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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돌이킬 수 없는, 가스파 노에]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7. 21. 03:24


가스파 노에 감독이 연출하고
모니카 벨루치, 뱅상 카셀, 알베르 뒤퐁텔 등이 연기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별의별 잔인한 장면을 다 본다. 누군가의 머리가 댕강 잘리는 장면을 볼 때도 있고, 산 채로 아킬레스건을 잘라 버리는 장면을 볼 때도 있으며, 손가락 마디마디를 하나씩 끊어버리는 장면을 볼 때도 있다. 물론 아주 끔찍한 고어 영화인 경우에나 여과 없이 보이는 장면들이다. 일반적인, 혹은 상업적인, 그리고 철학적 사유를 도모하는 영화들에서는 이런 장면을 무신경하게 내보내지 않는다. 위와 같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곧 잘 가장 훌륭한 무기인 '관객의 상상력'을 이용한다. 뼈가 부러지는 장면에 카메라를 돌려 소리만 들리게 한다던가. 추락하는 사람을 일부러 비추지 않고 있다가 피가 흐르는 장면만 보여준다거나 등. 소리를 기본으로 깔고 다른 화면을 연출해 그 일이 '일어났다'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영화 수위를 낮추기도 해야 하고 관객에게 불쾌함을 주지 않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는 일종의 사리는 듯한 연출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기대하지 마라. 얼굴이 뭉개지는 장면, 끔찍한 강간을 당하는 장면(정말 배우가 걱정이 될 정도인), 성매매 업소에서 환락을 즐기는 장면이 어느 하나의 필터도 없이 그대로 나온다. 그것도 아주 차갑고 잔혹하게. 누구에게도 추천할 수 없는 영화다. 누구도 안 봐도 될 영화다.

하지만!.... 하지만 영화는 잘 만들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두말 할 거 없이 트라우마틱한 영화지만 여러 가지 칭찬할 점은 있다. 우선 이 영화는 시간이 거꾸로 간다. 제목은 [돌이킬 수 없는]인데 영화는 거꾸로 잘만 간다. 제목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 하기로 하고.. 가장 처음 언급하고 싶은 것은 바로 카메라 워킹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아주 간략한데, 파티를 즐기던 어느 여자가 집에 가는 도중 성폭행을 당했고 그녀의 남자 친구가 범인을 찾으러 다니는 게 전부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이 영화는 거꾸로 간다. 즉 영화 시작부터 남자 친구는 범인을 찾고 있다. 자신의 여자 친구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강간한 범인을. 그래서 카메라는 그의 감정과 동화된 듯 이리저리 휘고 꺾이며 빙글빙글 돈다. 말 그대로 정신이 없다. 제대로 된 화면은 몇 번 나오지도 않는다. 거기에 긴장감 있는 음악과 배우의 열연이 더해져 나조차도 그 감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을 만큼 그의 '빡침'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 이후 몇 번의 시퀀스들에서도 계속된 불안정과 헤맴, 분노와 방황을 카메라 워킹을 통해 보여준다. 시간이 계속 -뒤로- 가면서 사건이 일어나는 시점쯤으로 가면 카메라는 차츰 안정을 되찾는다. 처음엔 분명 도대체 이게 뭐하는 영환지 싶으면서도 서사가 진행될수록 점점 이해가 된다. 이런 방식은 처음 봤다. 나는 영화 시작 후 초장부터 이미 압도당한 상태였다. 앞에 있었던 사건의 진실(사실 진실이랄 것은 없지만)을 알기 위해서 영화를 따라갈 수밖에 없게 만들어놨다. 좋은 연출이다. 그러나 영화는 추천하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위의 포스터를 보면 알겠지만 원제는 [Irreversible]이다. reversible에 Ir를 붙여 반대되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번역하면 [돌이킬 수 없는]. 영화는 언제나 제목의 틀 안에 갇혀있기 마련이다. 영화와 관련이 없는 제목은 당연한 얘기지만 없다. 그래서 제목의 힘은 조심히 다뤄야 한다. 제목을 너무 직관적이게 지으면 영화가 예상되고 너무 추상적이게 지으면 관객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원제인 [Irreversible]은 완벽한 작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영화의 가장 큰 부분인 진행방식과 관련이 있다. 영화는 앞서 말한 것처럼 뒤에서 앞으로 진행된다. 주인공들의 결말을 먼저 보여줬다는 것인데, 그것은 관객이 결말을 유추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를 제한한 것이다. 그냥 영화를 앞 뒤로 뒤집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어떤 의미로 관객에게 무력감을 선사하는 행위다. "이미 일은 일어났다. 그러니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아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때 떠오르는 것은 바로 영화의 제목이다.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봐버렸고 희망을 가지거나 주인공을 위해 기도할 수도 없다. 왜냐? 이미 일어났으니까. 당했고 죽었고 잡혀갔으니까. 시간은 뒤로 돌릴 수 없으니까. 아마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 계속 생각했을 것이다. "여자 친구 혼자 집에 보내지 않았었더라면", "그때 내가 좀 더 잘했었더라면", "이성적이게 생각할걸" 등. 이런 말을 자주 내뱉는 요즘의 우리도 사실은 알고 있다.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무의미한 언행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한다. 비트코인을 제 때 팔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말을 잘못 꺼낸 것을 후회하며, 허투루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하며 후회한다. 이 영화는 불쾌하게도 그런 점까지 잡아냈다. 시간을 뒤에서 앞으로 진행시킴에 따라 그들이 하지 말았어야 할 상황들을 자꾸 보여주며 인간이 가진 한계를 자꾸 드러낸다. 이는 어떤 의미로 보면 시각적으로 잔인한 장면보다 더욱 잔인한 연출일 것이다.

영화엔 이런 말이 나온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말은 모든 것이 막지 못했다는 말과 같다. 시간의 무자비한 흐름을 잠깐이라도 멈출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압도적인 무기력함을 선사하는 극단적인 영화다. 영화의 잔혹함이나 불쾌감을 차치하고서라도 추천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모니카 벨루치가 나온다. 일전에 [말레나]를 리뷰했었을때도 이 배우의 연기를 보며 살짝 걱정이 됐었는데 실제로 [돌이킬 수 없는]을 찍고 난 뒤에 정신과를 다녀야 했다고 한다. 정말 위대한 배우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왜 감독이 이렇게까지 표현했어야 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이건 위험하다. 감독과 배우 모두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Irreversible]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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