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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코미디의 왕,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리뷰

by jundoll 2021. 8. 24. 21:29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하고

로버트 드 니로, 제리 루이스 등이 연기한다.

 

[코미디의 왕]은 사생팬의 무서움과 유명인의 고달픔을 다루는 코미디 영화다. 라면엔 김치가, 짜장면엔 단무지가 따라오듯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엔 당연히 로버트 드 니로가 주인공을 맡았다. 타란티노 영화에 웬만하면 사무엘 L. 잭슨이 중역을 맡듯, 혹은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에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꼭 등장하듯, 혹은 봉준호가 연출한 대부분의 영화에 송강호가 연기하듯 스코세이지 영화엔 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로버트 드 니로가 나오기 마련이다. 사실 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나로선 드 니로 보다는 디카프리오가 더 익숙하다. 아닌 게 아니라 '로버트 드 니로'라는 배우는 나에게 우리나라의 안성기 배우나 김영철 배우 같은, 혹은 나훈아 가수 같은-물론 그들보다 나이가 더 많겠지만- 과거의 대스타 이미지가 강해서 막 정이 가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기보다 화석이 되어버린 -나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의 느낌이 더 많이 든다. 그러나 [택시 드라이버] 이후 이번 [코미디의 왕]을 보고 나서 로버트 드 니로라는 배우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가 모두 바뀌었다. 그는 정말 훌륭한 배우다. 많은 현역 배우들이 그를 보고 자랐고, 배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

 

로버트 드 니로는 이 영화 지분의 95%를 차지한다. 물론 같은 사생팬 동료(?)인 마샤(샌드라 버나드)나 우주대스타 제리(제리 루이스), 펍킨의 짝사랑 동창 리타(다이안느 애보트) 등 여러 캐릭터가 있지만 모두 펍킨을 받쳐주는 서브로서 존재할 뿐 그의 독주를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길을 터주고 기름을 부어주는 역할이다. 사건을 일으키거나 펍킨의 행동에 거슬리지 않는다. 그저 그의 옆에서 화를 돋구고 따라다니며 행동을 촉발케 하는 매개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동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속 '트레비스'와 그 주변 인물이 가진 구도와 아주 유사해 보인다. 그 말인즉슨 [택시 드라이버]와 [코미디의 왕] 모두 로버트 드 니로라는 배우의 어깨엔 꽤 무거운 책임과 기대가 얹혀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 전체를 혼자 견인해야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을 극장 안에 얌전히 앉혀 놓아야 한다. 집중력도 흩트리면 안 되고 튀는 연기를 해서도 안된다. 아주 어려운 일이다. 아주아주. 그리고 그는, 그리고 그의 진가를 알아본 감독은 이 챌린지를 아주 멋지게 클리어 해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 배우는 인물을 소화하는 배우의 괴력과 내러티브가 가진 집중력이 빈틈없이 결합되면 얼마나 강한 시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훌륭한 예시를 만들어냈다. 영화는 정말 재밌다. 두 영화 다 꼭 보기를 바란다. 

 

 

