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이 연출하고
전도연, 송강호가 연기한다.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은 한가지 특이점이 있다. 제목에서 절대 내용을 유추할 수 없다는 점. 초록물고기, 시, 박하사탕, 밀양까지. 포스터에서조차 큰 힌트를 주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인 줄거리를 찾아 보거나 예고편을 보지 않는 경우에는 영화를 보러 가서 적잖은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밀양은 내게 그랬다. 이 밀양이라는 영화가 참 특이한게, 주변에 '나 영화좀 봤소' 하는 사람들은 모두 시청했지만 그냥저냥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극장에 재밌는게 개봉하면 보고 옛 영화들은 굳이 찾아보지 않는-은 아무도 시청하지 않은 미스테리한 영화였다. 뭐 어찌저찌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서야 시청하게 된 나는 전도연 연기력에 불을 처음 본 원시인인양 충격을 금치 못했다.
나는 '연기를 잘한다'는 말을 '몸을 사리지 않는' 배우에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몸을 사리지 않는 것은 위험한 활강 액션신을 몸소 실천한다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본래 자신과의 경계가 희미해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밀양]의 전도연 연기가 그랬다. 내뱉는 단어 하나, 손짓 하나, 외침 하나가 그 캐릭터가 되어버린 양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사실 좀 무섭다.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있고 이신애라는 밀양의 과부가 개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전도연과 이신애는 동일인물이지만 모습을 바꿔가며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만큼 흡입력이 있고 실재성이 있다.
물론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용서, 읽기는 쉬우나 쓰기는 어려운 단어라고 생각한다. 또, 내가 말할 때와 남이 말할 때 깊이가 달라지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또, 짧은 내뱉기 위해 지나온 세월과 겪은 아픔에 비해 너무 짧은 단어이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든다. 용서는 주체와 객체 사이에 일어나고 그 둘 사이엔 백날이 다 가도록 늘어놔도 끝나지 않을 사건과 작용이 있다. 용서같은 참 어렵고 모호한 단어는 함부로 사용할 수도, 사용해서도 안된다. 영화 [밀양]은 용서의 객체와 주체가 가진 역할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극악무도한 짓을 한 사람을 애써 용서하려고 했더니 이미 자신은 용서 받았단다. 그 용서를 내리기 위해 용서의 주체가 했던 모든 다짐과 냈던 용기는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심지어 내가 모시는, 내가 사랑하는 절대자에게 용서를 받았다고 한다. 이 무슨 모순인가. 용서받아야 할 사람은 후련하고 용서하려고 하는 사람은 괴롭다. 괴롭다 못해 미친다. 영화는 이런 용서의 아이러니를 무덤한듯 덤덤하게 그러나 가끔은 격렬하게 보여준다. 그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놓고 그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없게 만든다. 이는 때론 잔인하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세상은 당연히 잔인하다. 힘들고 지친다. 언제나 좋은 일이 일어나면 참 좋겠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나 어디에도 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기도 한 이 세상엔 어디에도 나를 챙겨줄 사람이 있기도 하다. 의도치 않은 장소와 상황에서 맞닥뜨린 사람에게 위로와 안정을 받는 일은 이 세상이 가진 또 다른 면이다. 어디에나 빛과 그림자는 함께 있다. 그러니 크게 좌절할 필요도 크게 기뻐할 필요도 없다. 그건 계속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들은 참 유의미하다. 모든 인간을 돌보지 않는 무차별적인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그럼에도 한줄기 빛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에.
힘들 때 보면 좋은 영화다. 누군가에게 쓰라린 상처를 받아 아직 아물지 않은 사람에게 좋은 연고가 되어줄 수 있는 영화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이런 잔인함과 따듯함을 같이 가지고 있다. 오래오래 작품활동 해줬으면 더 바랄게 없겠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영화리뷰 (0) | 2021.05.19 |
---|---|
★ [나비효과, 에릭브레스-J 매키 그루버] 영화리뷰 (0) | 2021.05.18 |
★ [포레스트 검프, 로버트 저매키스] 영화리뷰 (0) | 2021.05.16 |
★ [풀 메탈 자켓, 스탠리 큐브릭] 영화리뷰 (0) | 2021.05.16 |
★ [올드보이, 박찬욱] 영화리뷰 (0) | 2021.05.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