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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제임스 L. 브룩스]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7. 13. 02:55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이 연출하고

잭 니콜슨, 헬렌 헌트, 그레그 키니어 등이 연기한다.

 

제목을 참 잘 지었다.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지랄발광 17세], [에브리띵 유브 갓 하우 두유 노우], [라이딩 위드 보이즈] 등 다분히 직설적인 네이밍 센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영화 타이틀은 나쁘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순박하고 꾸미지 않은듯 한 친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그것은 제목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들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마 이 감독의 영화들은 모두 'HUMANITY', 즉 인류애라는 주제의식을 장착하고 있으리라 감히 짐작한다.

 

영화는 실제를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다. 즉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여러 방법을 통해 감독의 손을 거쳐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인데 이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에서 보여준 세 인물, 유돌(잭 니콜슨), 캐롤(헬렌 헌트), 사이먼(그레그 키니어)은 그냥 지금도 저기 뉴욕 어딘가에서 투닥거리고 있을것 같다. 그 말인 즉슨 그만큼 캐릭터는 입체적이었고 연기는 훌륭했다는 것이다. [샤이닝]이후 잭 니콜슨의 두 번째 영화인데, 이 배우는 연기가 아닌듯 연기한다. 잭이 연기한 소설가 '유돌'은 어떤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 자체였다. [밀양]의 전도연을 보고 이런 평을 내렸던 것 같은데, 그 때와 같은 기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위대한 배우다. 연기라는 것은 이렇게 하는게 아닐까. 캐롤과 사이먼 역을 맡은 헬렌 헌트와 그래그 키니어의 연기도 잭 못지 않게 훌륭했다. 마치 왕을 보좌하는 좌의정 우의정 같은 느낌이랄까. -심지어 이 영화에선 강아지마저 연기를 잘 한다- 이 영화로 잭 니콜슨과 헬렌 헌트는 남우, 여우 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했다고 한다. 연기력은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는 관계에 대한 영화다. 사실 영화판에 있어서 '관계'는 뻔한 소재긴 하다. 그도 그럴것이 인간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동물이기에 그런 부분을 묘사하지 않고는 어떠한 현실성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관계가 부재된 사회를 그릴려면 로봇의 삶을 그린 영화여야 한다. 인간은 예측불허한 각자만의 개성과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즐겁거나 슬픈 일이 있는 것이다. 즐겁거나 슬픈 일이 있어야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속될 수 있다. 즐겁거나 슬픈 일은 인간들에게서부터 나오지만 반대로 그것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유지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타인이 없으면 즐겁거나 슬플 수 없고, 그것은 곧 나의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것임을.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모두가 각자의 더 나은 관계를 위해 골똘히 고민하고 열렬히 투쟁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연 캐릭터들도 당연히 그 굴레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유돌은 강박증이라는 디스어드밴티지까지 갖고 세상 모든 것들과의 관계에서 고난을 겪고 있고, 캐롤은 아들을 키우고 있는 홀어머니이자 교육을 받지 않은 식당 종업원이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책임져줬으면 하는 소박한 욕망도 가지고 있다. 둘은 상극이다. 유돌은 남에게 상처만 주는 유아독존이고, 캐롤은 상처도 잘 받고 상황도 썩 좋지 않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의 가시에 찔리며 피를 흘리는데도 자꾸 자꾸 다가간다. 왜일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다르지 않을까?"하는 기대 속에서, "이 사람은 혹시?"하는 기대 속에서 서로를 투영했기 때문이다.

 

유돌은 다가오는 모든 이들에게 나쁜 말을 뱉는다. 종업원에게도, 옆집 남자에게도, 옆집 남자의 애인에게도, 심지어 자신의 거래처 직원에게도. 유돌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병을 가지고 있는 것을. 그리고 분명 그 병으로 인해 사람들이 떠나가는 아픔을 숱하게 겪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다가오지도 않고 상처도 주지 않는 음악과 책속에서만 살고 있다.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캐롤은 어떨까. 캐롤은 생후 6개월부터 아팠던 자신의 아들 스펜서에게 모든 신경을 쏟아붓고 있어서 고작 하룻밤 풋사랑도 제대로 성사하지 못한다. 남자들은 그녀의 너무도 현실적인 삶에 질려 떠나가곤 했다. 몇 번의 차임과 숱한 무시, 자괴감 속에서 그녀도 타인에 대한 '기대'를 잃었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는다. 실망을 하지 않으면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오지 않을 것이고 딱히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일종의 방어기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은 서로에게 다른 이들은 볼 수 없는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둘 다 강하게 부정했다. "어차피 이 사람도 똑같을 텐데." 그러나 겉으로는 그렇게 표현하고 있어도 마음 속 아주 작은 공간에는 '기대'라는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니까.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인간은 매우 똑똑한 동물이라 한 번 경험한 감정은 완벽하게 지울 수 없다. 잊고 잠깐은 살 수는 있어도 완벽히 잊을 순 없다. 금연은 없고 절연만 있는 것처럼. 두 캐릭터는 의심을 확신으로, 불안을 안정으로 바꾸기 위해 자꾸 서로의 가시에 찔리는데도 다가간다. 지금까지 숱한 이별과 아픔을 겪었을 텐데도 결국 또다시 도전한다. 기대하는 것이다. 행복은 기대가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찾아온다는 걸 아니까.

 

뭐 끝내 둘은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으레 로코가 그렇듯이. 그러나 당연해 보이는 결말과 달리 영화가 우리에게 꽤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우리는 가끔 서로의 중요함에 대해 잊는다. 어느 시대에나 그랬다. 타인은 지옥이고 혼자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마인드를 끝까지 고수했다면 지구상의 인류는 이렇게 왕성하게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는 것을.

 

 

 

[As Good As It Gets]

서사
연출 ★☆☆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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