영화의 주 내용은 망상과 이상이다. 두 단어는 달라 보이지만 그리 다르지 않다. 망상은 허황된 생각이고, 이상은 원하는 상태이다. '허황된'과 '원하는' 둘 다 이뤄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같다. '생각'과 '상태'는 둘 다 현실에 어떤 물체로 이뤄지지 않고 추상적이라는 측면에서 같다. 즉 이상은 언제나 망상으로 뒤덮일 수 있고, 망상은 이상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 그러니 망상과 이상을 구분하는 행동은 그리 효율적인 행동이 아니다. 왜냐면 어차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망상이라는 단어는 이상이라는 단어에 비해 더 부정적인 지점에서 안 좋은 쓰임새를 얻는다. 그 반대로 이상은 어딘가 멋져 보이고 어딘가 진취적 이어 보인다. 또, 망상은 뭔가 단어 자체가 '망측한 생각' 같아 보이지만 이상은 -동명의 작가 때문인지는 몰라도- 단어 자체가 주는 힘이 아주 희망차 보인다. 망상은 이뤄지면 안될 것처럼 보이지만, 이상은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뜻을 비교해보면 둘은 그리 다르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러니 망상과 이상은 그 사용자에 따라 많은 차이가 생기는 것 같다. 사실상 같은 의미인데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갈리는 것이다. 마치 특정 조건에 따라 다르게 진화하는 포켓몬인 이브이처럼 말이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어떤 상태가 되기를 원하기만 하는 사람의 생각은 분명 '망상'이라는, 그러나 원하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찾고 나아가는 사람의 생각은 분명 '이상'이라는 단어로 진화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 있다. 망상을 하든 이상을 갖든 그건 자기 마음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내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로 이상과 망상을 구별할 수 있는 '변별력'이다. 다른 말로 '자기 객관화'라고도 한다. 이 능력은 거창한 단어에 비해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여서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다. 나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내 생각이 망상인지 이상인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대부분은 알고 있다. 내가 지금 망상을 하는 건지 이상을 좇는 건지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다. 그러니 그 -보편적 이어 보이는-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남들이 보기에 당연히 더 뒤떨어져 보인다. 그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생각'을 이뤄줄 나의 행동이 망상과 이상, 둘 중 어느 방향으로 끌고 나갈지 예측하지 못한다. 내가 아무 행동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밥만 축내고 있는데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내가 그 과정 중에 있으니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자기 최면을 걸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아주 좋은 예시가 있다. 이제 우리는 코미디의 왕, 루퍼트 펍킨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펍킨(로버트 드 니로) -pupkin, 아주 쉬운 이름임에도 사람들이 자주 헷갈리는- 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유명 코미디언인 제리의 사생팬이다. 그것도 아주 극성. 여지없이 제리의 퇴근길에 주구장창 죽치고 있던 그는 막무가내로 그의 차에 타서 자신의 개그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사정했고 끝내는 얻게 된다. 물론 이는 제리가 펍킨을 떼내려고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이었으나 펍킨은 마치 그와 긴밀한 사이라도 된 것 마냥 으스대고 다닌다. 그의 망상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애초에 그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여느 코미디언이 그렇듯이 작은 코미디 바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하며 실전 경험을 쌓지 않았다. 그가 한 노력이라고는 들어줄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는 집에 틀어박혀 녹음된 제리의 음성과 설치된 제리의 등신대 앞에서 별 재미도 없는 농담을 한 게 전부였다. 그는 정도를 밟기가 싫었던 것이다. 남들 앞에 서서 평가받기가 싫었던 것이다. 남의 시선으로 평가받은 적이 없고 혼자서 계속 '망상'을 반복하다 보니 점점 '이상'과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와 가정폭력범 아버지의 밑에서 자랐다. 또, 학교에서는 심한 따돌림을 당했으며 연애 한 번 제대로 해 본적 없이 32살이 되었다. 그는 당연하게도 타인의 평가로 성장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자기가 하는 일은 그저 옳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리가 아닌 제리의 비서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자신의 코미디가 너무도 훌륭하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다. 그리고 그 코미디를 뽐내는 자신의 모습, 그러니까 코미디의 왕이 된 자신의 모습을 언제나 상상한다.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치고,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에게 간곡히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위에 말했던 것처럼 '이상'이 아닌 '망상'일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뤄지겠는가. 그는 자기 스스로를 '재능이 넘치지만 기회가 오지 않은 대스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는 그저 노력 없이 이루려고만 하는 허영심 많은 고집쟁이에 불과하다. 자신의 상태가 세상의 기준에 비해 낮은지 높은지 파악할 줄 모르는 -자기 객관화 능력이 없는- 사람은 이토록 뒤떨어져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펍킨은 끝까지 자신을 직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발했다고 하는 것이 맞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주지 못한 -사실은 그저 기준에 못 미친- 제리의 비서에게 화가 났고, 그를 무시한 카운터 여직원에게 화가 났으며, 결정적으로 자신을 심하게 내치고 자존심에 상처를 낸 -자기가 제리 집에 무단 침입해놓고서..- 제리에게 화가 났다. 분노한 그는 제리를 납치하기에 이르고 제리의 목숨을 대가로 미국 전역에 방송되는 쇼에 출연하기를 원한다. 결국 펍킨은 드디어 그가 평생을 꿈꿔왔던 대로 자신의 코미디를 맘껏 펼쳤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사람들은 의외로 빵빵 터졌고 그가 평생 받아왔던 것의 합과 비교해도 많을 정도로 엄청난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제리 납치 죄로 4년 동안 감옥에 갇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제리가 감옥에 간 뒤로 오히려 그의 기행은 세간의 주목을 받아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고 그는 일약 스타의 반열에 들어선다. 세상의 주목을 받아서인지, 제리를 납치하고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아서인지 펍킨은 기존 형량을 반쯤 채우고 출소하게 되고, 세상은 그를 따듯하게, 아니 오히려 성대하게 맞아준다. 자서전도 내고 자신만의 쇼도 생겼다. 그는 그의 말처럼 평생을 바보로 사느니 하룻밤이라도 왕이 되고 싶었고, 이제는 분명 하룻밤이 아닌 여러 날들의 밤을 지배하는 코미디의 왕이 될 것이다. 그것이 그가 노렸든 노리지 않았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게 현실이라고 보지 않는다. 나는 이 또한 펍킨의 망상 중 하나이고 전혀 일어나지 않은, 아니 오히려 반대로 일어났으면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펍킨은 망상증 환자고 영화는 그의 망상을 사실과 다름없이 표현한다는 점. 또, 아무리 기존의 형량보다 적게 복역했다고 해도 2년 반이라는 긴 세월은 그리 짧지 않다는 점. 어젯밤에 일어난 사건도 오늘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며 잊는 게 사람이라는 동물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지금 시대와 저 때의 시대는 아주 다르다는 점. 1980년대의 미국 코미디 방송 시장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요즘의 세계적인 방송 시장은 스타가 아주 조금의 윤리적인 잘못을 저질러도 급격히 사장되는 추세다. 최근 연예인들의 학교폭력 문제와 와인스틴 미투 운동 등이 대표적이다. 평생을 좋아했든, 엄청난 업적을 세웠든 누군가한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은 요즘 시대에는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 어떤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아주 요즘을 사는 사람이다. 아무리 영화를 재밌게 만들어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을 쉽게 좋아할 수 없는 이유와도 같다.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엠씨 더 맥스의 노래를 맘껏 듣기가 좀 망설여지는 이유와도 같다. 아무리 훌륭한 연기를 해도 이경영 배우를 보면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이유와도 같다.

