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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킬링 디어, 요르고스 란티모스]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21. 17:36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연출하고

콜린 퍼렐, 니콜 키드먼, 베리 케오건 등이 연기한다.

 

언젠가 한 번쯤 봐야지 하고 아껴뒀던 영화 [더 랍스터]를 제작한 감독의 6번째 장편 영화 [킬링 디어]를 봤다. 아주 시작부터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영화다. 강하게 박동 치는 심장과 함께 시작한 시퀀스는 관객을 단숨에 영화로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어떤 내용을 보여줄 것인지,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수술실의 장면은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게 하고 집중하게 하는 분명한 힘이 있었다. 나는 영화의 제목 말고는 전혀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봤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정말 니콜 키드먼 이름 하나 보고 영화를 틀었다. 그런데 영화의 제목이 날 배신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한국에 개봉한 이름은 [킬링디어]로서 '사슴 살해'로 해석할 수 있지만 원제는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즉 '성스러운 사슴의 살해'가 될 것이다. 이 부분일 지적한 이유는 두 용어가 내뿜는 힘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사슴의 살해'는 분명 그리스 신화에 모티브를 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슴 살해'는 무슨 미쳐버린 사슴을 잡는 사람들의 일대기를 다루는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이는 그리스 신화의 모티브를 두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영화를 시청한 나의 아주 작은 반항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이, 제목에 대한 번역이 그 영화에 대한 첫인상을 심어주고 그것이 관객의 마음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리뷰에 당연히 그리스 신화나 신화에 대한 해석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모르는데 어떻게 쓰겠는가. 조세호도 몰랐으니까 안재욱 결혼식을 못 간 것이지 않은가. 나도 모르고 봤다. 그냥 인과응보, 등가교환 정도의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봤다. 물론 영화를 보며 100%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약속한 듯이 이어지는 내러티브에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는 게 죄는 아니듯이 견식이 짧은 게 죄는 아니다. 다만 감독의 의도의 전부를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정말 흥미롭게 봤다. 신화에 대한 은유를 파악한 사람들이 신화와 영화의 어떤 비교점에 중점을 두고 봤다면 그것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나는 서스펜스를 주는 방식과 카메라 기법, 음악의 사용이나 내러티브에 중점을 두고 봤다. 영화는 내내 불안감을 조성한다. 정체 불명의 소년 마틴(베리 케오건)이 등장할 땐 반드시 기괴하고 기묘한 음악이 나온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귀신이 나오기 직전에 깔리는 전주곡 같달까. 영화는 내내 마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어떻게 신적인 힘을 갖고 있고, 어떻게 스티븐(콜린 퍼렐)의 가족에게 벌을 줄 수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 잔혹한지 전혀 어떤 일말의 힌트도 주지 않는다. 그저 음악을 통해 이 인물을 설명하는 것이다. 거기에 베리 케오건의 연기는 정말 괴상하기 짝이 없다. 막 일부러 그렇게 불가사의한 소년을 연기하는게 아니라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진짜 사람 자체가 좀 이상해 보일 정도다. 케오건의 정신이 반쯤 나간듯한 묘한 마스크는 케빈 스페이시나 에드워드 노튼을 처음 봤을 때처럼 어떤 강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다가가면 안 될 것 같지만 괜히 친해지고 싶은 그런 느낌이랄까.. 괴이한 음악에 괴이한 연기가 합쳐져 무한대의 힘을 뿜어내니 이 영화는 베리 케오건이 하드 캐리 했다고 봐도 전혀 무방하다. 

 

또, 영화의 카메라 기법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감정을 깊고 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모두 멀리서 구경할 뿐이다. 마치 이창동 감독의 영화처럼 말이다. 한 인물의 얼굴을 급격히 클로즈업 하거나 인물의 감정상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뻔한 쇼트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멀리서, 위에서, 옆에서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 또 아예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는 정말 천천히, 신경 쓰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그들의 이야기를 가까운 데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 치밀한 카메라 구성이 인물들의 행동을 멀리서 방관하게 하면서도 어느새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그들의 비극을 바라보게 하여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영화 내내 유지되는 긴장감, 서스펜스에 큰 영향을 주고 아주 건조하면서 무덤덤한 영화의 톤에 쉽게 질리지 않게 하는 매력을 가지기도 한다. 여러 모로 영화에 빠지게 된달까.  

 

 

위와 같은 집중력을 분명히 가지고 있음에도 영화의 중후반부에 가면 살짝은 지치게 된다. 일전에 리뷰한 [씬 시티]에서도 그래픽 노블은 직접 옮겨다 영상화한듯한 시퀀스에 처음에는 눈이 황홀할지 몰라도 점점 질리고 물렸듯이 [킬링디어]의 그 건조하고 무력한 분위기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매력이 퇴색하고 불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가 뻥 터지지 않고 계속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다 보니까 숨 쉴 틈이 없다고 해야 하나. 계속 마음에 커다란 돌 하나가 얹혀 있다고나 할까.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는 게 어떻게 보면 다크한 스릴러 장르에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겠지만 2시간이 넘어가는 러닝타임 동안 그 팽팽함을 계속 이어가게 되면 분명 누군가는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마지막 한 방이 분명히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이토록 오래 끌었던 긴장감의 끝에는 분명 확실한 마무리와 충격적인 결말이 있다. 자신의 가족 중 한 명을 반드시 죽여야 하는 스티븐의 러시안 룰렛 장면에 도달한 나는 정말 눈앞이 노래지는 경험을 했다. 이토록 끔찍한 결말을 무덤덤하게 표현하다니. 그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가족들에게 총구를 겨눈 채 중심에서 빙글빙글 돌며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어'를 하는 스티븐의 모습을 보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시간 50분 동안 이어온 그 긴장감과 불편함을 충분히 잘 마무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사실 나에게는 조금은 어려웠다. 물론 그 신화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봐서 그럴 수 있겠지만 실제로 마틴이 행한 '등가교환' 같이 낭만스러운 복수는 이 세상에서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적인 힘을 바탕으로 행한 복수는 우리의 마음 속,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 아빠를 죽인 자에게 똑같은 양의 엄청난 고통을 선사해야지" 같은 다분히 만화적인 요소는 우리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수를 행하려는 자는 온갖 역경과 고난을 헤쳐야만 티끌만 한 정도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감독은 다분히 상상적인, 말 그대로 신화적인 요소로 현실 세상에서는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구현한 게 아닐까. 그 구현으로 인간 세상의 불합리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참 쉽지 않다.

 

우울하고 음침하며 찝찝한 영화다. 그러나 기존의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박찬욱 감독과 이창동 감독의 어떤 불편한 면이 고르게 합쳐진 분위기라고나 할까. 신박하다. 이 감독의 다른 작품도 도전해 봐야겠다.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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