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7. 14. 03:02

 

장준환 감독이 연출하고

신하균, 백윤식, 황정민 등이 연기한다.

 

영화를 다 본 뒤에 이 글을 쓰며 저 포스터를 보고 있노라니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장준환 감독은 좋은 말로는 선구자이지만 나쁜 말로는 또라이임이 틀림없다. 이런 포스터를 내놓고 그런 영화를 만들다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신하균이 나쁜 외계인들에게 납치를 당해서 지구를 위해 이 한 몸 바치는 그런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포스터 부제에 '범우주적 코믹 납치극'이라고 되어 있다. 맞는 말이긴 하다. 다만 범우주적이라는 것은 이 영화의 기괴한 연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고, 코믹이라 함은 블랙코미디임을 숨기고 있는 것이며, 납치극은 일반적인 납치가 아닌 납치 및 고문, 살해 등을 은폐하고 있다. 아주 무서운 포스터다. 저렇게 해맑은 표정을 짓는 신하균은 심지어 나오지도 않는다. 당했다. 아주 제대로 당했다. 2003년에 개봉한 이후 거의 18년 정도 지났는데도 여전히 건재한 충격을 주는 이 영화가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영화는 관객에게 딱히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숨겨진 장르인 '스릴러' 답게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어주는 장면과 b급 정서를 극대화시킨 여러 알 수 없는 연출들이 합쳐져 폭풍처럼 몰아치는 2시간 속에 관객들은 꼼짝없이 당해야만 했다. 거기에 신하균과 백윤식의 엄청난 연기는 마치 [글래스]의 제임스 맥어보이와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 니로를 생각나게 했고, 탄탄한 주연들의 연기까지 받쳐져 가공할만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우리를 상당히 불편하게 한다. 장면들이 내뿜고 있는 색채와 분위기는 습한 여름날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기분을 안겨준다. 그만큼 답답하고 치열하며 정신이 없다. 게다가 배우는 신하균이다. 여름과 땀이 가장 잘 어울리는 한국 배우. 배우들의 명연기로 그 언짢은 기분은 극대화되고 팽창하더니 결국엔 터져버리고 만다. 여러 주제의식과 함께.

 

 

이 영화는 '힘'이라는 가장 큰 줄기에서 파생된 여러 이야기들을 '외계인'이라는 낯선 장치로 표현하고 있다. 역할을 잃은 아버지, 탄압하는 선생님, 괴롭히는 악동들, 가해하는 교도관, 죽어버린 여자친구, 대기업의 횡포 그리고 결국 혼수상태에 빠진 어머니까지. 주변 인물들이 끊임없이 주인공 '병구'의 세상을 하나둘씩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을 '외계인'이라고 규정짓고 무차별적인 횡포를 막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만만한가, 영화는 절대 병구가 원하는 바를 쉽게 이루지 못하게 만든다. 경찰이, 여자 친구의 돌아선 마음이, 외계인의 탈출이, 어머니의 위독함이 자꾸 병구의 발목을 잡는다. 여기서 병구는 우리네 사회의 '소시민'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동분서주 노력하지만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가만히 있었는데도 모든 게 망가지는, 애써 타인을 위한 행동을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런 소시민. 영화는 병구를 일부러 가해자로 둔갑시켜 관객들에게 섣부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한다. 병구의 비밀과 함께 주제의식을 뒤바꾸는 방법을 통해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주 훌륭한 드라마였다.

 

영화의 마지막엔 진짜 '외계인'들이 지구를 먼지쓸듯 쓸어 담아 버린다. -무슨 빔 하나 쐈는데 지구가 아예 사라져 버린다- 더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 함께. 확실히 병구가 정의한 '외계인'들이 남에게 힘을 이용해 아무렇지 않게 위해를 가하는 세상이 지속될 바에는 우주 속 작은 먼지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래도 싸다. 외계인이라는 말이 너무 '우주 속 다른 생명체'라는 말로 굳어져서 그렇지 사실 한자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의미는 고작 '다른 세계 사람'이다. 어차피 우리는 다른 세계 사람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사고방식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없으면 당연히 분쟁이 일어난다. 내 의견을 받아주지 않는데 무슨 평화가 있겠는가. 그러니 다른 세계 사람이라면 아예 애초부터 공존하지 않는 게 더 이득일 수도 있다. 마치 다른 행성의 우주 생명체가 지구에서 인류와 함께 공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가 별 탈 없이 지구에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외계인'을 작은 의미로 해석하면 이 조그마한 지구 안에 너무 많은 외계인들이 북적대며 공존하고 있다. 나한텐 쟤가 외계인이고 쟤한텐 내가 외계인이다. 그러니 당연히 싸움이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으니 무슨 의사소통을 하고 무슨 의사소통을 하겠는가. 그 싸움이 작으면 주먹질이고 크면 전쟁이다. 우리는 이 기회에 생각해봐야 한다. 이토록 조그마한 행성에서 서로를 외계인으로 지칭하며 끊임없이 싸우는 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또 이 기회에 되돌아봐야 한다. 그런 끊임없는 싸움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었는지.

 

이제 영화는 쉬워졌다. 결국 장준환 감독이 자신의 첫번째 작품을 통해 인류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아주 단순하다. 항상 등잔 밑이 어둡다.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지구를 지키라고.

 

 

 

[지구를 지켜라]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