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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버드맨,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7. 24. 03:42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연출하고

마이클 키튼, 에드워드 노튼, 엠마 스톤 등이 연기한다.

 

어려웠다. 그러나 1년 전의 내가 봤으면 어렵기는커녕 분명 이해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영화 [버드맨]은 영화인들을 위한 영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영화와 연극이 이 작품의 주된 요소로서 작용하고 있기도 하고 여러 영화들의 오마쥬가 있고 많은 레퍼런스가 사용됐기 때문이다. 1년 전의 나는 영화를 그다지 즐겨보지 않는 사람(물론 정의는 다분히 애매하다만)이었다. 극장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해외영화와 신파범벅 한국영화가 '시간이 맞으면' 보러 가던 사람이었다. 어느샌가 영화에 관심이 생겨 하나 둘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다지 잘 쓰지는 않아도 꾸준히 글을 써오고 있다. 또,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감독의 혈투, 배우의 합과 스태프의 노력, 동적인 세상과 더 동적인 관객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고 스스로 (아주 오만하게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은 영화라는 세상을 천천히 맛보고 있는 나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 작품은 특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카메라가 배우의 얼굴을 아주 가깝게 비추는 클로즈업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또한 캐릭터들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창조된 감독의 세상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최대한 가까이서 비추려고 한다. 거기에 대다수의 장면들이 롱테이크로 촬영되어 철저히 계산된 장면들이 현실성을 드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카메라들이 그렇게까지 가깝게, 현실적이게 비췄던 캐릭터들은 어떤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을까. 그건 '도약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영화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모든 주, 조연들은 다 재기를, 회복을, 복귀를, 대박을 원한다. 날아오르기를 원한다. 주인공인 '버드맨'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은 한물 간 슈퍼히어로 영화의 주연이었다. 한 때 잘 나갔으나 시간이 지나 한물 간 인물로 등장하며 브로드웨이 연극에서다시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딸인 샘(엠마 스톤)은 마약 재활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또, 같은 연극의 배우인 레슬리(나오미 와츠)는 브로드웨이 첫 데뷔를 앞둔 시점에 자존감이 많이 낮은 상태이며 톰슨의 라이벌이자 새롭게 등장한 마이크 샤이너(에드워드 노튼)는 신체적 콤플렉스를 뒤로 하고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싶어 한다. 그 외에도 톰슨의 매니저이자 친구인 제이크(잭 갤리퍼내키스)는 이번 연극을 통해 대박을 노리고 있고 톰슨의 전처인 실비아는 교편을 다시 잡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둥 모든 캐릭터들은 불완전한 상황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아니 그것보다 더 앞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물론 주인공인 '버드맨' 리건 톰슨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주변인들도 같은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 몰입도는 배가 되어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하나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 [버드맨]에서 위와 같은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도약'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 영화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인지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마치 톰슨이 염력을 쓰면서도 직접 물건을 던지기도 하는 것과 날 수 있으면서도 택시를 타는 것처럼. 그래서 그 안의 캐릭터들이 '도약'을 성공적으로 마쳤는지에 대해서도 불분명하다. 톰슨이 정말로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는지, 친구인 제이크가 톰슨의 재기로 새로운 길에 눈을 떴는지, 딸인 샘이 아빠와의 사이가 원만해졌는지 결국에는 아무도 모른다. 애매함 투성이다. 또, 누구는 톰슨이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을 것이라 믿고, 누구는 진짜 버드맨이 되어 날게 되었을 것이라 믿고, 누구는 모든 게 톰슨의 상상이라고 믿는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나름의 해석을 맡겼다. 개개인이 살아온 방식과 각자의 가치관에 맡겼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은 마치 '도약'하는 방법도 스스로 생각하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 자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극이며 아주 커다란 은유인 것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 누구는 또 다른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 수도 있고, 누구는 직업적인 성취를, 누구는 생활적인 안정을, 누구는 개인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그 모두는 기본적으로 다 다르고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견해도 다 다르다. 하지만 어디에나 돌파구는 있는 법이다. 조금 늦게 소개하게 됐지만 영화의 부제는 '예상치 못한 무지의 미덕'이다. 주인공인 톰슨은 연극의 마지막에서 예상치 못한 무지로 미덕을 보여줬다. 그건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톰슨의 절박한 행동에서 빚어졌다. 결국 그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뚫었다. 아무리 예민하게 상대 배우의 연기를 지적하고 자신의 명성에 과하게 신경 쓴들 모든 걸 포기한 심정으로 내디뎠던 그 한 발자국이 그에게 '도약'을 이끌어내는 매개체였던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이는 애매하게 종결된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현실적인 표현이다. 위에서 설명한 현실적인 표현들은 캐릭터를 관찰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에 '나'를 투영시키게 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만든다. 그러니 이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으면서 답을 찾으라고 말하는 이상한 선생님의 말씀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선생님의 개똥 같았던 말은 꼭 졸업한 후에 불현듯 생각나 우리를 사념에 잠기게 하곤 한다. 이 영화는 그런 맥락에서 아주 철학적이다.

 

연기가 훌륭하다 못해 뛰어난 영화다. 마이클 키튼과 에드워드 노튼, 그리고 엠마 스톤의 연기는 클로즈업 기법 덕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름살과 속눈썹까지 열연하는 듯했다. 볼거리, 즐길거리, 생각할 거리가 넘치는 영화다. 배우의 호연은 기본이고 배우와 궁합이 좋은 대사들, 흡입력이 좋은 카메라 워킹과 영화 미술, 그리고 열린 결말까지. 

 

우리는 여전히 자신이 누군지 찾는 여행을 하고 있다. 그 길의 중간엔 납치를 당할 수도 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 혹은 뜨거운 사막에서 모래폭풍을 만날 수도 있고 얼어붙은 땅에서 휘황찬란한 오로라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나도 계속 나아가야만 긴 여정이 끝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모두 각자의 도약법을 가지는 게 어떨까.

 

 

 

[Birdman]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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