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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 [조각가, 스콧 맥클라우드] 만화리뷰

by jundoll 2021. 7. 20. 20:31

 

 

스콧 맥클라우드 작가가 집필했고

예술가의 삶에 대해 다루는 그래픽 노블이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이 책은 무려 3년 전부터 본가의 내 방 책장에 꽂혀 있었다. 당시에 신문에서 어떤 칼럼을 읽은 아버지께서 이 작품에 흥미가 생겨 직접 서점에서 구매하셨고 정말 재밌다며 연거푸 읽어보라고 하셨었다. 당시에 바쁘기도 했고 책이 너무 두꺼운지라 딱히 마음이 가지 않아서 읽지 않았고 곧 나는 자취를 하게 되었다. 당연히 책은 본가에 있기 때문에 읽을수도 없었거니와 사실 기억 속에서 아예 잊힌 상태였다. 그런데 우연히 친구의 집에서 놀다가 [만화의 이해]('도서' 카테고리에 리뷰를 적어 놓았다)라는 교양도서를 추천받았고 단숨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을 단숨에 다 읽은 후 작가인 스콧 맥클라우드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서 검색을 하는 순간, 이게 웬걸 책장에 박혀있던 그 만화책을 집필한 작가가 아니던가.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고 세상 돌아가는 일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우리 아버지는 운명론자다. 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된다는 믿음을 갖고 계시다. 그래서 관철시키려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는 성격이시다. 아버지의 시선으로 보면 나는 이 [조각가]를 어떻게든 읽게 될 운명이었나 보다. 절대 읽을 것 같지 않던, 왠지 모르게 손이 가지 않던 이 책은 어머니가 몸보신시켜준다고 만들어주신 백숙을 먹으러 본가에 다녀오는 김에 나와 함께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참 인생 모른다. 

 

사담이 길었지만 책은 정말 재밌다. 아버지는 이 책을 추천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영화로 잘만 만들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의미는 단숨에 이해된다. 이 만화는 어떤 의미로 이미 영화다. 영화는 거칠게 말하면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조각가]는 지면에 복사된 만화이기는 하나 그림과 그림 사이를 연결하는 방식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의식적인 장면의 움직임을 설득당하게 되고, 여러 실험적인 연출을 통해 높은 집중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거대한 만화책이지만 작가의 표현기법이나 연출기법에 홀려서 페이지를 넘기는 데는 아무런 지루함이 없다. 게다가 대사는 적고 그림이 많아서 뭔가를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부담이 적어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작품은 여러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예술의 모순, 예술가의 모순, 관계의 모순, 사람과 사랑,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 등.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고민과 예술가가 마주하는 철학적인 고민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래서 예술쪽을 공부하고 있다거나 관심이 많다거나 종사자인 경우에는 더 몰입할 수 있다. 물론 나도 예술과 떨어트릴 수 없는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진정한 예술은 무엇인지, 예술과 비예술의 차이는 무엇인지, 나에게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세상 사람들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만화였다. 

 

어려운 주제다. 당장 디자인과 아트를 구분짓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 애초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작가와 작품들이 많기도 하다. 예술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다른 실용적 분야보다 더 화두에 오른다. 쓸모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쓸모에 대해서만 논의하면 된다. 그것은 아주 쉽고 확실하다. 더 쓸모 있는 것이 이기는 세상이니까. 그러나 쓸모없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온갖 의미와 배경, 상황과 사람을 갖다 붙이기 시작한다. 쓸모가 없기 때문에 그것의 존재 이유를 확정 지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것이 돈이 되든 사상이 되든 무언가 '내 삶에 도움이 될 만한' 것으로 바뀌니까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술'을 있는 그대로의 '예술'로는 볼 수 없다. 존재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미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쓸모없는 것들이 만연한 아트의 세계에서는 어떨 때는 쓸모 있는 게 이기고 어떨 때는 쓸모없는 게 이긴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의견이 혼재하는, 어떤 의미론 가장 어려운 분야다. 아직도 사람들은 누군가의 작품이 나오면 그것의 의미를 찾기 위해 토론하고 싸운다. 아무리 대충 만든 작품이라 한들 싸우라고 만든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이 만화의 주인공도 이와 유사한 고뇌를 겪는다. 내 작품은 분명 그 자체로 훌륭한데 비평가들은 자꾸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사람들을 홀릴 강력한 한방을 보여주길 원한다. 좌절을 거듭하던 주인공은 끝내 목숨을 대가로 한 초월적 능력을 선택하며 짧은 수명만 남게 된다. 그러나 실패는 계속된다.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틀어지고 사랑은 자꾸 망설이게 된다. 세상이 자신의 작품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주인공은 이 시스템 자체를 바꿔 버리려는 계획을 세운다.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그래서 결국엔 자신이 원하던 명성과 사랑 모두를 쟁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젠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것이다. 능력은 얻을 수 있다. 그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무엇을 희생하야 하든 분명히 누구나 세상이 인정하는 능력을 얻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은 잔인하게도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정상적으로 부여된다. 몇 년을 갈고닦고, 더 깊이 성찰하고, 훌륭한 관계를 쌓은 사람에게만 부여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주인공은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심적으로도 불안했고 주변인들의 시선도 바꾸지 못했었다. 작품은 더 이상 만들고 있지 않았고 어느 누가 봐도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으며 큰 의미 없는 제약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 분수보다 더 높은 이상향을 원했다. 세상에 내 이름을 알리고 싶어 했고 모두가 나를 떠받들길 바랬다. 그래서 수명을 깎으면서 능력을 얻었고 결국엔 원하는 것을 쟁취했다. 사람들은 주인공의 이름을 되뇔 것이고 희대의 조각가로 불릴 것이다. 그러나 이젠 세상에 없다. 그것이 진정 아름다웠을지언정 끝내 허무한 결말을 맞은 것이다.

 

심지어 이건 만화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돌아가신 큰할아버지의 모습을 한 초월체가 나에게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손을 주지 않는다. 아무런 의심 없이 타인을 도와주는 멋진 사람들도 거의 없다. 그러니 도둑놈 심보를 버려야 한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하면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천천히 파도에 올라탈 준비를 해야 한다. 서핑을 하는 서퍼들은 자기들만의 불문율이 있다. 파도와 가장 가까운 서퍼가 그 파도를 독식하는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한 서퍼가 제대로 파도를 타려면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무작정 남의 파도에 올라타면 다른 사람과 부딪혀 부상을 입거나 따가운 눈초리를 받게 되고 눈 밖에 나게 된다. 오늘 서핑에서 내 파도는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와 가장 가깝게 오는 파도, 내 파도에 잘 올라타면 그 순간만큼은 그 해변에서 가장 멋진 서퍼가 될 수 있다. 그게 이치고, 그게 세상 돌아가는 꼴이다. 내 아버지의 입버릇처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만화 얘기 하려다 별 얘기 다했다. 만화는 비싸다. 25000원인가 한다. 그런데 아버지를 잘 둔 덕에 나는 공짜로 읽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해놓고 나는 공짜로 읽었다. 아니 사실 공짜는 아니다. 아버지께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니까 ㅋㅋ. 이 책에게 다시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준 친구와 언제나 같은 행성에서 나를 반겨줄 아버지께 큰 감사를 보낸다.

 

 

 

[The Sculptor]

서사 ★★★★☆
연출 ★★★★★
대사 ★★★★☆
작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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