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야 미노루의 일곱 번째 작품.
후루야 미노루의 일곱 번째 만화. [낮비]는 여섯 권이다. [시가테라] 처럼 나름 긴 편인데, 읽는 건 곱절로 버겁다. 만화는 내내 우울하다. 인물은 대부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해 도피처를 정당화하는 패배자들이고, 여전히 글래머 미녀.. 들이 찌질남들을 좋아하지만 그 알콩달콩한 심리묘사는 이전작들에 비해 현저히 적다. 물론 이런 것들을 차치하고 나서라도 [낮비]에는 그냥 사이코 연쇄살인마가 내내 나온다.
다들 그의 만화가 자기복제가 심하다고 하길래 어느 정도인가 싶었는데, 매 작품 모두 설정이 비슷할 뿐 전개는 판이하다. 나중에 후루야 미노루 특집으로 정리하겠지만, [두더지], [시가테라], [심해어]가 드라마 장르라고 한다면, [낮비]는 스릴러에 가깝다. 보통 소시민스러운 찐따남이 주인공이었던 이전작들과 달리 본작의 진정한 주인공은 소시오패스 살인마다. 연쇄살인마인 모리타는 6권 동안 10명을 죽인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살인범 중 한 명인 강호순이 10명을 연쇄살인했다. 그런데 강호순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년간 범행을 벌였고, 모리타는 7년 전에 죽였던 카와시마를 제외하면 단 며칠 만에 9명을 살해했다. 당연히 현실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만큼 본작의 분위기는 어둡고 충격적이다. 다이나믹함과 스릴은 후루야 미노루 작품들 중 원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다지 권유하고 싶지는.. 않다.
따라서 [낮비]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사이코패스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
짧고 굵게 보고 싶은 사람
[낮비]는 주인공이 세 명이다. 가장 처음 등장하는 오카다, 오카다의 동료 직원 안도, 그리고 앞서 말한 (사이코)모리타. 사실 오카다와 안도는 후루야 미노루식 전개의 희생양에 불과하다. 글래머 미녀..와 사랑에 빠지고 다양한 사건을 만나 결국은 나름 나쁘지 않은 엔딩을 맞는 그런 전개. 우리가 [시가테라]에서도 봤고, [심해어]에서도 봤던 그 전개. 그래서 오카다와 안도는 딱히 소개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고, 그 때문에 오히려 모리타의 행동과 그들에게 미칠 영향을 노심초사 지켜보게 된다.
따라서 독자는 모리타의 심리 묘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모리타는 단단히 미친놈이다. 자신의 살인 욕구를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재능" 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심지어 자기가 이런 살인마가 되어버린 것은 멋대로 일어난 거라며 재수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살인 욕구를 참을 수 있는 놈은 참을 수 있으니까 참는 것이며, 자신은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하는 모리타를 보며 기가 차는 한편, 이건 어쩌면 인간의 본성 한켠에 있는 어떤 심리가 극단적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심리는 "합리화"다. 물론 다들 어느 정도는 하고 살아야 한다. 합리화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지 않을 방도가 없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합리화 강도는 낮다. "이 정도면 됐어" 혹은 "더 안 해도 돼" 정도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로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라고 하지 않는다. 만약 그랬을 경우 진지하게 하루를 돌아보고, 문제점을 찾고, 위기감을 깨닫고 변하려고 한다. 더 이상 합리가 통하지 않는 영역에 들어왔음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것이다.
모리타는 그 단계를 많이도 지나쳐 왔다. 그 인간성을 상실한 첫날, 모리타는 자신이 평범하지 않음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죽고 싶을 정도로 속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때가 살인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이었다. 그때 자신을 대면하여 문제점을 찾고 변하려고 용기를 냈어야 그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뻔하게도 모리타는 변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팽개치고 자신을 괴롭히던 키와사키를 죽인다. 자기는 이렇게 된 인간이니 어쩔 수 없다는 그 지독한 합리화는 그 뒤로 수많은 비극을 낳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모리타가 줄곧 평범한 삶을 원했다는 것이다. 본작의 말미에서 처음으로 드러나는 모리타의 환각(이자 속마음)에 모리타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자신의 행동을 후회해 왔는지 알 수 있다.
그의 꿈속에서 등장한 그는 뇌가 반의반쯤 떨어져 나간 상태였는데, 왜 뇌 조각을 붙이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의사의 질문에 다시 붙여도 계속 떨어진다고 답한다. 그 조각은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조각이었다. 그러니까 모리타가 인간성을 상실한 첫날, 놓아버린 바로 그 인간성인 것이다. 다른 말로 양심, 속죄, 혹은 용기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물론 그 조각을 다시 붙인다고 10명을 죽인 살인마가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너무 쉽다. 그러나 분명 기회는 주어진다.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한, 교도소 내에서라도 올바르게 살 기회는 생긴다. 심지어 여기에서는 그 기회가 몇 퍼센트로 성공하는지도 알려준다.
그리고 모리타는 정말 어리석게도 그 20%에 또다시 무너진다.
이 부분이 [낮비]의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다. 20%라는 말을 듣자마자 자신은 글렀다며, 아마 뇌 조각은 다시 붙지 않을 거라며, 사람들은 내가 죽기만을 바랄 거라며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은 합리화의 구덩이에서 허우적대는 나약한 인간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내 경찰의 부름에 잠에서 깬 모리타는 자기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본작의 제목인 [낮비]는 더 이상 도망칠 곳도, 힘도 없어진 모리타가 공원 벤치에 누워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고, 앞으로의 삶에서도 변하지 않을 자신을 마주하며 흘린 눈물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모리타는 만화의 주인공이지만, 현실의 우리처럼 선택한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도만 다르지 끝없이 합리화하고 쉽게 만족하며 눈 감은 채 현실을 외면한다. 어쩌면 후루야 미노루는 우리가 사이코패스 살인범이 내리는 선택의 합리화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소 극단적인(?) 방법으로) 모종의 교훈을 얻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나도 다른 이유들을 방패삼아 포스팅을 미루지 말고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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