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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 [에반게리온, 안노 히데아키] 애니리뷰

by jundoll 2021. 6. 29. 15:33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연출하고

가이낙스에서 제작했다.

 

전공과 관심사가 거의 비슷한 친구에게 추천받은 20세기 일본 서브컬처 걸작 중 하나인 에반게리온이다. (대신 나는 친구에게 스킨스 시리즈를 추천해줬다. 본격 우울, 다크 콘텐츠 맞교환.) 1995년에 방영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시청했고, 이는 현재 NETFLIX에서 훌륭한 자막과 함께 서비스 중이어서 어렵지 않게 시청할 수 있다. 

 

 

무릎 사이 머리 넣고 축 쳐져있기 달인, 주인공 이카리 신지.

가정 환경이 그리 녹록지 않아 항상 불안해하고 외로워한다.

모든 사건의 중심이지만.. 약간 매를 벌고 화를 자초하는 스타일.

이젠 싫어..

 

애니메이션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도 어디선가 한 번쯤 본 아스카.

오렌지 브라운 머리에 새침한 표정, 당찬 말투가 트레이드 마크다.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만 내면적 성장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맨날 신지한테 뭐라고 한다. 위 사진에도 쭈그려 있음.

 

사람과의 대화보다 혼자말을 더 많이 하는 인조인간 스타일 레이.

괴랄한 설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을 줄 수가 없는 느낌.

어찌 보면 가장 불쌍하고 측은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캐릭터.

 

캐릭터 설명을 두 줄만 더 쓰면 바로 스포일러가 될 것 같다.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이 작품은 그만큼 난해하고, 또 심층적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은 기계인지 인공지능인지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 이상한 물체를 조종하는 어린아이들의 성장기지만,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은유와 메시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메카, SF, 성장물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난해한 작품의 주된 메시지는 단 한 줄로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데, 이는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25화, 26화에서 나오는 대사로 유추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이카리 신지는 끝없는 자책과 성찰을 통해 모든 이의 생각과 감정이 통일되어 어떠한 고통도 없는 삶보다는 서로의 생각과 처한 현실이 달라 불편한 마찰이 반복되지만 그 이면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존재하는 진짜 세상에서 사는 삶을 선택한다. 이는 곧 '소외된 자들이여 어렵겠지만 부딪히며 나아가라'라는 메시지가 된다. 좋은 메시지다. 당시 일본의 상황과도 적절히 맞물려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구상한 감독의 철학과 통찰이 대단하다. 

 

사실 애니메이션을 쭉 시청하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연출이다. 거의 일분동안 아무 움직임 없이도 캐릭터 간의 사이를 표현하는 시퀀스나 여러 장의 그림이나 실사사진, 단순한 패턴들을 고속 편집하여 불안하고 겁먹은 내면의 혼돈을 표현한 시퀀스 등 여러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장면들은 미학적인 부분에서 가히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락밴드 쏜애플의 [서울] 뮤직비디오에서도 이런 음울하고 센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아마 이런 류의 영상디자인 역사를 따라 올라가면 에반게리온이 떡하니 버티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장하는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심금을 울리는 대사들이 자주 연출된다. 특히 “그러다 알게 되겠지. 어른이 된다는 건 가까워지든가 멀어지든가 하는 것을 반복해서, 서로 그다지 상처 입지 않고 사는 거리를 찾아낸다는 것을.” 같은 대사는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성숙해지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용기를 내지 못한 사람이었다. 사람대 사람 집단대 집단의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요즘 시대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문장이 아닐까. 또, "싫어하는 일을 피하는 것이 뭐가 나빠." 같은 대사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아찔한 맹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좋은 문장과 단어, 또한 그것을 연출하는 방법과 성우의 목소리가 삼위일체를 이루며 훌륭한 경험을 안겨준다.

 

그러나..

 

마지막 박수갈채 장면은.. 마지막 25, 26화 연출과 전개는.. 어이가 없다 못해 실소가 터져 나왔다. 무슨 한 방이 있겠지.. 마지막엔 뭔가 보여주겠지.. 하며 기다린 내 마음은 공들여 쌓은 탑이 작은 바람 한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듯 허탈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변을 본 뒤 닦지 않은 찝찝한 기분과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은 얼얼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메시지는 분명 전달했지만 작품이 완성되지 않은 느낌이랄까. 사이비 종교가 그럴듯한 무논리 교리를 침 튀기며 설파하는 느낌이랄까.

 

여러 사정이 있었다고 하는 의견과 그게 진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의견이 서로의 말이 맞다며 열을 올리고 있지만 둘중 뭐가 되었든 간에 나온 건 나온 거다. 아무리 이유를 대도 공식적인 TV판 완결은 이렇게 방영된 것이다. 작가가 그렇다고 하는데 독자인 나는 그저 받아들여야지 하지 않겠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세상에 큰 발자국을 남긴 명작에도 당연히 이견은 있다. 사람은 다 다르니까, 쟤가 재밌어도 나는 재미없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명작은 명작이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내가 아닌 다른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니까. 세상 사람들이 그러자고 약속한 것이니까. 

 

오늘 아주 거대한 단어를 배웠다.

 

 

[EVANGELION]

서사 ★★★
연출 ★★★★★
대사 ★★★★
작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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