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HBO의 [왕좌의 게임]과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뉴비 유입을 위한 간단한 안내이다. 앞서 같은 주제의 포스팅을 두 번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 아마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시즌2가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포스팅을 적는 지금 기준으로 마지막회가 상영되고 있다. [왕좌의 게임]이나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시즌 마지막회는 항상 충격적인 피날레를 선사하기 때문에 모든 팬들이 상당히 기대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의 포스팅을 얼른 마친 뒤에 본격적으로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 1, 2를 리뷰할 생각이다.
여튼 이번에도 앞선 포스팅 (상), (중)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두 드라마의 시청 포인트에 대해 설파하고, 인구 유입을 끌어내고자 한다.
〈판타지성에 관하여〉
[왕좌의 게임]과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모두 판타지 소설인 [얼음과 불의 노래](이하 얼불노)를 바탕으로 한다. 판타지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동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떨어졌다기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아예 없는, 허구적이고 환상적이며 동화적이고 신화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판타지 장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허구적 설정을 가진 모든 작품에 해당되는 것이 옳지만, 대중들은 보통 판타지라고 하면 서양 판타지를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해리포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트와일라잇 시리즈] 등이 있다. 이 대표작들은 판타지성, 즉 "현실과 동떨어진 정도"가 꽤 높다. 해리포터는 마법사가 무더기로 나오고, 반지의 제왕은 나무가 걸어다닌다. 나니아 연대기는 사자가 말을 하고, 트와일라잇은 늑대인간과 뱀파이어가 전쟁을 한다. 애초에 우리가 사는 세계와 구성 자체가, 기반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설정이 주는 허구적 만족도가 높기 때문에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어린시절에 이런 판타지물을 정말 좋아했다. 엘프나 드워프, 마법사와 머글, 늑대인간과 뱀파이어 등 종족 별로 가지고 있는 특징, 상이한 전투방식, 서로 화해하거나 증오하는 관계 설정 같은 것들이 참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마 성인이 되는 순간부터 혹은 군대에서 전역한 순간부터 실제 내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장르가 재밌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특히 PTA의 영화나 코엔 형제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삶이 가진 찐득함(?) 애잔함(?) 솔직함(?) 같은 것들이 더 와닿았다. 시리즈로 따지면 [소프라노스]나 [브레이킹 배드]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도 마블 영화는 [어벤져스 : 엔드게임]까지 계속 챙겨 봤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현실과 닿아있는 마블이었기 때문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아이언맨 시리즈] 등 마블의 전성기를 이끈 걸출한 시리즈들은 결코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히어로가 가지는 고뇌, 히어로 세계관의 부조리함, 엇갈린 동료와 친구, 배신과 화합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면서 캐릭터의 관계와 서사를 쌓아올렸고, 그 마땅한 인간적 이유를 가진 히어로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불가해적이고 우주적인 존재를 물리치는 그 흐름은 거의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마블은 멀티버스다 뭐다 하면서 시간 선을 꼬고 얼토당토 않은 설정을 가지고 있거나 "애초에 그냥" 초인이기 때문에 이전보다 판타지성이 너무 강해진 느낌이 든다. 물론 내가 나이가 들어 이전처럼 순수한 눈으로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요즘 마블 영화들의 평가가 전반적으로 낮은 것을 보면 많은 수의 대중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까놓고 말해 나는 이제 유치뽕짝한 판타지물을 보지 않는다. 차라리 판타지를 볼거면 아예 애니메이션을 본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는 애초에 캐릭터들이 판타지적으로 생겨서 판타지적인 요소가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래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실사화가 끔찍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비슷한 이유로 현실의 배우가 나오는 판타지물은 이제 취향에 안 맞는다. 대놓고 판타지스러운건 이제 조금 유치해진, 나 같은 사람이 아마 있을 것이다. 이에 동의한다면 이제 시작할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이제 잡설을 멈추고 본론을 이야기해보자.
[왕좌의 게임]과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분명 판타지 소설 [얼불노]를 베이스로 한 TV시리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판타지성이 짙지 않다! 물론 두 드라마에는 무지막지하게 강한 좀비(화이트 워커)와 징그럽게 생긴 정령들(숲의 아이들), 결정적으로 드래곤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판타지성이 짙지 않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적어서 판타지성이 짙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판타지적인 요소는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그보다 현실성이 더 강하기 때문에 판타지성이 짙지 않다. 특히 가장 현실성이 짙게 나타나는 부분은 필히 캐릭터가 죽는 방식일 것이다.
[왕좌의 게임]은 주인공 없는 드라마로 유명하다.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한국 시청자들에겐 너무나도 당혹스러운 전개 방식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주연 캐릭터가 죽는 일이란 정말 상상조차 못하는 일이다. 사실상 주연 배우 하나로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물론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는 시리즈가 아닌 단편이기에 그래야만 하지만, [왕좌의 게임]은 그 공식에 따르지 않는다. 절대 좋아하는 캐릭터를 고르면 안된다. 당신이 좋아하는 순간 죽는다. 진짜 거짓말이 아니다. 시즌제 드라마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메인이 되는 캐릭터를 한 시즌 4-5쯤에 서서히 떠오르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걔가 죽지 않는다는 보장은 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또 슬프게도 이게 현실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죽는 순간 그 헛된 가설은 으스러진다. 그 누구도 내가 내일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못하는 게 인간이며, 그 바램을 철저히 무시하는 게 현실이다.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하고 비극을 예방할 수 없다. 빚을 갚기 위해 10년 동안 뼈빠지게 일 한 사람이 집에 돌아오던 길에 교통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되는 그게 현실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작가가 죽이거나 살릴 수 있어 스릴과 감동을 위해 그 정도를 조절하지만, 현실에 그런 조절은 없다. 그저 순식간이다. 그리고 [왕좌의 게임]에선 진짜 한순간에 죽는다. 지금부터 내 기준으로 정말 충격적이었던 죽음에 대해 잠깐 소개하고 싶은데, 이는 엄청난 스포일러다. [왕좌의 게임]은 스포일러를 당하는 순간 재미가 없어진다. 그러니 재밌게 보고 싶다면 이쯤에서 포스팅을 그만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럼 왕겜 보러 가야겠지?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밑에서 계속..