 

 

영화 평가적인 면을 많이 얘기하지 않았다. 재밌다. 정말 재밌다. 연기는 완벽하고 서사는 물 흐르는 듯하다. 메시지는 강력하고 연출은 흠잡을 데 없다. 특히 무대에 올라 모두에게 자신의 코미디를 선보이는 클라이맥스는 관객들의 웃음과 우스꽝스러운 펍킨의 모습밖에 나오지 않지만 다른 의미로 가장 소름 끼치는 장면이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줄도 모르고 봤다. 그리고 토드 필립스 감독,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조커]가 정말 많이 떠올랐다. 아마 많은 장면을 레퍼런스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여성이 흑인이라던가, 혼자서 골방에 틀어박혀 연기 연습을 한다던가, 세상의 이목을 받지 못한다던가, 본인이 선망하는 쇼 진행자에게 위해를 가한다거나 하는 설정들이 그렇다. 심지어 [조커]에서 쇼 진행자이자 조커를 각성시킨 머레이 역은 다름 아닌 펍킨, 로버트 드 니로가 맡았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조커]를 먼저 보고 [코미디의 왕]을 보니 [조커] 속 머레이가 과거에 제리를 납치한 그 펍킨이 실제로 승승장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코미디의 왕]에서 보여준 열린 -물론 나에게만 열렸을 수도 있지만- 결말을 [조커]로 닫은 게 아닐까. 신기한 영화의 세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게 됐지만 내 세상 속 코미디의 왕은 바뀌지 않았다. 분명 개별적인 영화고 어떤 오피셜 인터뷰도 없었으며 그저 설정과 '아는 자만 보이는' 이스터 에그를 숨겨뒀을 뿐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펍킨은 아마 감옥에서 일찍 나온다고 한들 세상을 마주하는 태도는 분명히 바꿔야 할 것이다. 2년 반 만에 세상은 눈에 띄게 변하지 않겠지만 세상은 망상만 하는 사람을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 망상을 멈출 수 없다면 자기 객관화 능력을 얻기 위해 남 앞에 나서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사람들은 그리 멍청하지 않으며 분명 그도 이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펍킨만이 새겨들어야 할 충고는 아니다. 어쩌면 멈춰있을 누군가에게도, 아직 깨닫지 못한 누군가에게도, 혹은 나 자신에게도 해당이 될 수 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주변도 요동치며 내 생각도 바뀌니까 말이다. 그러니 영화는 참 훌륭한 인생 지침서, 혹은 호랑이 선생님, 혹은 나를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The King of Comedy]

서사 ★★★★★
연출 ★★★★★
대사 ★★★★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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