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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킬빌 2,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7. 4. 03:03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하고,

우마 써먼, 데이비드 캐러딘, 마이클 매드슨 등이 연기한다.

 

1편에 비해 달라진 점은 명확하다. 대사. 타란티노 감독의 유려한 대화 표현법이 [킬빌 2]에는 있다. 잔인한 액션도 당연히 있는데 캐릭터 간에 주고받는 대사와 연기가 추가되어 훨씬 '봄직'한 영화가 되었다. 1편이 그저 '피의 대화'였다면 2편은 '대화와 피' 정도가 되려나. 타란티노 감독의 화려한 각본에 목말라있던 나는 당연히 1편보다 2편이 더 재미있었다. 특히 영화의 결론부에서 슈퍼맨과 배트맨, 스파이더맨의 입장 차이로 키도의 삶에 대해 열변하는 '빌'의 대사와 펄떡이는 금붕어, 움직이지 않는 금붕어의 이야기로 '삶과 죽음'에 대해 설명하는 대사는 정말이지 듣는 재미가 있었다. 이런 대사를 고안하고 디렉팅 하여 완벽하게 뽐내는 타란티노 감독의 실력과 재능에 무릎을 탁! 쳤다.

 

영화는 1편과 비슷하게 '복수'의 동그라미 속에서 쫓고 쫓기는 캐릭터들의 삶을 조명하지만 1편에서 나오지 않았던 '복수'의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사실 마땅치는 않다. '키도'가 결혼식 리허설 날에 끔찍한 일을 당한 것도 결국엔 전남친의 횡포가 아닌가. '빌'은 구구절절 그랬던 이유를 설명하지만 대략 아홉 명의 사람을 죽인 일을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이유, 결과는 결과다. 당연히 '빌'은 목숨으로 죗값을 치렀고 끔찍한 일을 당했던 '키도'는 행복한 결말을 맞으며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감정을 내비친다. 그런데 과연 핏빛 복수를 모두 성공한 '키도'는 앞으로도 행복할까?

 

아니라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키도는 1편에서 제거 리스트 5인중 한 명이었던 '버니타 그린'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문제는 그녀의 딸이 그 광경을 모두 눈에 담았다는 것.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또 다른 복수의 사이클이 돌아갈 것을 예상한 키도는 버니타 그린의 딸에게 "언제든 복수하러 와라, 기다리고 있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각오의 문장을 던진 채 문 밖을 나선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버니타 그린의 딸은 분명 키도에게 복수하기 위해 또 다른 희생자를 낼 것이다. (원래 이 이야기를 토대로 킬빌3를 제작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증오의 고리는 멈추지 않고 새로운 사람에게 무차별적인 피해를 일으키게 될 것인데, 과연 누가, 왜, 어떻게 피의 역사를 중단시킬 수 있을까? 일단 키도는 실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유도 모른 채 끔찍한 일을 당하고 4년이나 누워서 못된 놈들에게 인지하지도 못한 추행을 당했으니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을게 당연하다. 그럼 버니타 그린의 딸은? 결국 버니타 그린의 딸도 엄마나 키도에게 과거에 있었던 일(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인 Unfinished Business)에 대해 아무 얘기도 듣지 못한 채 오롯이 '엄마의 죽음'만 겪었다. 누가 더 억울한가는 저울질할 수 없다. 사람은 모두 자기 일이 먼저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없을까. 결국 [진격의 거인]처럼 쌓고 쌓인 증오의 고리는 인류의 80%를 죽여야만 해결이 되는 것일까.

 

 

간디는 "An eye for an eye only ends up making the whole world blind", 즉 "모두가 눈에는 눈으로 대한다면 전 세계의 모든 이는 장님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속담을 상당히 어릴 때부터 들어왔다. 아마 민족의 한이 담긴 말일 수도, 손해보고 살지 말라는 선조의 지혜일 수도 있지만 [킬빌 1,2]를 보고 난 뒤엔 예전 같은 의미로 와닿지가 않는다. 뭐든지 생각하는 것은 쉽다. 어려운 것은 실천이다. 내가 키도였다면, 내가 빌이었다면, 내가 버니타 그린의 딸이었다면, 나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과연 증오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고민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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