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듄, 드니 빌뇌브]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10. 20. 17:03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하고
티모시 샬라메, 젠 데이야, 레베카 퍼거슨, 오스카 아이작, 하비에르 바르뎀, 스텔란 스카스가드, 제이슨 모모아, 조쉬 브롤린, 장 첸, 데이브 바티스타,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 등이 연기한다. 마치 할리우드판 [1987]을 보는 것 같은 캐스팅이다.

10월 20일 개봉당일 용산 아이맥스에서 시청했다. 어릴 적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이후 오랜만의 아이맥스 시청이었는데 역시 IMAX는 괜히 MAX가 아니다. 나는 항상 집에 틀어박혀 27인치의 조그마한 화면으로 영화를 본다. 그러니 31.0m, 세로 22.4m 정도 되는 거대한 화면으로 광활한 우주의 서사시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거기에 괜히 좋은 자리를 얻으려 반차까지 썼으니.. 당일 개봉과 아이맥스만으로도 충분했던 기쁨에 사소한 일탈을 더해 더는 이 영화를 재미로만 평가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거두절미하고 이 영화는 꼭 IMAX로 봐야 한다. [듄]의 세계관은 만 몇년쯤 되는 한참 미래의 이야기기 때문에, 거대한 우주선, 진보한 과학기술, 행성 간 이동, 미래적인 전투 등의 장치가 많고 이는 큰 화면으로 봤을 때 더 효과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극의 주 무대인 아라키스 행성은 행성 전체가 사막으로 뒤덮여 있다. 행성의 모래엔 스파이스라고 하는 주황빛 물질이 함유되어 있고 '샌드웜'이라고 하는 거대한 모래 지렁이(?)가 돌아다녀서 큰 화면으로 보면 그 다이내믹함과 황홀함을 배로 느낄 수 있다. [듄]의 러닝타임은 155분, 장장 2시간 35분이다. 그런데 IMAX의 비율이 1시간이 넘어간다. 그 말은 곧 IMAX의 화면비를 위해 의도적으로 촬영했다는 것이고 IMAX로 봤을 때 감독이 의도한 경험을 희석시키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IMAX로 봐라. 다만 금, 토, 일 좋은 자리의 티켓팅은 아마 유명 가수 콘서트를 방불케 할 것이다.


