. 마크 월버그가 연기한 '더크 디글러'는 하늘이 내려준 13인치의 거대한 남근을 발판으로 포르노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는 비록 나폴레옹이 로마시대 사람인줄 알고 있을 정도로 무식하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이나 성공하고 싶은 열망은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리고 그 강한 집념으로 스스로를 갉아먹기에 이른다. 마치 포르노 시장이 극장에서 비디오로 밀려났던 것처럼 그 시장을 휩쓸었던 그는 더 젊고 쌩쌩하며 열정이 넘치는 다른 배우에게 자리를 뺏기고 만다. 그를 한눈에 알아보고 물심양면 지원했던 잭(버트 레이놀즈)을 만나기 전, 10달러에 자신의 자존심을 팔았던 더크는 한 달을 힘차게 울고 생을 마감한 매미처럼 다시 그 비참했던 때로 돌아오게 된다. 물론 [매그놀리아]에서도 그랬듯 불행한 사람은 그 뿐만이 아니다. 끝내 아들의 양육권을 얻지 못한 앰버(줄리안 무어), 고등학교 동창에게 멸시와 무시를 받은 롤러걸(헤더 그레이엄), 온갖 위선과 거짓으로 얼룩진 리드 로스차일드(존 C. 라일리), 더크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한 스코티(필립 시모어 호프먼), 참다 못해 아내를 총으로 쏴 죽인 리틀 빌(윌리엄 H. 머시), 포르노 배우였다는 이유로 대출도 받지 못해 힘겹게 사는 벅(돈 치들) 등 모두들 딱히 온전한 상태는 아니다. 누구는 나사가 몇 개씩 빠져 있는 사람이고, 누구는 터져버리기 직전의 광기를 숨기고 있는 사람이며, 누구는 끝내 폭발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한다. PTA영화의 매력은 이런 치밀한 캐릭터들의 공방과 그들이 보여주는 독창적인 서사에서 나오는 듯하다.

 

괜히 -최근에 작품을 모두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타란티노 감독의 인물들과 비교를 해보고 싶다. 타란티노 영화의 인물들은 애초에 미쳐있어 보인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한스 란다 대령이 그렇고,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캔디가 그러하며 모든 작품의 악역이 그렇다. 그리고 미쳐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아마 이는 오락을 중요시하는 감독의 특성상 악인을 입체적으로 구성하지 않은 것이라 사료된다. 물론 관객은 거기서 강한 쾌감을 느낀다. 당연히 악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선인에게 전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인과응보라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이치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PTA 영화의 인물들은 아주 점잖다. 광기를 숨기고 있다. 그런데 또 숨기려고 숨기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광기가 안에 내재되어 있는 느낌이다. 잠재적 광기의 발현을 도모한달까. 그래서 캐릭터를 마음껏 미워하기가 힘들다. 또 당연하게도 맘대로 좋아할 수도 없다. 언제 이 인물이 나의 마음을 배신할지 모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모호함 때문에 PTA 영화를 포기할 수가 없다. [매그놀리아]도 [부기 나이트]도 드라마 장르의 영화다. 사람이 사는 삶을 다루는 드라마 장르.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이런 세상에서 산다. 완벽한 악인도 없고 완벽한 선인도 없으며 상황에 따라 성격이 슥슥 바뀌는 사람들이 있는 그런 세상. 어떤 의미로 가장 완벽한 드라마 장르의 영화가 아닐까. 이 세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옮겨놓은 감독의 능력에 그저 놀랄 뿐이다. 

 

 

영화는 [매그놀리아]와 비슷한 형국으로 마무리된다. 잭에게 용서를 구하는 더크의 처절한 모습, 두 번째 엄마인 앰버의 품에서 아이처럼 엉엉 우는 처연한 더크의 모습, 여전히 죽지 않은 자신의 소중이를 잡으며 아직 죽지 않았다며 힘을 내는 더크의 의지적인 모습들은 우리에게 희망, 재기, 성장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속 살아가야 함을 일깨운다. 누구나 실수는 저지르지만 당연히 돌이킬 수 있고 거기에 운이 따라주면 오히려 한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많은 시련이 있었고 수두룩한 실패가 있었으며 끔찍한 상황들도 겪었지만 결국 자신을 지탱해줄 한 명의 사람과 한 개의 매개만 있으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게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드라마 장르의 매력은 여기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어차피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 저 화면 속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이다. 아무리 다르다고 해 봤자 성별이나 인종 따위다. 성별이 다르다고 더 오래 살지 않고, 인종이 다르다고 더 빨리 죽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영화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통해 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기도, 인생을 살아 가게 하기도 한다. 사람을 다루는 영화기에 가장 큰 '사람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드라마 장르를 가장 좋아한다. 어떤 VFX도 필요 없고 어떤 쓸모없는 장치도 필요 없다. 오직 서사와 연기만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래서 더 다루기 힘들고 재밌게 만들기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감독들이 여전히 드라마 장르에 계속 도전하고 훌륭하게 제작하고 싶어 한다. [부기 나이트]는 1997년에 제작됐다. 내가 태어났을 즈음이다. 무려 25년 가량의 세월이 지났으니 이제는 더 다양한 양상과 전개를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장르 영화들이 많이 제작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PTA 유니버스는 이제 막 시작됐다. 이제 고작 두 편 봤다. 앞으로 갈 길이 멈에 행복을 느낀다.

 

 

 

[Boogie Nights]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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