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불과 피] 1권에 이은 대망의 [불과 피] 2권의 리뷰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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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피 1, GRRM] 도서리뷰
[불과 피]는 조지 R. R. 마틴의 장편소설로서 [얼음과 불의 노래] 보다 몇백년 전 타르가르옌 왕조의 이야기를 다룬다. [불과 피]는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타르가르옌 가문의 가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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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질구레한 내용들은 저번 리뷰에서 많이 언급했으니, 여기서는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 1, 2와 [불과 피] 2권에서 나오는 "용들의 춤"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불과 피] 2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내용은 역시 "용들의 춤"일 것이다. 하늘에서 용들끼리 엎치락 뒤치락 불을 뿜고 할퀴고 깨물면서 싸우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타르가르옌 가문이 독점하고 있던 드래곤이 멸종하게 된 계기이자 타르가르옌 왕조의 긴 치세에 마침표를 찍게 하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가상의 역사서 형식을 취하고 있는 [불과 피]의 저자 길데인 마에스터는 조금 흥분된 필체를 사용한다.
([불과 피]는 당연히 GRRM이 쓴 게 맞지만, 컨셉상 얼불노 세계관의 학자 중 한명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정리한 역사서 처럼 쓰여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인물들간의 대사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그게 사료로 남아 있기가 어려우니), 상황에 대한 설명도 상당히 건조하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불과 피]를 원작으로 하지만 아예 다른 작품이라고 봐야 하는데, 당연히 책에 적혀진 상황 서술처럼 건조하고 차갑게 드라마를 만들 수 없으니 여러 감정적 요소를 집어 넣었는데,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역시 라에니라와 알리센트의 관계일 것이다. 원작에서도 물론 라에니라와 알리센트가 친했다는 언급이 있지만 드라마에서 연출되는 것만큼 깊은 사이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한낱 귀족 영애와 칠왕국의 적법한 후계자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거의 둘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정도로 비중이 높아졌다. 아에곤 2세를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로 설정하고 사실상 알리센트가 칠왕국을 다스리는 것처럼 짜두었기 때문에 라에니라와 갈등하고 화해하고 또 말다툼하고 몰래 몰래 만나 해묵은 감정을 내비치는 "감정적인" 장면이 상당히 많아졌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려면 어느정도 필요한 설정이겠다만, 그 지긋지긋한 감정묘사들이 정작 필요한 내용보다 비중이 커졌기 때문에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 2는 최악의 피날레를 보여주면서 마무리되었다. 배보다 배꼽이 커진 지금, 시즌 3를 기대하는 팬들은 아마 그 수가 확연히 줄었을 것이다.
또 전개상 문제가 될 법한 차이점 하나는 바로 용들의 춤에서 큰 역할을 하는 드래곤 쉽스틸러의 주인이 다르다는 점이다. 원작에서 아무도 길들일 수 없었던 쉽스틸러에게 매일 양을 한마리씩 주어 가며 길들인 이는 네틀스라고 하는 소녀다. 드라마에서는 다에몬 타르가르옌의 둘째 딸인 라에나 타르가르옌이 발견하여 아마 시즌 3에서는 쉽스틸러의 드래곤 기수가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당대 마지막 드래곤라이더라는 타이틀이 빠지게 된다. 라에나 타르가르옌은 원작에서 살아 있는 마지막 드래곤인 모닝을 타는 인물로서 묘사되지만, 아마 드라마에서는 그러한 영광은 누리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네틀스는 나중에 전쟁광이 된 라에니라에게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죽을 위기에 처하고, 다에몬이 몰래 살려 보내면서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살게 된다. 소설에서는 정말 짧게 언급되지만, 전쟁이 끝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 어떤 산악 부족의 여신같은 존재가 된 것처럼 언급된다. 이 지점이 정말 재밌는데 왜 네틀스를 뺐는지 모르겠다. 그대로 갔으면 나중에 네틀스만의 이야기를 또 영상으로 만들어 라에니라에게서 도망친 뒤에 어떻게 산악 부족의 여신이 되었는지 자기들만의 이야기(아마 GRRM은 많은 것을 비밀로 남겨 두는 성격상 이 이야기를 굳이 자세히 쓰지 않았을 것이니)를 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외에도 수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결국 드라마가 지나치게 감정묘사에 집중하여 중요한 내용을 전개하지 못하고 시즌을 길게 길게 늘린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원작이 다소 차갑고 건조하게 쓰여지기도 했지만, 드라마가 살짝 오바를 한 감이 있다. 그래서 드라마가 답답했던 사람이라면, 원작을 읽으며 시원시원한 전개에 숨통이 트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읽으면서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30분짜리 장면을 단 한 줄만에 끝내는 경우도 더러 보았다. 그게 책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다.
[불과 피] 2권에서는 용들의 춤 전쟁을 제외하면 솔직히 그렇게 큰 재미는 없다. 후반부에는 알린 벨라리온의 항해와 아에곤 3세의 비루한 생애에 대해 서술되는데, 워낙 용들의 춤이 잔인하고 자극적이었던 탓에 확실히 덜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용들의 춤이 끝난 시점에서 전국의 온갖 인물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이름은 좀 헷갈려도 타르가르옌 애들만 나오던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불과 피]의 가장 큰 문제점은 3권이 없는 것이다. 2권이 아에곤 3세가 본격적으로 통치하기 직전에 끝나기 때문에 똥을 덜 싼 것처럼 뒤가 찝찝하다. GRRM은 75살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불과 피] 3권과 [세븐 킹덤의 기사] 2권, [얼음과 불의 노래] 6권과 7권. 언제 낼 것인가? 빨리 뇌를 보존하는 기술을 개발해 GRRM AI를 만들어 남은 소설을 계속 쓰게 해야 한다. 나는 이대로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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