영화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사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도 영화 제목이 왜 [듄]인지 알기가 어렵다. '듄'은 모래 언덕을 의미하는 단어이고, 이는 사막 행성 아라키스를 일컫는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한 마디로 영화가 불친절하다는 것이다. 애초에 빌뇌브 감독도 자신이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소설 [듄]의 시각화를 이뤄낸 것이고, 모 인터뷰에서도 최대한 소설의 느낌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하니 원작을 읽은 사람이 영화의 이해에 있어 더 높은 위치를 가지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설명이 부족한 게 장점이 될 순 없으니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듄이 무엇인지, 베네 게세리트가 누구인지, 하코넨 남작의 외형은 왜 저러는지, 아트레이드 가문의 보호구에는 어떤 장치가 있는 건지 등 진즉에 공부를 하지 않고 영화를 보면 갸우뚱할 장면은 분명히 있다. 따라서 모든 장치와 서사를 이해하고 싶다면 유튜브에 잘 정리된 내용을 먼저 보고 영화를 시청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비주얼, 음악, 서사, 연출, 캐스팅, 연기, 모든게 좋았다. 특히 비주얼과 음악은 더 말할 게 없다. 개인적으로 현존하는 모든 영화 중에 가장 거대하고 다이내믹한 영상미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배우들끼리 육탄전을 벌이는 액션씬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지만, 여러 우주적인 묘사와 아라키스 행성의 세밀한 모습은 내 눈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쳐흘렀다. 이건 또 다른 경험이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게 영화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슬로우 모션이나, 익스트림 클로즈업 같은 다분히 영화적인 연출이 나오지 않는 한 실제로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실제감이 정말 뛰어나다. 이는 곧 SF 장르 영화의 목적, '실제 있는 듯 보여주기'를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먼 미래라는 점이나 세계관이 어둡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치한 기색 없이 이 정도의 실제감을 선사했다면 영화의 일차적인 목표는 훌륭히 달성했다고 본다. 앞서 찬양(?)했듯 IMAX로 시청한 덕에 효과가 배가되었을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극의 톤이나 분위기가 전혀 어색하거나 튀지 않고, 오히려 지금까지 나왔던 스페이스 오페라 풍의 영화에 비해 더 세련되었고 고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캐스팅이 한몫했다. 주인공인 폴(티모시 샬라메)은 내가 소설을 보지 않았어도 이 배우가 최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했다. 체구가 작음에도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와 눈부실 정도로 흰 피부는 여러 역경을 헤쳐나가야 하는 어린 공작의 모습을 아주 잘 대변한다. 또한, 아라키스 행성의 원주민이자 폴의 꿈속 그녀 챠니(젠 데이야) 프레멘 족의 리더 격인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는 행성의 특성이 잘 녹아든 캐스팅이다. 아라키스 행성은 온통 사막이기 때문에 낮 기온이 60도에 육박하고 그 흔한 그늘 하나 없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피부가 흴 수 없고 두 배우는 그에 부합한다. 이 외에도 하코넨 가문과 아트레이드 가문의 차별점을 미술뿐이 아닌 배우의 외형으로도 차이를 두어 캐스팅을 한 점은 정말 칭찬할만하다. 음악은 뭐 한스 짐머가 맡았으니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이 영화를 통해 영화에서 음악이 가진 '힘'이 실로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SF 장르 영화의 음악은 당연히 웅장하다. 다른 모든 SF 장르 영화를 봐도 웅장한 음악은 꼭 등장한다. 이번 [듄]의 음악에서 다른 SF 장르의 영화 음악과 차별점을 느낀 부분은 '기괴함'이 첨가되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웅장함에 사람의 비명소리나 신음소리를 추가하여 영화의 음침한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기괴한 외형을 청각적으로 나타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는 당연하게도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그러니 우리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의도적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지 않는 한 [듄]의 세계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서사적인 부분도 영화의 특성상 설명이 부족한 점을 제외하면 새는 구멍이 없다. 애초에 불필요한 플롯이 없고 서사를 뒤섞지 않았기 때문에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문제가 없다. 그렇다 보니 영화가 전달하는 의미는 사실상 전무하다. 역경을 극복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그저 돈과 명예를 위해 상대를 침략하여 지배하려고 하는 악역이 있다. 전형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형적인 이야기로 어떤 뜻깊은 메시지를 주기엔 이미 영화가 가진 톤앤 매너가 다르다. 괜히 어쭙잖은 메시지 전달하려고 하면 흥이 깨지는 영화다. 그저 보고, 경험하고, 놀라고, 즐기면 된다. 살짝 길긴 한데 오히려 짧으면 아쉬웠을 것이다.

사실 내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비주얼적으로 훌륭하게, 컨셉을 정밀하게 구현하여 실제감을 월등히 높였지만, 스토리와 연기, 대사의 힘으로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각적 예술성은 내가 감히 왈가왈부할 수 없을 정도지만 인문학적 예술성, 즉 내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영화는 당연히 드물다. 하나 있었다면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정도일까. 물론 반대로 생각해보면 '큰 어려움 없이 (사전에 배경지식을 쌓고 본다는 가정 하에)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이 가능한 영화'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점수는 낮지 않다.


극장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영화다. 이런 영화는 분명 필요하다. 영화를 사전에 공부할 의지가 있고, 2시간 35분 동안 소변을 참을 재간이 있으며, 광활한 우주를 여행하고 싶은 모험심이 있는 사람은 지금 당장 IMAX 티켓팅을 하러 가도록 하자. 꼭 뒷자리에서 봐라. 앞자리에서 보면 모래 가루가 날아와 피부에 박히는 느낌이 들 것이다.

 

 

 

[DUNE]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