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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10. 19. 15:00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연출하고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다.

최근 메가박스에서 재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학원 서류를 마감한 날 후다닥 달려가서 본 한 달만의 극장 영화 [그래비티]. 이 영화의 기존 개봉 연도는 2013년인데, 영화의 ㅇ도 모르고 관심도 없던 고등학교 2학년의 나는 조그마한 스마트폰 화면으로 봤던 기억이 있다. 따라서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의 줄거리가 '그냥저냥 우주에서 살아남기'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극장의 큰 화면에서 다시 접한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우주영화의 주제는 '우주에서의 생존'이 아니라 '지구에서의 생존'이었다.

예전의 나처럼 이 영화를 단순한 우주 표류기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재시청해야 한다. 물론 영화는 전반적으로 우주에서의 생존에 대해 보여주고 있지만, 그리고 그 과정이 아주 간단하지만, 그 속의 함의는 단편적인 '생존'보다 한 차원 더 깊다. 주인공인 라이언(산드라 블록)은 우주에서 특정 임무를 수행하는 미션 스페셜리스트로서 업무적인 부분에서 책임감이 강하다. 부근의 러시아 위성이 폭파되면서 엄청난 속도의 잔해가 우주선에 부딪혀도 임무를 손에서 놓지 않는 고집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딱히 그 때문은 아니지만, 굉장한 재해로 라이언은 표류하게 되어 대원들을 모두 잃고 광활한 우주에서 홀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여러 차례 위기를 맞고 떠나간 팀원의 환영까지 봐가며 (영화에서 표현한 대로) 따듯한 Mother Earth의 품으로 돌아오는 그런 내용이다. 어려울 건 없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가장 대단한 부분은 이 간단한 플롯을 통해 인간의 존재와 생존의 갈망, 그리고 관계의 필수성과 삶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라이언은 우주에 오기 전 사랑스러운 딸을 허망하게 잃었다. 이는 라이언이 삶에 대한 의지와 흥미를 잃게 만든 원인이었으며, 미치도록 지루한 일상과 잊을 수 없는 기억에서 도망치기 위해 우주로 향하게 하는 이유였다. 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언제나 진지하고 잘 웃지 않는 태도, 그리고 우주에서 맞닥뜨린 위기를 이겨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손쉽게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모습도 이에 기인한다. 그러니 라이언은 역경을 이겨낼 수 없었던 게 아니라 이겨낼 필요를 느끼지 못해 시도하지 않은 것이다. 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살아갈 의지가 없는 사람은 드물다. 힘들게 얻은 생과 일상을 버리고, 전혀 일말의 정보도 없는 죽음을 무심코 받아들이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죽음을 이야기한다. "죽고 싶다.", "죽을 것 같아.", "죽고 싶냐?" 등 우리나라에서 '죽음'은 누구나 쉽게 받아들이는 평이한 감정이라고 느껴질 만큼 자주, 또 무분별하게 사용한다. 그래서 이런 영화는 소중하다. 하나뿐인 딸의 죽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삶, 우주에서의 고립. 한 사람이 더는 살아갈 희망을 찾지 않을 때 생명의 불씨를 스스로 꺼트리며 덤덤하게 준비하는 죽음의 과정을 보여주며 '죽음'의 존재에 대해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영화가 더 소중한 이유는, 그러한 죽음의 과정을 영화적인 방법으로 역전시켜 존재와 살아있음에 대한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라이언이 생명의 끈을 놓기 직전, 자신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희생한 맷(조지 클루니)의 환영이 그녀에게 찾아와 다시 불을 지펴주는 시퀀스는 참으로 쉽고 공평하다. 쉽고 공평하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모두가 같은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최후의 최후까지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일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행해야 한다는 자립. [그래비티]는 생존이라는 탈을 쓰고 성장을 노래하는 영화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모든걸 포기하고 싶을 때 보면 좋은 영화다. 특히 사람에게, 삶에게 지쳐 모든 관계와 짐을 버려버리고 싶을 때 보면 참 좋은, 아니 꼭 봐야 할 영화다. 세상을 살다 보면 모든 걸 다 놓아버린 채 우주에서 유영하듯 떠다니고 싶을 때가 온다. 대학생은 과제와 인간관계에, 수험생이라면 끝도 없는 공부와 불안한 미래, 직장인이라면 지루한 삶과 힘든 업무에 지치고 치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그도 그 나름대로의 고충과 스트레스가 있다. 어디에 사는 누구나 계속해서 발전하고 싶은 욕망과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 변하고 싶은 충동에 언젠가 한 번쯤은 다 내려놓고 싶을 때가 온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삶엔 선택지가 생긴다. 버릴 것인가, 버리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선택지가 두 개라고 해서 결과가 두 개라는 법은 없다. 내 생각이지만,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 그것은 바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버린다고 해도 그때 잠깐이다. 시간은 가고 세상은 변하니 한 사람의 존재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어차피 나아가야 한다. 당연히 힘이 든다. 무겁고 어렵고 아프다. 라이언도 차마 버릴 수 없으니 미친 듯 일만 하며 겨우겨우 버틴 것이다. 그러니 손쉽게 버릴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무덤덤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쉽게 놓아버리지는 못했다. 타의적이든 자의적이든 라이언의 생명의 불씨는 다시 켜졌고, 이는 우리의 깊은 내면에는 극복하고 싶고 도전하고 싶고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또, 아무리 관계에 지쳐 나가떨어져도 결국 관계를, 종속을, 사람을 찾게 되는 인간이 가진 외로움의 아이러니를 꿰뚫는 느낌도 든다.

 

자기 안에 있던 생의 의지가 발현된 라이언은 모든 목적을 잃은 채 그저 정처없이 방황하기만 했던 그때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누리던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고,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우주로까지의 회피도 성공적인(?) 결과를 낳지 못했으니 말 다했다. 아직 라이언이 겪은 정도의 허무함을 느껴본 적은 없으나, 나도 언젠가 한번쯤 비슷한 기분을 느낄 때가 올 것이다. 극복할 수 없는 나락에 빠져있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직 그런 때가 오지 않아서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이 광활한 우주 표류기 영화를 기억한다면 감히 섣부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영화엔 분명 그런 힘이 있고, 영화는 그러려고 있는 것이니까. 

 

 

 

[Gravity]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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