스포일러 주의
아마 [왕좌의 게임]을 어느 정도 본 사람이라면 내가 지금부터 나열할 캐릭터를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들의 죽음에 모든 시청자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1. 에다드 스타크(네드 스타크)
시즌 1의 거의 모든 장면에 가장 오랜 시간동안 나오는 캐릭터다. 한국 드라마를 주로 시청하던 사람이 보면 당연히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이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도 무려 숀 빈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숀 빈은 사망 전문 배우(?)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작품에서 많은 죽음을 당했지만 설마 여기서도 그럴까 싶었다. 그리고 드라마의 연출상 그 명예롭던 에다드 스타크가 자신의 딸들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무려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살려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거 없다. 그냥 죽는다. 그것도 목이 댕겅 잘려 죽는다. 에다드 스타크는 북부 전체를 다스리는 대가문의 영주이고, 왕인 로버트 바라테온의 절친한 친구로서 상당히 높은 지위와 명성을 가진 인물인데도, 왕실의 비밀을 캐내려다가 서세이에게 역관광을 당해 조프리의 명령 하에 참수당한다. 주인공 없는 드라마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2. 롭 스타크
롭 스타크와 그의 아내가 당한 "피의 결혼식"은 [왕좌의 게임] 시즌 3의 피날레로서 그 충격은 거의 모든 팬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줄 정도로, 해당 장면의 리액션 영상이 상당히 많다. 링크를 클릭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으시라. 롭은 조프리에게 참수당한 자신의 아빠, 에다드 스타크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리고 잡혀간 자신의 동생들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북부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전쟁의 확고한 승리를 위해 프레이 가와 정략결혼을 하기로 했으나, 전장에서 어떤 의사와 눈이 맞아 몰래 결혼을 해 버린다. 그리고 결국 프레이 가문에게 배신당해 정말 잔인하고 처참하게도 죽는다. 물론 눈이 맞은 의사와 의사 배에 있던 태아, 롭의 엄마이자 에다드의 아내인 캐틀린 스타크까지 모조리 죽는다. 에다드가 죽은 뒤에 본격적으로 시즌 2, 3을 빛내던 롭은 분명 주인공과 같았으나, 뭐 [왕좌의 게임]이 [왕좌의 게임] 해버리고 말았다.
더 나열하고 싶지만 분량상 자제하도록 하겠다. 이외에도 당신이 그 캐릭터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곧 봉변을 당한다. 당신 때문이 아니라 원작인 [얼불노]를 집필한 마틴 옹의 방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판타지가 현실과 가장 닮았을 때, 판타지성이 너무 짙지 않을 때 그 재미가 극대화 되는 것 같다. 사실 앞서 나열한 [왕좌의 게임]의 판타지적 요소인 좀비나 정령이나 드래곤 같은 경우는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궁정 사람들의 암투, 중상모략, 인간들끼리의 전쟁, 민중의 봉기 등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흔한 중세물처럼 보이기도 할 때가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드래곤이 태어난다거나 북부에서 좀비 떼가 일어난다거나 하는 판타지적 요소가 개입하면서 극의 흥미를 끌어올린다. 아주 적절한 안배이다. 개인적으로 현실 90%에 판타지 10%가 버무러진 느낌이 든다.
물론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여긴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드래곤이 참 많이도 나온다. 시즌 2까지 생각해보면 거의 10마리는 나오는 것 같다. 물론 용들의 싸움을 다루기 때문에 [왕좌의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과 인간의 치열한 두뇌싸움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대신 드래곤이 정말 본격적으로 스크린에 나오기 때문에 다른 시각적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 판타지 요소가 넘친다고 볼 수는 없다. [왕좌의 게임]에 비해 판타지 요소가 자주 등장할 뿐이지 여전히 타 판타지 장르 작품에 비해 현저히 적다. [왕좌의 게임]이 궁중 암투가 메인이라면,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치정싸움이 메인이다. 한국인의 시선으로 정말 문란하기 짝이 없는 타르가르옌 가문의 속사정이니 아무래도 그렇겠지 않은가..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현실 70%에 판타지 30%라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세 편에 걸쳐 [왕좌의 게임]과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관람 포인트에 대해 짚어봤다. 사실 시리즈의 수가 많고 농도가 짙은지라 이렇게 정리하는 게 큰 의미는 없겠다만, 뉴비 유입을 위해서, 그리고 그냥 내가 두 드라마에 대해 끄적여보고 싶어서 시작했던 것이라 이정도로 마무리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시즌 2가 마무리 되었다. 나는 곧 맥주와 함께 자리를 딱 펴고 경건한 마음으로 시청하려고 한다. 이 고양되는 감정을 내 주변의 누군가와 나누고 싶지만, 정말 내 주변엔 단 한명도 이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참혹하고 슬프다. 문화 콘텐츠를 접하면 분출하고 싶기 마련이거늘.. 다행히 블로그가 있으니 끄적거릴 공간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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