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리베르 라셰 감독이 연출하고 세르지 로페즈, 브루노 누녜즈 등이 연기한다. 2025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제목 '시라트(Sirât)'는 이슬람 교리에서 심판의 날, 지옥 위에 놓인다는 다리를 뜻한다.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롭다는 그 다리. 영화는 제목부터 인물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결코 평탄치 않음을, 발을 헛디디면 곧바로 나락임을 건조하게 경고하고 있다.
아래에서부터 스포일러 주의

모로코 남부의 황량한 사막, 거대한 스피커가 뿜어내는 테크노 비트 속에 유랑자들처럼 모여든 레이버(Raver)들이 있다. 주인공 루이스(세르지 로페즈)는 어린 아들 에스테반을 데리고 이 소음과 환각의 도가니를 헤맨다. 실종된 딸 '마르'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딸의 흔적은 없고, 그들은 "국경 근처에서 더 큰 파티가 열린다"는 뜬소문을 쫓아 유럽 출신의 레이버 무리에 합류한다. 그때, 세계 3차 대전에 버금가는 글로벌 위기와 무력 충돌이 발생하며 군대가 이들을 쫓기 시작한다. 결국 일행은 낡은 밴을 몰고 사막 깊숙한 곳으로 도주하지만, 그들이 당도한 곳은 지뢰가 매설된 죽음의 땅이다. 딸을 찾겠다는 아버지의 집념은 이제 지뢰밭이라는 물리적 '시라트' 위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로 변질된다.

포스터를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의도적인 '오독'인가 싶은 기이한 타이포그래피다. 폰트의 웨이트(Weight)가 지나치게 두껍다. Heavy나 Black 수준의 육중한 서체는 '머리카락보다 가는 다리'라는 시라트의 어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오히려 Hairline이나 Ultra Light 계열을 사용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움을 시각화했어야 했다. 물론, 영화 내내 심장을 타격하는 육중한 테크노 베이스나 사막의 압도적인 질감을 표현하려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둔탁한 폰트는 영화가 가진 날카로운 서스펜스를 뭉개버렸다. 의미보다 덩어리를 택한 디자인은 메시지를 배반한다.

할리우드의 매끄러운 문법따위는 기대하지 마라. 라셰 감독은 거친 컷 연결과 불친절한 생략으로 관객을 사막 한가운데 유기한다. 초반부 레이브 파티의 몽환적인 묘사는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지만, 후반부 지뢰밭 시퀀스로 넘어가며 장르는 순식간에 서스펜스 스릴러로 돌변한다. 딸을 찾는 드라마인 줄 알았던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충격적인 전개다. 물론 개연성을 중시하는 관객에겐 뜬금없는 전쟁 발발이나 지뢰밭 설정이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적 낯섦'이 주는 공포야말로 감독이 의도한 바다. 예측 불가능한 죽음의 공포,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완성도다.

루이스에게 '딸을 찾는다'는 목적은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명분이자 맹목적인 관성이다. 그러나 지뢰밭이라는 극한의 상황은 그 고상한 목적을 비웃는다. 내 발밑이 터져나갈지 모르는 공포 앞에서, 타인(딸)을 향한 구원의 의지는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 영화는 묻는다. 생존 본능이라는 비루한 육신의 욕망 앞에서 당신의 숭고한 목적은 안녕한가. 결국 인간은 '시라트'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존재일 뿐이다. 구원은 아득하고, 발밑의 지옥은 너무도 가깝다.
테크노 비트와 지뢰 폭발음이 기이하게 공명하는 올해의 문제작. 맹목적인 믿음이 어떻게 생존 본능 앞에 발가벗겨지는지 목격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보고 나면 입안에 모래가 씹히는 듯 씁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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